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일리노이주 카본데일에서 남쪽으로 3시간 30분쯤 가면 테네시주의 멤피스(Memphis)라는 도시가 나온다.
우리에게 멤피스는 존 그리샴(John Grisham)의 법정 스릴러 소설들(<더 펌> <의뢰인> <레인메이커>)를 통해 알려져 있다. 멤피스는 미시시피강가에 있는데 미시시피강을 통한 물자수송과 인구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이다. 미시시피강은 미국 내륙지방을 종단하여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즈를 통해 멕시코만으로 흘러드는 큰 강이다.
19세기 미국의 서부진출시대에 서부로 이주하려는 이들은 어디서든 미시시피강을 건너야만 서부로 갈 수 있었고 이런 이유로 미시시피강 연안에서 서부와 동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가 되는 도시들이 몇몇 생기게 되었다. 대표적인 도시가 중부지역에서는 미주리주와 일리노이주 사이의 미시시피강에 있는 세인트 루이스였다.
멤피스는 남부의 아칸소주, 테네시주, 미시시피주 세 주 사이에 있는 교통의 요지였는데, 세인트 루이스가 서부로 진출하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할 도시였다면 멤피스는 미시시피강의 상류와 하류를 연결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상류와 하류로 물자와 인력이 이동하다보니 자연스레 이 강을 통해 문화가 전파되기도 했는데, 재즈와 블루스와 같은 흑인음악들이 미시시피강을 통해 미국의 북부로 전파되었다.
이집트의 나일강이 지중해쪽으로 삼각주를 이루었듯이 미시시피강도 하구에 삼각주를 이루었다. 미국의 백인이주민들이 자기네가 살던 도시 이름을 미국의 각 땅에 갖다붙이곤 했는데 미시시피강이 이집트의 나일강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나일강 유역의 지명들을 미시시피강 연안의 도시나 마을에 부친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일리노이주의 남단에 미시시피강 연안에는 카이로(Cairo)나 테베(Thebes)와 같은 지명을 지닌 작은 마을들이 있고, 테네시주에는 멤피스가 그런 경우이다.
그렇지만 멤피스는 딱히 내가 그렇게 좋아할 만한 구석이나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를 찾아간 이유는 순전히 한 사람 때문이다. 그는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이다. 비단 미국 팝 음악을 잘 모르더라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락앤롤 음악의 발전사에서 그룹으로는 영국의 비틀즈가 지대한 공헌을 끼쳤다면 개인으로서는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 누구보다 뛰어난 기여를 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듣던 어떤 팝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팝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아티스트 100명의 순위를 정한 적이 있는데, 2위는 비틀즈, 1위가 엘비스 프레슬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기여한 것은 음악적으로는 재즈와 블루스라는 흑인음악과 컨트리, 발라드같은 백인음악을 합성하여 전미국인과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락앤롤 뮤직으로 승화시켰다는 데 있다. 이소룡이 쿵후, 태권도, 유도 등 아시아의 제반 무술을 합성하여 절권도를 창안하듯이 엘비스 역시 '문화적 합성(cultural hybrid)'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안, 발전시킨 선구자가 된 것이다.
또한 엘비스 이전의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아이돌 스타들이 라디오와 영화를 통해 아이돌 스타의 위치에 오른 데 비해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0년대 당시로서는 뉴 미디어였던 텔리비전의 음악프로그램을 통해 락앤롤 음악과 건들거리는 락앤롤의 몸짓을 전파함으로써 제임스 딘같은 배우가 지녔던 청춘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어떤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 등장할 때에는 그 현상을 대표하는 주자들이 있게 마련인데, 80년대 뮤직비디오에서는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그런 현상의 대표주자였다면 엘비스 프레슬리는 텔리비전과 락앤롤, 그리고 20세기 대중문화와 청년문화의 비조였던 셈이다.
미국인들에게 엘비스 프레슬리는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를 '왕King'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엘비스가 미국인들의 인민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난한 남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락앤롤 음악 하나로 세계를 정복하고 정상에 올랐기에 그의 성공은 아메리칸 드림을 잘 형상화하고 있으며 그의 개인사적인 불행은 그를 아꼈던 이들에게 동정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부러움과 동정, 숭배의 감정이 결합하여 엘비스 프레슬리와 관련된 것들이 신성시 되기에 이르렀다.
멤피스에 가면 엘비스 프레슬리 블루바드(Elvis Presley Boulevard)라는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 선상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생전에 살던 집, 그레이스랜드 맨션(Graceland Mansion)이 있다. 지금은 성역화된 곳이고, 그러다보니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관광이라는 것은 그 지역의 빼어난 특성을 즐기는 측면도 있지만, 이렇게 찾는 이들의 '집단적인 기억'이 그 지역을 관광지역으로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자 그럼 이제 그레이스랜드는 어떻게 조성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자. 일단 엘비스 프레슬리 블루바드를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다 보면 왼쪽에 그레이스랜드 맨션이 있고 길 건너편인 오른쪽에 매표소와 기념품 가게, 주차장 그리고 엘비스의 노래와 같은 이름을 지닌 허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이 있다.
매표소에 가면 코스별로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는데 가장 싼 것은 엘비스의 집만 보는 그레이스랜드 맨션 투어로 25달라, 그 다음은 집을 보고 엘비스가 쓰던 물품을 전시한 곳들도 패키지로 플래티넘 코스가 30달러, 그리고 가장 비싼 68달러짜리 VIP 코스가 있다. 그렇지만 이 가격들을 다 제 값 주고 사는 것은 아니고 학생 할인을 통하거나 아니면 멤피스 관광 안내 웹사이트에서 할인쿠폰을 다운로드 받아서 약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그래봤자 10%지만.
방문객이 많아서 그런지 티켓을 사고도 1시간쯤 기다린 후에야 맨션으로 갈 수 있었다. 맨션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매표소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그냥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위치지만 조를 짜서 단체로 관람시키는 것이 관리하기에 편해서 이렇게 한 것 같다. 셔틀버스에 탈 때 디지털 라디오 장치를 주는데 이 장치에는 맨션과 전시물에 대한 안내와 설명이 녹음되어 있어서 고유번호를 누르면 관련된 설명이 나오게끔 되어 있다.
일단 맨션 안에 들어가면 2층은 아직도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공개를 하지 않고 1층의 거실, 식당, 침실, 지하의 오락실, 당구장이 있다. 맨션을 나오면 뒷켠의 엘비스의 아버지가 쓰던 작업실과 엘비스의 트로피와 의상을 전시해둔 곳, 엘비스가 승마를 즐겼음직한 목장 그리고 엘비스의 가족무덤이 있다. 엘비스의 집 자체는 엘비스가 살아 생전에 누렸을 사치스러운 모습, 미국 중산층들이 생각하는 편리와 부의 개념이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들이 성공한 후에 어머니께 집을 장만해드리는 얘기가 신문 연예란에 나오곤 하는데 그레이스랜드도 엘비스가 스타덤에 오른 후에 어머니에게 사드린 집이다. 얼핏 미국인들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엘비스처럼 가족에 대한 애착이나 부모에 대한 효심을 지닌 이들도 많다.
엘비스의 집을 나온 다음에 매표소 근처에 있는 엘비스가 타던 자동차만을 전시한 곳, 엘비스가 라스 베가스에서 입던 깃세운 옷만을 전시하던 곳, 그리고 엘비스가 타고 다녔던 자가용 비행기를 보면 어느 정도 구경은 다하게 된다.
집구경을 마친 후에 같이 갔던 일행들과 함께 멤피스 시내의 빌가(Beale Street)로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자동차가 못 다니게 막아놓았는데 길 양쪽의 카페와 레스토랑은 안쪽이 온통 재즈와 블루스 뮤지션들이 생음악을 틀어놓고 길거리의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는 곳이었다. 그렇게 엘비스와 미국 남부, 재즈뮤직의 향연을 마치고 다시 3시간 30분 동안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사이월드 미니홈피와 시네21의 개인 블로그 '사과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그레이스랜드에 대한 정보는 http://www.elvis.com/에 들어가면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