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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늘 교육노동자라고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오늘은 왜 이렇게 한없이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당신들에게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선생이라는 것을 감추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당신들 옆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당신들과 그리고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는 그 선한 눈동자들을 보며 한번 더, 나는 작아지고 자꾸만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나는 당신들의 당당함에 질식할 것 같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흔들림 없는 동지애에 가슴이 아립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당신들과 함께 이 자리에 있다는 벅찬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더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당신들 중, '선생'들에게 칭찬받고 존중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당신들 중 노동과 평등의 가치, 그리고 연대의 중요성을 선생들로부터 배워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가 아니라, '땀흘려 일하는 즐거움'을 얘기해 준 선생을 만나본 적이 있기는 한가요?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내가 칭찬하고 사랑했던 성적 좋은 아이들이 서울대를 나와 판사·검사가 되고, 그들이 당신들의 노조위원장을 잡아 가두라고 허락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죄스럽니다.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인 당신들에게 100만원도 안되는 돈을 월급이라고 주고는, 서울로 인천으로 발령을 낸 못된 사장님을 잡아가두기는
커녕, 그들의 '점방'을 지켜주기 위해 당신의 아들들을 저렇게 시커멓게 세워 놓은 높으신 양반님네들이, 다들 우리 선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을 것이라는 확실한 추측이 기가 막힐 뿐입니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라는 급훈이 버젓이 걸려있는 교실에서 '하면된다'고 다그치며 마치 모든 아이들이 대기업 회사원으로, 의사·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떠들어댔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조퇴나 결석이 무슨 엄청난 범죄라도 되는 냥, 몸이 아프다는 아이마저 학교로 불러내야만 교사의 본분을 다하는 줄 알았던 쓸데없는 사명감이 당신들 앞에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제 몸뚱아리 보다 공장과 회사의 이익이 더 중요하도록 가르쳤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선생들의 사랑을 덜 받았을 당신들이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얘기하고 자신만의 안위가 아닌 모두의 희망을 위해, 잡혀가고 끌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합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선생들이 가르쳐 주지 못한 연대와 저항을 이렇게 한순간에 깨달아버린 당신들 앞에 '선생'은 한없이 작아집니다.
이제 이 땅의 교사들이 어떻게 노동을 가르치고 평등을 얘기해야 하는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구호가 아닌 진정성으로 '선생'을 깨우쳐 준 당신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대다수가 노동자인 학부모와 또 그들의 아들 딸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일깨워 준 당신들께 따뜻한 동지애를 담아 거듭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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