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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때들과 염소들이 한 가로 히 밤길을 걸었으며 심심해진 염소는 가끔 역 안으로까지 들어와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소 때들과 염소들이 한 가로 히 밤길을 걸었으며 심심해진 염소는 가끔 역 안으로까지 들어와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 조태용
인도 중부 광활한 평야지역에 작은 역 부사왈, 저녁이 되자 한낮의 불볕더위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시원한 바람이 대륙 저편에서 불어왔다. 역에는 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우리가 가려는 부사왈역에서 잔시역까지는 1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사람들은 역 앞에 자리를 깔고 가족들끼리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을 지붕 삼아 잠을 청했다. 소들과 염소들이 한가롭게 밤길을 걸었으며 심심해진 염소는 가끔 역 안으로까지 들어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누구도 염소를 쫓지 않았고 심드렁해진 염소는 다시 역 밖으로 빠져나갔다.

인도에서 흔하게 보이는 노숙자들과 거리의 아이들 이들에게 꿈이 있을까?
인도에서 흔하게 보이는 노숙자들과 거리의 아이들 이들에게 꿈이 있을까? ⓒ 조태용
"어디로 가시죠?"
"잔시로 가는데요."

"그래요. 몇 시죠?"
"10시요."

"아직 많이 남았네요. 역 안에 들어가면 외국인으로 위한 휴게실이 있어요. 그 안에 들어가서 쉬세요."


갑자기 다가와 말을 건넨 사람은 역에서 짊을 옮기는 일을 하는 쿠리였다. 짐 옮기는 일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는 "여행하는 당신들이 너무 부럽다"며 자기는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얼굴엔 가난에 힘겨운 표정이 역력했다. 검은 수염을 멋지게 기린 마른 체형에 가름한 얼굴을 한 선한 표정의 사내였다.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당신의 꿈이 뭐요?" 이렇게 물었다. 내가 왜 그때 그에게 꿈에 대해서 물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우울하게 웃더니 "나는 가난해서 꿈이 없다"고 짧은 영어로 말했다. 쿠리는 너무나 가난한 직업이어서 꿈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난 때문에 꿈과 희망을 가지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며 체념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나도 예전에 꿈이 있었다. 하지만 사는 것이 힘겨운 사람에게 꿈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이고 그런 것을 좇기엔 난 너무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여기 의자보다는 휴게실에 의자가 편하고 좋아요. 거기 가서 쉬세요. 외국인은 거기서 편히 쉴 수 있어요"라고 다시 말해주고는 역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에게 꿈이 뭐냐고 물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

당신에게 꿈이 있는가?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는 청년은 장래 희망 역시 프로그램개발자라고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한 청년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는 청년은 장래 희망 역시 프로그램개발자라고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한 청년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했다. ⓒ 조태용
쿠리가 자리를 떠나자 이번엔 젊은 인도 청년 두 명이 말을 걸었다. 한 명은 바라나시로 간다고 했고 한 명은 친구를 배웅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는 청년은 장래 희망이 프로그램개발자라고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한 청년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은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멋지게 불러주었다. 목소리가 참 좋았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주었다. 돈을 벌어서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여자친구의 모습은 예뻤다. 그게 그의 꿈이라고 했다.

두 청년에겐 꿈이 있었다.

한 청년이 가방에서 비노바바베의 작은 석고인형을 꺼내 선물로 주었다. 비노바바베는 인도의 최상층 카스트인 브라만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인도의 독립과 가난한 자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인도에서 가장 천대받는 육체노동자가 되어 평생을 헌신했다.

그는 간디와 함께 사티하그라하(비폭력저항운동)을 이끌었고 1950년부터는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 토지헌납운동(부단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무려 20년 동안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어다니면서 지주들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당신의 땅 중에 6분의 1의 토지를 헌납하라고 설득했다.

그는 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득하며 맨발로 걸으며 호소하였다.

"도둑질은 범죄이지만 많은 돈을 쌓아놓는 것은 도둑을 만들어내는 더 큰 도둑질입니다. 돈이 많다는 사실로만 존경받는 자리를 내주면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땅 없는 가난한 이들을 여섯째 아들로 생각하고 그를 위해 소유한 땅의 6분의 1을 바치십시오. 부자의 이기심은 벽과 같지만 그 벽에도 작은 문은 있습니다. 벽을 깨고 들어가기보다 문을 찾아 들어가십시오. 부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선함'의 문을 찾아 들어가려면 먼저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런 그의 호소와 헌신에 많은 이들이 깊이 감동하여 마침내 거대한 토지(약 400만 에이커)를 헌납받아 토지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주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의 여행은 지속되었고 그는 자신의 기나긴 여행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그 청년은 나에게 비노바바베는 여전히 성자처럼 숭배받고 있으며, 자신은 그를 시바신 다음으로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준 선물은 안나푸르나를 넘어오면서 사라졌다. 아마도 설산 어디에서 비노바바베의 석고상은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물은 준 청년들은 기차를 타기 위해 사라졌다. 기차는 정시보다 30분 늦게 도착했고 우리는 늦은 기차를 타고 잔시로 떠났다. 덜컹거리는 기차는 대륙을 가르면 밤길을 달렸다.

당신에게 꿈이 있는가? 어쩌면 이 질문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지난 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유기농직거래 참거래농민장터(www.farmmate.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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