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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꽃에 박혀 꿀 빠느라 정신없는 노랑나비
부처꽃에 박혀 꿀 빠느라 정신없는 노랑나비 ⓒ 조명자

두 날개 쫑긋~ 흰나비
두 날개 쫑긋~ 흰나비 ⓒ 조명자

간밤의 꿈이 너무 생생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전 모습 그대로 나타나신 것이다. 우리 엄마가 할머니 옷차림을 볼 때마다 "개절치 않다(칠칠맞다)"고 흉을 보던 그 옷매무새 그대로 나타나신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만 원만 달라고 하셨다.

뭐에 쓰실 거냐고 물었더니 차비하실 돈이란다. 허연 무명 저고리 아래 아무렇게나 둘둘 말아 짜 맨 치마는 칠 부 길이였다. 숱 적은 머리카락을 틀어 모아 은비녀로 힘겹게 찌르신 모습도 여전했다.

꿈속에서도 "어, 할머닌 돌아가셨는데…"하는 생각이 퍼뜩 나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어서 할머니를 보낼 요량으로 지갑을 열어 만 원을 꺼내 할머니 손에 쥐어 드리고는 흐지부지 꿈이 깨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니 기분이 영 찜찜하다. 돌아가신 어른들을 꿈에 뵈면 우환이 끓는다는데. 가뜩이나 여기 아파, 저기 아파 골골대시는 아버지가 맘에 걸렸다. 혹시 할머니가 이참에 아드님 모셔가려고 그러시는 거나 아닐까?

얼마 전에 아버지 꿈에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단다.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할아버지 뒤를 열심히 따라가는데 할아버지가 "어디를 쫒아 오느냐?"고 막대기를 휘두르며 역정을 내시더란다. 꿈을 깨고 나서는 아버지가 한숨을 푹 내리쉬셨다.

할아버지를 따라 갔으면 꼼짝없이 저승길로 가는 것인데 "아버님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이 아버지 해몽이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 엄마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더 따랐는데, 저승과 이승의 거리가 이토록 먼 것인가?

아무리 그리운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돌아가신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나면 여전히 무섭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할아버지는 약주를 끔찍이 좋아하시는 애주가였고, 할머니는 놀기 좋아하고 꽃 가꾸기 좋아하는 한량이셨다.

안팎이 뒤바뀌어 할아버지는 성격은 급하셔도 당신 식솔 잘 챙기고 꼼꼼한 성격인데 반해 할머니는 완전히 건달이셨다. 부엌살림은 일찌감치 며느리한테 맡기고 당신은 밖으로만 도셨다. 엄마가 갓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 연세가 42살이었다니 우리 할머니는 팔팔한 그 연세에 벌써 시어머니 자리를 차지하시고 살림을 나 몰라라 하셨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가 좋았다. 우선 대단히 낙천적인 성격이라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셨다. 며느리가 해드리는 것 잡수시고 밭일 없으면 무조건 마실을 다니셨다. 마실 다니다 혹시 누가 체했다고 하면 아픈 사람 끌고 영등포 체 내리는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길눈 어두운 시골 사람들에게 대처 나들이는 쉽지 않은 걸음이다. 게다가 영등포 시장 골목 꼬불꼬불한 길 한 구석에 처박힌 체 내림 집은 길눈 밝은 사람도 한두 번 가봐서는 찾기 힘든 집이었다. 그런 골목골목을 훤히 꿰뚫고 계시는 양반이었으니 동네 사람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길동무였을까.

체 내림 집은 물론 어디어디 한약방, 무당집이 용하다네 하면 금방 할머니 단골이 되었다. 당신 스스로도 약을 무진장 좋아하는 양반이었지만 한약방, 무당집 측에서 보면 공짜로 부릴 수 있는 '삐끼'가 바로 우리 할머니셨다.

언문에 능통하시고, 아는 것도 많은 우리 할머니는 까막눈이 많았던 그 시절 시골 아낙 사이에 신망을 받는 어른 중에 하나였다. 덕분에 밖에 나갔다 들어오실 때 빈손으로 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떡이나, 엿이나 하다못해 부침개까지. 할머니 손에 들려오는 이바지는 종류도 다양했다. 그 중에 우리 할머니가 제일 욕심을 냈던 물건은 단연 꽃 종류였다. 어느 집 마당에 귀한 꽃이 있다네 하면 단박에 달려 가셨다.

백일홍 꽃밭
백일홍 꽃밭 ⓒ 조명자

백일홍 처녀
백일홍 처녀 ⓒ 조명자

아무리 귀한 꽃이라고 어떻게든 주인장 구슬려 한 뿌리 얻어 올 만큼 할머니 꽃 욕심은 집요했다. 할머니 덕분에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집 뒤란은 그야말로 꽃 천지였다. 백일홍, 채송화, 족두리꽃, 양귀비꽃…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꽃들이다.

백합, 달리아가 풍성했던 한여름. 대청마루 뒷문 활짝 열어젖히곤 손녀딸들을 당신 무릎 아래 졸졸이 뉘였다. 그리고는 봉숭아 꽃잎과 백반을 섞어 방망이로 짓이긴 것을 손톱 위에 올려놓고는 비닐로 꽁꽁 싸맸다.

연분홍 봉숭아꽃
연분홍 봉숭아꽃 ⓒ 조명자
어찌나 빡빡하게 옭아맸던지 조금만 지나도 손가락이 저려왔지만 봉숭아물이 들 때까지는 묶인 비닐을 절대로 풀지 못하게 했다. 반달 같은 하얀 손톱눈만 남기고 짙은 적색으로 물든 손톱. 깎고 깎아 나중엔 초승달처럼 가녀린 봉숭아 물 들인 손톱을 만져주시며 "내년에 또 들여 주마" 하시던 할머니 얼굴이 어제인 듯 생생하다.

할머니 닮아 놀기 좋아하고, 꽃 좋아하는 맏손녀가 우리 할머니처럼 꽃밭을 가꾸고 산다. 할머니 스케줄대로라면 이 나이에 열 살 먹은 손녀딸이 있어야 하는데 시절이 시절인 만큼 손자손녀 볼 날은 까마득하다.

아기 범부채 잎새에 내려앉은 노랑나비
아기 범부채 잎새에 내려앉은 노랑나비 ⓒ 조명자

부처꽃에 앉은 흰나비
부처꽃에 앉은 흰나비 ⓒ 조명자
할머니 생각이 나 봉숭아, 채송화, 백일홍 흐드러진 꽃밭을 거닐다 문득 노랑나비 한 마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검고, 희고 노란 색이 정신없는 호랑나비는 많이 봤어도 노랑나비는 언제 적에 봤는지 가물거릴 만큼 귀하신 몸이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어렸을 적에 즐겨 불렀던 동요가 절로 나온다. 너무나 반가운 김에 안으로 뛰어 들어가 디카를 갖고 나왔다. 예쁜 놈이 혹시 날아가 버렸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꽃밭 안에서 종횡무진이다.

형편없는 사진솜씨를 한탄하며 어렵게 한 컷 한 컷 찍는데 이것이 뭔 일이다냐? 노랑나비 근처에 흰나비 한 마리가 팔랑대고 있다. 노랑나비, 흰나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맏손녀 못 잊어 찾아오신 것만 같아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다.

손톱에 봉숭아물 들여 주시던 할머니는 안계시지만 옛 생각 하며 봉숭아물 좀 들여 볼까? 때마침 봉숭아 포기가 아름드리 우거져 있다. 어린 아이 울음소리 멎어버린 시골 고샅길. 봉숭아 물 들여 줄 아이들이 그립다.
#할머니#노랑나비#흰나비#봉숭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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