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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 청풍면 학현리 '학고개 숲 이야기'
ⓒ 정기석
충북 제천 청풍면 학현마을 학고개에 '학고개 숲 이야기'라는 귀틀집이 들어섰습니다. 마치 학이 날아가는 듯한 이 집의 주인 김원찬씨는 지난해까지 서울대에서 반도체설계를 연구하고 가르치던 교수님이었습니다. 이제 학고개에서 자연을 배우고 집을 짓고 있습니다. 지난 6월 6일 이 집주인을 만나봤습니다.

"태어난 곳은 평안북도 태천이라는 곳이죠. 그러니 고향은 있지만, 현실에서는 돌아갈 고향이 없는 셈이죠. 터를 잡느라 남쪽까지 돌아봤는데 이곳을 발견하고 참 느낌이 좋았어요. 마음이 편해졌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제 돌아갈 고향이 생긴 기분이었어요. 이제 이 학고개를 고향 삼아야죠."

김원찬씨는 70년대 초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헨대학교에서 전기공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2년 모교 교수로 부임해 지난해 8월 퇴직할 때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이른바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에 논문만 100여 편이 넘게 등재된 국내 반도체설계분야의 석학입니다.

▲ 집 짓는 동안 친구가 된 교수와 목수
ⓒ 정기석
"언제부턴가 몸에 힘이 없어지는 거예요. 어쨌든 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너무 에너지를 많이 쏟아부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병이라 부르기도 그렇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스스로를 멈춘 셈이죠. 그전까지는 이렇게 내려와 살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내려와 이렇게 좋은 자연에 집도 짓고 몸과 마음을 의탁해 살아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이런 경우를 전화위복이라고 하나 봅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내려온다고 할 때 첼리스트인 부인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22자 폭의 거실에 12자짜리 서까래가 드리워진 황토집 마룻바닥을 무대 삼아 둘만의 첼로연주회를 즐길 정도로 아주 만족스러워한다고 합니다. 길이 좋아져 볼일 보러 서울에 올라가는 일도 그리 번거롭지 않으니 외딴곳에 내려와서 살고 있다는 부담도 많이 없어져서 그럴 것입니다.

▲ 반도체 설계하듯 그린 설계노트
ⓒ 정기석
김 교수는 대학노트 세 권에 빼곡히 스케치 된 설계도면을 펼쳐보입니다. 반도체설계 전문가의 내공을 발판삼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파트 같지도 않고 펜션 같지도 않은 황토 귀틀집'을 직접 설계하고 직영으로 시공한 것입니다.

"집을 설계한다기보다 삶을 다시 설계한다고 여기고 애를 썼어요. 듣도 보도 못한 설계도 때문에 지난해부터 같이 일하는 목수아저씨가 저 때문에 참 고생 많이 했을 거예요. 도대체 집 짓는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설계도라고 가져와서는 집을 짓자고 이러쿵저러쿵 시어머니 노릇을 했으니…. 참 고마운 사람이에요. 그래도 우리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차라리 이제는 친구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집짓는 동안 붙어살다시피한 김 교수와 목수아저씨는 어느새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평당 비용이요? 물어보지 마세요. 말 안 할래요. 물론 당초 계획보다는 더 많이 들어갔지요. 비용 생각하면 집은 애초에 못 짓는 거다 싶어요. 집을 짓다 보니 이것도 해야겠고, 저곳도 해야겠는데 퇴직금이야 뻔하고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도 가용비용이라는 것이 나오질 않는 거예요. 아래채에서 아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게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됐지요.

그 판이 끝나봐야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상황변화가 일어났어요. 여기저기 널려 있는 나무에 저쪽 한구석으로 밀려난 낙엽송 더미,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공들여 찍었지만 이제 관심 밖으로 밀려나 침실에 쌓여 잠들어 있는 그 많은 황토벽돌들이 눈에 들어왔지요. 그걸로 별채를 지을 요량을 하게 됐지요.

▲ 교수와 목수
ⓒ 정기석
초가지붕을 얹은 별채는 목심을 넣어 원형 황토방으로 만들었어요. 높은 쪽 집 지붕 한쪽을 핀셋으로 끌어올리듯 약간 위로 들어올렸어요. 일단 채광이 좋아지라고요. 종이비행기 모양이 되니 그럴 듯해 보이고요.

이 집은 사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지은 집이에요. 하루종일 밭일로 몸이 고단한 마을주민들에게 좀 쉬면서 일하라고 구들을 넣어 사각 찜질방까지 만들었지요. 초가도 얹고 자연친화적으로 지으려고 더 정성을 들였지요. 그런데 제가 몰라도 뭘 몰랐었나 봐요. 그분들이 그렇게 쉴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요. 해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지면 집에 들어가 고단한 몸을 누이기 바쁜 삶을 평생 살아온 분들한테는 어색한가 봐요. 이용을 잘 안 하시네요."


김 교수는 부부가 살아갈 집도 집이지만, 몇 가구 살지 않는 마을도 살기 좋게 꾸밀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현마을은 금수산 자락과 청풍호 사이에 자리 잡은 '학' 모양의 분지형 마을입니다. 행자부의 아름마을로 선정돼 마을에서 공동으로 펜션을 운영하는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지세를 바탕으로 비교적 윗마을 아랫마을 다 합쳐봐야 30호 안팎이고, 여느 마을처럼 노인들만 남아 힘겹게 살아가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최고의 자산인 전형적인 산촌마을입니다.

"저 창밖으로 보이는 소나무숲을 한번 보세요. 창문이 아니라 그림이죠. 이 복 받은 자연을 선물 받은 아름다운 마을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길도 좀 꾸미고, 집도 좀 살기 편하게 고치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가난한 노인들한테 돈 들어가는 일을 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돈을 대서할 일도 아니니…."

▲ 학고개 숲 이야기 터
ⓒ 정기석
김 교수의 바람은 소박합니다. 비현실적이도 않습니다. 국립 서울대 교수입네 혼자만 따로 떨어져 잘 살아보려고 내려온 게 아닙니다. 이제 어엿한 학고개마을의 주민으로,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아보려고 내려왔습니다. 멀지 않은 날, 김 교수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오래된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원주민 정기석이 쓴 이 기사는 월간마을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귀농, #귀틀집, #충북 제천, #학고개 숲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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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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