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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켠에 모둠으로 피어있는 봉숭아의 무리
마당 한켠에 모둠으로 피어있는 봉숭아의 무리 ⓒ 이인옥
농촌 마을이 조용하다. 주민들을 만나러 나선 길에 있어야 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꽃들이 싱글벙글 웃는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나를 만난 반가움에 맨발로 마중 나와 손을 잡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조용한 마을에서 꽃이라도 만났으니 참 다행이다. 텅 빈 마을에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장마철인데도 간간히 얼굴을 내미는 햇살이 꽃들과 쉼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어느 집 담 밑에 봉숭아꽃이 활짝 피었다. 고향 언니를 만난 듯 반가움에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분홍색 빨간색의 봉숭아가 고향의 소식을 전해준다. 그 옆에 분꽃도 고향친구를 만난 듯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 늘 보고 자란 봉숭아를 만나는 감회가 새롭다. 잊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 유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전형적인 봉숭아의 모습이 고향의 따스함을 전해준다.
전형적인 봉숭아의 모습이 고향의 따스함을 전해준다. ⓒ 이인옥
내가 살던 고향마을에는 집집마다 봉숭아가 심어져 있었다. 노래가사에 나오는 울밑에선 봉숭아는 아이들을 만나도 싱글벙글, 강아지를 만나도 싱글벙글, 동네 어르신을 만나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정이 가고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다른 어느 꽃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에 예로부터 사랑받지 않았을까.

"봉선화는 한자 식 이름이고 순우리말로는 봉숭아가 맞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한을 노래했다고 알려진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봉숭아보다 봉선화가 더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인 귀화식물로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과 동화되어 자라고 있으며, 특히 예부터 처녀들의 손톱을 물들이는 용도로 많이 심어왔다. 꽃이나 잎을 따서 괭이밥 풀잎을 섞고 백반이나 소금을 약간 넣어 찧은 다음 손톱에 싸서 하룻밤 정도 매어두면 예쁘게 물이 든다. 가끔 백반만으로 물들이면 색깔이 곱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반드시 괭이밥의 잎을 섞어야 꽃 색 그대로 물이 예쁘게 든다고 한다."

분홍빛 봉숭아의 모습이 곱다
분홍빛 봉숭아의 모습이 곱다 ⓒ 이인옥
봉숭아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touch-me-not)다. 그 이유는 열매가 여물면 조금만 건드려도 톡 터지는 힘으로 씨앗이 멀리 날아가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봉숭아 꽃 씨를 받기 위해 손을 대면, 순간적으로 톡 터지면서 꽃씨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는 꽃씨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톡 터지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계속 봉숭아 씨 주머니를 괴롭히며 다녔었다. 마치 친구가 팽 토라지는 모습 같기도 하여 철없는 마음에 그 모습에 재미를 느끼곤 했다. 몇 개만 터트려도 손바닥에 진한 갈색의 봉숭아 씨가 가득 담겨지곤 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듯한 봉숭아 열매가 씨앗을 품고 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듯한 봉숭아 열매가 씨앗을 품고 있다. ⓒ 이인옥
봉숭아에 얽힌 전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보았다.

첫째는, 자신의 부정을 의심하는 남편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자결한 여인의 무덤에서 피었기에 자신의 몸에 누가 손대기를 싫어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둘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데, 절도 혐의로 의심 받아 수치스러워 자결한 여인의 화신으로 피어난 꽃이기에 언제나 자기 마음을 활짝 열고 무고함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셋째는 백제나 고려 때의 한 여자가 선녀로부터 봉황을 받는 꿈을 꾸고 낳은 봉선이라는 여자아이에 대한 것도 있다고 전해진다.

워낙 거문고를 잘 연주했던 봉선이는 임금 앞에 나가 연주까지 했는데 그만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 임금이 동네를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겨우겨우 나아가 손끝에서 피를 흘리면서 연주를 해주었다. 임금이 그 모습을 보고 불쌍해서 무명천에 백반을 싸매주고 가 버렸는데 그 뒤 끝내 봉선이는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 다음은 당연히, 그 무덤에서 피어난 꽃으로 사람들은 손톱을 물들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름이 봉선화가 되었다는 얘기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만 해도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곤 했다. 시댁에 가면 울긋불긋한 봉숭아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보다 몇 살 위인 조카들이 동생들을 돌보면서 손톱에 봉숭아물을 드려주곤 했다. 봉숭아꽃과 잎을 따서 비닐 위에 놓고 돌로 찧어놓은 다음 백반을 섞어 손톱 위에 살짝 올려놓는다. 그 다음에 비닐봉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칭칭 감아서 실로 묶어 마무리를 한다.

그런 다음 손톱에 얹어진 봉숭아가 빠져나갈까봐 손바닥을 쫙 펴고 조심스럽게 다니는 모습은 여간 귀엽지가 않았다. 잠을 잘 때도 조심스러워 편히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그 다음날이면 누구 손에 봉숭아물이 더 잘 들었나, 비교하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귀엽고 예쁘다.

울밑에 선 봉선화가 곱게 피었다.
울밑에 선 봉선화가 곱게 피었다. ⓒ 이인옥

화단에 피어있는 봉숭아의 모습이 수수하다.
화단에 피어있는 봉숭아의 모습이 수수하다. ⓒ 이인옥
담장 밑에 꼬마들이 웅크리고 앉아 봉숭아를 가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정겨움이다. 특히 뒤뜰 장독대 옆에 빨갛게 피어 있는 봉숭아는 어릴 적 엄마 품처럼 부드럽고 편안함을 안겨준다.

봉숭아를 보면서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딸들에게 정성껏 봉숭아물을 드려주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고향과 어머니, 그리고 동네 꼬마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함께 자랐던 봉숭아는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정서를 갖게 한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도 봉숭아에 대한 추억 하나쯤 간직하며 살아가면 어떨까?
#충남 연기군#손톱#봉선화#봉숭아꽃#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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