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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사 전경. 사진 우측 상단에 보이는 작은 건물이 산신각이다.
ⓒ 안병기
식장산에 숨겨진 수정 같은 암자

어렸을 적 마을 뒷산에 가면 바위에 촘촘히 박힌 무색 투명한 수정들을 볼 수 있었다. 육각형으로 생긴 수정들이 무척 신기했다. 누군가에게 이 수정이 손톱처럼 길어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 난 틈나는 대로 수정이 그새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러 뒷산에 다녀오곤 했다.

나중엔 그것만으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아서 아예 수정이 박힌 돌을 주워와 날마다 물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수정은 전혀 자라지 않았다. 수정이 길어나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몇천 년, 몇만 년의 세월을 두고 서서히 이뤄지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세계 최초로 식물처럼 물을 주어 돌을 키우겠다는 내 야심찬 프로젝트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그 기억만은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다.

내게 구절사는 어렸을 적 뒷산 수정처럼 그렇게 자주 들여다보고 싶은 절이다. 식장산 독수리봉 아래에 자리 잡은 작은 암자 구절사는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옥천군 군서면 상중리에 속한다.

조선 태조 2년(1393년)에 무학대사가 이곳을 살피고 산세가 훌륭하여 인물이 배출될 지세라고 하여 이곳에 절을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절 위 독수리봉 옆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놓여 있어 영구암이라 불렀다 한다. 조선시대 말에 폐사되었다가 일제 말기 다시 신도들에 의해 재건되면서 절의 이름을 구절사로 고쳐 부른 것이다.

▲ 일주문.
ⓒ 안병기
▲ 이 문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 안병기
지난 17일, 쇠정골을 낀 산길을 걸어 구절사로 가는 길은 4km에 지나지 않지만 오르막이 심하고 험해서 등산객들조차 꺼리는 길이다. 그러나 세천 저수지 호안을 따라 오르는 길은 왕자의 길이지만 이 길은 각자(覺者)의 길이다. 쉬운 길에는 깨달음이 없을 뿐더러 성취감도 없다. 구절사에 도착한 것은 세천 유원지 주차장을 출발한 지 거의 3시간이 지나서였다.

고생 끝에 다다른 탓인지 달랑 기둥 두 개만 세워진 일주문을 보는 순간 울컥 반가움이 솟는다. 일주문을 지나고 나자 또 하나의 문이 나그네를 기다린다. 이 문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천왕문이라고 부를까, 아니면 해탈문이라고 부를까. 그것도 아니면 금강문이라고 부를까.

고개를 수그려 문을 통과한다. 문을 통과하려는 순간 문울거미에 마음이 살짝 걸리는 듯한 느낌이 스친다. 문이 가진 소박함이 내 마음에다 무늬를 새긴 것이다.

▲ 대웅전.
ⓒ 안병기
요사를 스치듯 지나서 대웅전 앞으로 다가간다. 지붕이 새는 것을 막느라 천막을 둘러쓴 대웅전의 모습이 측은하다. 신라 자비왕 때의 비 새는 방안에 앉아 방아타령을 연주했다는 거문고의 명인 백결 선생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이다.

<옥천군지>(1647쪽)는 "대웅전은 고대에 건립한 건물이다"라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은 틀린 것이다. 절의 건물을 관리하는 소임을 맡은 부전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70년 전에 건립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사실 고대에 지은 건물이 아니라는 것은 육안으로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다.

대웅전에 봉안된 부처는 삼존불이다. 주불은 석가여래이고 좌측에는 관세음보살을, 우측에는 아미타불을 모셨다. 이곳의 부처는 특이하다. 세 구 모두 석고제로 만들어 도금을 하였다.

삶이란 일체가 벼랑이다

▲ 칠성각.
ⓒ 안병기
▲ 산신각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안병기
칠성각과 산신각을 향해 올라간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에 마치 한 마리 사슴벌레처럼 달라붙은 건물들이다. 길 양쪽에 거침없이 자라버린 산죽들을 헤치고 조금 올라가면 길이 갈라진다. 왼쪽으로 가면 산신각으로 가는 길이요, 오른쪽으로 가면 칠성각으로 가는 길이다.

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는 칠성각에 먼저 들른 다음 산신각을 향해 간다. 그래도 칠성각은 산신각에 비하면 양반이다. 채 한 평도 될까 말까 한 작은 건물인 산신각은 한순간이라도 한눈을 팔면 곧장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 있는 벼랑에 간신히 몸을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탱화 속 수염이 하얀 산신께선 태평한 얼굴이다.

산신각 앞 벼랑 끝에 멀리 바라고 섰다. 옥천 군서면 쪽 들판과 마을엔 물안개가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고 멀리 있는 산자락은 구름 옷을 두껍게 껴입고 있다. 충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 서대산(904m)의 자태를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문득 백척간두진일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벼랑 끝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성큼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뜻이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수행에 정진해야 몰아붙여 깨달음 한 소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삶이란 일체가 벼랑으로 이루어진 일물이다. 세상의 티끌들은 쓸모는 없지만 무게만큼은 천만근이다. 난 머뭇거리고 망설이느라 일생을 쓸모없이 허비한 사람이다.

ⓒ 안병기
▲ 바위 틈에서 자라는 고란초.
ⓒ 안병기
사실 이 절엔 지정되지 않은 숨은 보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절 입구 우측 바위에서 자라는 고란초이다. 비를 맞아 그런지 오늘따라 고란초의 모습이 유독 싱그럽다.

고란초는 고란초과에 속하는 양치류의 상록 식물이다. 잎의 생김새는 타원상 피침형 또는 피침형으로서 끝이 뾰족한 것이 많지만 잘 자란 것은 2∼3개로 갈라진다. 처음 충남 부여 고란사 뒤 절벽에서 자라는 것이 처음 발견되어 고란초란 이름이 붙여졌지만 지금은 그곳에서조차 자취를 감춰버린 고란초가 이곳에서는 아주 튼실하게 자라는 것이다.

2005년 이전만 하더라도 고란초는 멸종위기 보호식물로 지정되어 자연환경보전법에 의해 관리돼 왔지만 이후 여러 곳에서 군락지가 발견됨에 따라 지금은 멸종위기 식물에서 제외되었다.

▲ 정갈한 장독대. 성과 속에 양다리 걸친 물건이다.
ⓒ 안병기
요사 앞에서 해당 스님을 만나 대웅전 수리비로 국비와 군비 1억6천만원을 지원 받는다는 얘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만 내려가야겠다고 하자 점심 공양은 어찌할 것인가 묻는다. 그러면서 라면이라도 한 그릇 들고 내려가라 한다.

지난 겨울에도 이곳에 와서 요사채에 들어서 라면 공양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소찬(?)을 공양으로 들고 거라는 권유를 들을 수 있는 절이 어디에 또 있을는지.

이곳에 오면 다른 절에선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비가 줄줄 새는 통에 천막을 덮어쓰고 있는 대웅전의 남루함. 비록 무생물이지만 제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그 묵묵함이 좋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장독들에선 구태여 성과 속을 나누지 않는 정겨움이 우러나와 좋다.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수행자의 칼 같은 면모와도 닮아 있는 벼랑에 아찔하게 걸린 각(閣)들은 무사안일이야말로 정신을 좀먹는 벌레와 같다는 것을 말없이 설파해준다.

이름만 높여 부른들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 구절사로 가는 산길.
ⓒ 안병기
구절사를 나와 산길을 걸어간다. 내가 이 구절사를 좋아하는 것은 암자의 소박함에도 있지만 구절사 가는 오솔길의 그윽함 때문이다. 구절사는 차로 쓱 들이밀 수 있는 곳에 있지 않다. 어느 길을 택하거나 오솔길을 굽이 돌고 굽이 돌아서 4km 이상 되는 산길을 걸어야만 비로소 구절사에 닿을 수 있다.

한 구비 돌 때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 스러진다. 들어가는 길이 길수록 암자를 찾는 나그네의 마음은 그윽하고 깊어진다. 산길을 걷는 동안 풍진 세상에 찌든 마음이 절로 청정해져서 구절사 산문에 들게 되는 것이다. 운송의 개념만을 가진 도로에 바짝 붙은 절에선 찾을 수 없는 외딴 산 속 암자만이 가진 블루오션인 셈이다.

구절사를 떠나오면서 나는 '구절사가 옛 이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영구암이라는 이름으로든 그게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구절암으로라도 돌아갔으면 싶다. 굳이 사(寺)자를 써서 제 이름을 크고 높여 부른다 해서 거기에 도대체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세상을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름이 큰 것에서는 아무 위안도 얻지 못한다는 걸. 클수록 공허만 가득하다는 것을. 공허하지 않은 삶을 살려면 작아져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이 공허하고 쓸쓸하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상을 너무 크게 살려는 사람이다.

그런 이에게 구절사로 가는 오솔길을 한 번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가노라면 나무 한 그루도 풀 한 포기도 졸졸졸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도 모두 다 삶의 위안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크게 살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도 함께.

태그:#구절사, #충북 옥천, #일주문, #고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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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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