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지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지난 11일 오후 경찰이 살수차와 버스로 매장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지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지난 11일 오후 경찰이 살수차와 버스로 매장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찰 "인터넷신문 기자는 홈에버 매장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자 "지금 방송·신문사 기자들은 매장 안에서 취재하고 있는데 왜 인터넷만 출입이 안되는 겁니까?"
경찰 "일부 인터넷 기자들이 매장 안에서 숙식하고, 기사를 작성·송고해 상부로부터 혼이 났습니다."
기자 "기자가 현장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경찰이 취재까지 막을 권리가 있습니까?"


15일 오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을 찾았을 때 벌어진 일입니다. 경찰과의 승강이는 이런 식으로 40여 분간이나 계속됐습니다.

경찰은 꼭 집어 "'인터넷신문 기자'는 출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경찰은 "매장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기자들이 있어 곤란하다", "기자들도 불법 농성에 참가하자는 듯하다", "윗선의 지시가 그렇다"라고만 해명했습니다.

경찰과 <오마이뉴스> 기자가 대치하고 있던 그 시간, 홈에버 매장 안에서는 KBS·MBC 등 방송사·일부 신문사 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보건연합) 의·약·한의사들이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 검진을 실시한다고 해 기자들이 현장을 찾은 것입니다.

지난 15일 보건협회 소속 의·약·한의사들이 점거 농성 16일째를 맞은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을 찾았다. 이들은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 검진을 실시했다.
지난 15일 보건협회 소속 의·약·한의사들이 점거 농성 16일째를 맞은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을 찾았다. 이들은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 검진을 실시했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홈에버 취재, 방송사는 되고 인터넷신문은 안된다?

기자가 상암동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께였습니다. 듣던 대로 경찰은 홈에버 매장 전체를 차량으로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매장 안을 들여다보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경찰은 지난 11일부터 매장을 봉쇄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매장 출입구에는 전·의경 10여 명이 서 있었습니다. 다가가 신분을 밝히고 "취재하러 왔다,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한 경찰이 "인터넷신문 기자는 들어갈 수 없다"고 짧게 말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일부 인터넷 기자들이 농성장에 상주하고 있어 경찰이 통제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불과 수십 분 전에 일부 방송·신문사 기자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당한 대우'라며 항의하자 경찰은 "마포경찰서 CP(현장지휘소)로 가서 허락을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CP는 출입구로부터 3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려 하는데 문득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인터넷 기자는 출입할 수 없다면서, 허락을 받아오라고?'

CP쪽 반응은 기자를 더 당혹케 했습니다. 경찰은 "일부 인터넷 기자들이 매장 안에서 먹고 자며 기사를 쓰고 있다"면서 "불법 점거 농성에 참여하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오히려 따졌습니다. '취재를 하기 위해서니 들여보내 달라'고 하자 그는 "허락해 줄 수 없다"면서 "출입구에 가서 부탁해보라"고 퉁명스레 말했습니다.

다시 출입구로 향했습니다. 전·의경들은 기자를 보자 "막아, 막아"라고 외치더군요. 몸싸움이라도 할 줄 알았나 봅니다. 조용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거절당했습니다. "CP 허가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또다시 CP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언성을 높여 따졌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말 걸지 마라, 피곤하니 자야 한다"며 대꾸조차 하기 싫다는 기색이었습니다. 무엇을 물어도 묵묵부답,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1분 정도 '부당하다'고 성토하고 있자니 어느덧 경찰 두 명이 다가와 "CP에서는 (출입 허가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며 다시 "출입구로 가보라"고 말했습니다.

출입구에서는 조금 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마포경찰서 경비계에 전화해 허락을 받아 보라"고 말해줬습니다. 기자는 마포경찰서에 전화한 뒤에야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단, 조건이 따랐습니다. '오후 6시 내로 나오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기자는 40분간 경찰 틈에 끼어 '탁구공'이 됐습니다. 수차례 오가기를 반복했습니다.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그 사이 경찰 측은 이런저런 해명을 늘어놨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왜 인터넷 기자만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지.

경찰, 구호활동은 막으면서 방송사 앞에서는 주눅 들어

앞서 경찰은 보건연합의 방문도 통제했습니다. 애초 보건연합이 홈에버를 찾은 시간은 오전 10시. 그런데 경찰이 출입을 막은 탓에 2시간 30분가량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물·전기를 끊어버린 농성장에서도 의료진의 방문을 막은 적은 없었다"며 경찰을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보건연합은 경찰이 쌓아 놓은 벽을 어떻게 뚫을 수 있었을까요? 보건연합의 한 관계자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경찰과 실랑이가 길어져 방송사 기자를 불렀다. 이들과 함께 나타나니 경찰 측 태도가 부드러워지더라."

경찰은 전날(14일)에도 인터넷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해 둘 사이에 1시간가량 승강이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게다 경찰은 '무엇을 취재하나', '언제 매장 밖으로 나오나' 등을 조사한 뒤에야 기자들을 매장 안으로 들여보냈다고 합니다. 방송사들은 자유롭게 드나드는 동안 말입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지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지난 11일 오후 경찰이 살수차와 버스로 매장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지는 서울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에서 지난 11일 오후 경찰이 살수차와 버스로 매장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홈에버#비정규직#점거농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