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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으실래요' 했더니 '나 사진 많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그러다 찍고 나서 보여 드렸더니, '어디 한 장 빼 봐'하신다.
'사진 찍으실래요' 했더니 '나 사진 많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그러다 찍고 나서 보여 드렸더니, '어디 한 장 빼 봐'하신다. ⓒ 이현숙
지하철을 탔다(7호선 뚝섬유원지역). 노약자 보호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물으신다.

"이 차 온수역 가우?"

그런데 할머니 모습이 몹시 불안한 듯 좌불안석이다. 난 마침 송내역까지 가는지라 할머니가 앉으신 노약자 보호석 옆에 서서 알려 드렸다.

"예, 온수역 가요.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응, 부개역 가는데 이거 타고 온수역에서 갈아타면 되지?"
"그러면 되지요. 가만히 계세요. 제가 그쪽으로 가니까 저 내릴 때 내리시면 돼요."

나는 그렇게 안심시켜드리고 다른 자리로 가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보통 불안해 하시는 게 아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을 간추려보니 지하철을 타실 때 출구를 잘못 찾아 건너편으로 가셨고 몇 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꽤 고생을 하신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 할머니를 안심시켜 드리려면. 나는 할머니 옆 노약자 보호석에 앉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딴 말씀을 하신다.

"부개역에 가면 남원 가는 차가 있어."
'예 어디 남원이여?"
"춘향이 남원 말야."

내가 지하철을 탈 때부터 할머니는 이미 좌중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두 분 아주머니들이 난처한 얼굴로.

"아니, 그럼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셔야 하는 거 아냐?"

아무래도 이상하다. 다시 차근차근 할머니 말을 들어보니. 약간은 치매 증상이 있으신 듯. 하지만 남원이 집은 아닌 것 같다.

"할머니 집이 어디예요?"
"으응, 집은 부개동이야. 내가 말이 헷갈려서 잘못 나왔어. 내가 남원에서 나서 그리로 시집을 왔거덩."

전화번호라도 있으면 아들이든지 며느리한테 전화해 알아볼 텐데, 그럴 수도 없고. 다행히 남원은 고향이고 부개동으로 시집와 사신다니까 부개동이 맞는 거 같다.

"할머니 집에 누구 없어요?"
"없어. 나 혼자 살어. 할아버지하고 둘이 살었는데 3년 전에 돌아갔어. 난 지금 할아버지 제사지내고 오는 거야."

할머니는 차가 설 때마다 역 이름을 또렷이 읽으신다. 그러면서도 몹시 지루하신지 자꾸 내리고 싶어한다. 어디서 타셨냐니까, '서울'이란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아들이 면목동에 산단다. 그러니까 면목역에서 타신 거다.

손은 정직하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을까?
손은 정직하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을까? ⓒ 이현숙

이 보따리엔 뭐가 들었는지. 옆자리에 사람이 앉아서 바닥에 내려 놓으려고 해도 한사코 부둥켜 안고 계셨다. 나중에 머리에 이고 가셔야 한다며...
이 보따리엔 뭐가 들었는지. 옆자리에 사람이 앉아서 바닥에 내려 놓으려고 해도 한사코 부둥켜 안고 계셨다. 나중에 머리에 이고 가셔야 한다며... ⓒ 이현숙

장승배기역에 도착하자.

"나 여기 잘 알아. 그 전에는 여기 많이 다녔어. 나 그냥 여기서 내려서 갈아 타고 갈래."
"안돼요. 여기서 내리시면 큰일 나요. 가만히 앉아 계세요."

뚝섬유원지역에서 온수역까지는 50분이나 걸린다. 그래서 책을 읽으려고 가져왔지만 조금 읽다가 말았다. 할머니에게 말을 시켰다. 심심하지 않게. 그리고 지하철 노선도를 꺼냈다. 역을 세어보니 온수역이 열세 번째 정거장이다.

"할머니 앞으로 열세 번만 가면 돼요. 차가 설 때마다 하나씩 세어 보세요."

그러나 그건 재미가 없는 듯, 며느리 얘기를 하신다. 며느리가 지하철을 태워드리면서 못 믿어워 온수역까지 가만히 앉아 있다 내리시라는 말을 열 번도 넘게 했다며. 자제분은 넷, 딸 하나 아들 셋인데 한 아들은 남원에 살고 두 아들과 딸은 면목동에 산단다. 아들이 무슨 일을 하고 며느리가 직장에 다닌다는 말씀도 하신다. 그냥 좀 더 있다가 시간나면 데려다 달라지 그러셨냐니까.

"내 구멍이 좋아서, 갑갑해서 있실 수가 있어야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광명 사거리. 세 정거장 남았다니까, 온수역에 가면 화장실을 가셔야 한단다. 앞자리는 이미 내게 잘 모시고 가라며 인사까지 하고 모두 내리고, 나이 드신 아저씨가 다시 타서 앉아 계셨다.

그 아저씨 우리 둘의 대화를 들으시고 퍽 안됐다는 표정이셨는데 온수역의 화장실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내리신다. 내려서 조금 앞으로 가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것을 타고 올라가면 화장실이 보인다고. 그러나 거기서 인천가는 전철을 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단다.

"할머니, 조금만 가면 되는데 좀 참으시면 안돼요?"
"너무 오래 와서 가야 돼."

나야 튼튼하니까 얼마든지 걸을 수 있지만 할머니가 힘들 것 같아 참으시라니까, 안된단다. 어쩔 수 없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화장실까지 할머니를 보시고 가고 나는 개찰구 안에 서서 짐을 지키고 있었다.

지하철의 동선은 어디나 길다. 젊은 사람들도 불편한데 노인들은 더 하다. 구부정해서 걸음도 잘 못걸으시는데 빨리 걸어야 하니까 마음만 앞서시는 모양이다.
지하철의 동선은 어디나 길다. 젊은 사람들도 불편한데 노인들은 더 하다. 구부정해서 걸음도 잘 못걸으시는데 빨리 걸어야 하니까 마음만 앞서시는 모양이다. ⓒ 이현숙

그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인천가는 전철 타는 홈으로 걸었다. 한 10분 정도. 할머니 걸음 속도가 느려 더 오래 걸렸다. 그런데 나는 앞에서 걷고 뒤에서 겨우 따라 오시면서도 계속 가벼운 내 종이가방은 당신이 들고 가신단다. 물론 드리지 않았지만 많이 미안하셨나 보다. 승강장에 도착, 의자에 앉으신 할머니는 짐을 뒤적뒤적하신다. 내게 뭔가를 주고 싶은 얼굴이다.

"할머니, 저 언니들 만나서 점심 먹으러 가요. 주셔도 가져갈 수가 없으니까 그냥 놔 두세요."

그래도 여전히 미안한 표정. 전철이 와서 탔는데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할머니는 어느 틈에 내 자리로 오시더니 돈 만원을 부득부득 내 종이 가방에 넣고 당신 자리로 돌아가신다. 모두의 시선이 할머니와 내게로 집중. 돈을 가만히 들고 앉아 있다가 송내역 가까이 왔을 때 할머니께로 갔다.

온수역에서 인천가는 전철을 기다리며... 미안하고 답답한 표정은 여전...
온수역에서 인천가는 전철을 기다리며... 미안하고 답답한 표정은 여전... ⓒ 이현숙
"할머니 저는 이 돈을 받을 수가 없어요. 일부러 모시고 온 것도 아니고 제가 가는 길에 도와드린 건데 무얼 그러세요."

하면서 돈을 다시 가방에 넣어 드리고 할머니가 서운해 하시는 표정을 뒤로 하고 내렸다. 할머니는 다시 주려고 나를 따라 왔지만 주지도 못하고 한숨만 쉬고 서 계셨다. 부개역은 내가 내린 다음역.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잘 내리시게 도와 달라고 부탁은 해 놓았다. 아마 잘 가셨을 거다. 부개역에서는 걸어서 가신다니까.

문득 송강의 시조가 생각났다.

이고진 저늙은이 짐벗어 나를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라커늘 짐을조차 지실까


힘들어 하시는 노인들을 보면 내 할머니가 생각나고 또 부모님이 생각난다. 지금은 다 돌아가신. 그리고 내 30년 후가 떠오른다. 우리는 어쩌면 이분들한테 빚을 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분들이 다져놓은 토대를 딛고 살아가니까. 그래서 난 오늘 빚을 조금 갚았다. 내 작은 힘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 나는 그 기쁨이 돈 만원의 가치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했다.
#치매#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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