이번 재외국민 선거권에 관한 위헌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로서, 이번 대선에서는 재외국민 선거권 행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선관위나 일부 정치권의 주장을 접하고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재외국민에 대한 섣부른 표계산이나 당리당략의 결과가 아니길 바라면서, 재외국민의 선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당장 이번 대통령 선거부터 이를 실시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들고자 한다.
먼저, 재외국민 선거권 제한은 헌법상 보통선거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선거 원칙이란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의 요소를 배제하고 성년자인 모든 국민이 그 선거권을 갖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헌법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에 관하여 이를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통령 및 국회의원은 국민의 보통선거에 의해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인구의 6%를 차지하는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박탈하여 보통선거 원칙이 침해된 상태에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그 정당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지난 60여년간 해외에서 온갖 차별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대한민국의 국적을 소중히 지키며 살고 있는 재외국민의 아픔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외국민의 선거권 인정 여부에 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헌법 해석의 유일 최고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 그것이 위헌이라고 하면서 시급히 개선입법을 촉구한 상태에서는 더 이상 논란이 있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단순위헌을 선언하지 않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것은 법적 공백상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그 시한을 내년말로 설정했다고 현재의 위헌상태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 실시가 가능한데도 구체적인 이유 없이 그것을 내년말, 결국 5년 후의 대선, 총선으로 미룬다는 것은 내 손으로 대통령 한번 뽑아보자는 300만 재외국민의 열망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셋째, 선거준비에 최소한 6개월이 필요하다는 선관위의 주장은 그 근거가 미약하다. 재외국민의 권리를 앞장서서 보호해야 할 외교통상부나 국민의 선거권 확대를 앞장서서 보장해야 할 선관위가 지난 1997년의 소송부터 시작하여 재외국민 선거권에 관한 소송에서 줄곧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선관위가 막상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그 가능성이 열려 있는 지금 구체적인 근거도 없는 6개월론을 앞세워서 다시 한번 국민의 선거권 확대를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선관위가 주장하는 6개월의 준비기간 중 2개월(9월 10일부터 11월 9일까지)이 재외선거인 등록기간이라고 하는데, 이미 등록을 마치고 있는 재외국민이 90만이 넘고, 또 재외국민 등록은 법개정을 기다릴 필요 없이 언제나, 지금도 가능한 것이므로 굳이 그 기간을 설정할 필요도 없다. 선거인명부작성 기준일 현재 재외국민등록부에 등록되어 있는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선거인명부를 작성하면 된다.
또 처음이니까 특별히 '등록강조기간'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반드시 2개월일 필요도 없고 1개월로 줄이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정치관계법개정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구성되어 선거관계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는데, 선관위의 불가론에 막혀 논의가 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정개특위에서는 오는 18일에 외통부 등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을 출석시켜 공청회를 열어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논의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도 선관위가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국회도 시급히 법개정에 나서주기 바란다.
외통부는 재외국민등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이를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 지금부터라도 재외국민들이 등록 및 변경사항 수정신고를 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이렇게 법개정 이전에 가능한 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준비기간도 단축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못하면 내년 총선도 불가능하고 결국 5년 뒤로 미뤄지게 된다. 대통령선거에 비해 국회의원 선거는 각 지역구마다 출마자가 다르기 때문에 재외국민 선거를 실시하기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다.
일부에서는 수십만표에서 당락이 결정된 지난 두 번의 대선 결과를 두고, 재외국민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오히려 거꾸로 된 이야기이다. 즉 재외국민의 의사를 배제하고 실시된 선거결과는 결국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0년간은 그렇다고 치고, 위헌임이 확인된 지금도 다시 한번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자는 것인가. 그 5년 동안 많은 재외국민 1세, 2세들이 투표 한번 해보지 못하고 또 사라져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지석 기자는 재외국민 선거권 위헌소송을 담당한 변호사로서,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에도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