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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책 표지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책 표지 ⓒ 한얼미디어
5·18 민중항쟁이 벌어진지 벌써 27년이 지났다. 27년의 세월 속에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책임자도 처벌되었고, 망월동 묘지도 웅장하고 화려한 묘역으로 성역화 됐다. 간첩이니 폭도니 하는 누명을 벗고 국가유공자의 대우도 받게 되었다.

5·18 민중항쟁을 기리는 유형, 무형의 기념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날의 진실을 제대로 담았다는 영화 <화려한 휴가>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민중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종 발포 책임자가 누군지, 민간인 희생자 수가 정확하게 몇 명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항쟁 과정에서 총상, 타박상, 자상, 고문 등으로 상해를 입은 사람들, 행방 불명된 사람들, 그 가족들의 참혹한 삶은 계속되고 있다.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은 5·18 민중항쟁 당시 상해를 입은 뒤 사망한 영령들과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가족과 지인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증언록이다.

1권은 행방불명자편, 2권은 상이 후 사망자편이다. 2006년 사망자들에 대한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에 이어 행방불명자들과 상이 후 사망자들의 증언록이 나온 것이다.

트럭에 실려 끌려간 광복이, 저녁 찬거리 사러 갔던 경순이, 군인들의 행렬이 신기해 구경하러 나갔던 일곱 살 창현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잠시 집을 나갔던 영임이, 금남로에서 구두를 닦던 재영이, 어리지만 옹골지게 자라주던 기환이…. 이들은 행방불명자가 되어 봉분도 없는 묘비에 이름만 남긴 채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어디에 있든지 살아만 있어 달라고, 병신이 되어도 괜찮으니까 제발 살아서만 돌아와 달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27년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늙은 어머니는 죽기 전에 자식의 유골이라도 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유골을 찾아 무덤이라도 만들어주고 그 앞에 엎드려 목 놓아 울어보기라도 하고 떠났으면 하는 바람 하나 가슴에 안고 살고 있다.

상이 후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이 감당해야할 고통도 처절했다. 피고름 질척이는 상처가 주는 고통 뿐 아니라, 정신장애의 고통까지 겹쳐지는 경우도 많았다. 죄 없이 끌려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한 남편은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면서 아이들과 아내를 때리고 욕하기 일쑤였다.

예민한 중, 고등학교 시절에 아무 데서나 미쳐 날뛰는 아버지를 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차례로 가출을 해서 유흥가에 빠져들었다. 하수구에 빠진 아버지를 구하러 들어갔던 아들은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 해 5월을 거치면서 단란했던 한 가정이 철저하게 파괴된 것이다.

시위 상황과 관계없는 총상이라고 병원에서 강제 퇴원을 당한 경우도 있었고, 가해 군인이 병실까지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산송장이 되어 방구들만 지고 살다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날마다 술에 매달리다 술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도 있었다.

심한 정신질환으로 시달리다 음독자살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가족들의 고통도 심했다. 집안 살림과 재산은 치료비로 고스란히 들어가고 생계유지조차 힘겨운 경우도 많았다.

영화 <화려한 휴가> 개봉이 다가온다. 5·18 민중항쟁의 처절했던 상황을 실화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 역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으면서 개봉도 되기 전에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고통과 아픔 이상으로 끔찍한 삶을 강요당했던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모은 것이다. '화려한 휴가'란 이름으로 자행된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몸도 마음도 가정도 철저하게 파괴되었던 이들의 서러운 삶을 기록한 책이다.

그 고통과 회한의 세월을 기록으로 정리해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이유를 송기인 신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시 희생된 분들의 숭고한 정신으로 민주주의가 진전됐지만, 죽었던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고 무너진 가정은 제대로 세위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우리 국민 모두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할 부분입니다. 반성 없는 역사에 미래는 없습니다.

제대로 된 진실규명을 통한 명예회복과 가해자의 진정한 참회가 전제되어야 우리가 바라는 국민통합과 화해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슴 아픈 우리 이웃들의 사연이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들의 상처와 함께 함으로써 새로운 희망이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사)5·18민주유공자 유족회 구술, (재)5·18기념재단 엮음/한얼미디어/15000원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1 - 행방불명자 편, 5.18민중항쟁 증언록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재)5.18기념재단 엮음, 한얼미디어(2007)


#광주#5·18#화려한 휴가#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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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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