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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민간인 23명이 납치된 사건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 동안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간헐적으로 몇 명의 기자, 구호요원, 해외 업체 직원 등이 납치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20여 명이 집단으로 납치된 것은 이례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도적 활동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 박은조 한민족복지재단 이사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과 관련해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사건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납치된 사람들을 파견한 교회와 단체이다. 이들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아프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봉사단원들을 파견했다고 밝혔지만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의 궁극적 목적이 선교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여자들이 모두 단기선교봉사라는 명분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자신들의 행동이 궁극적으로는 선교에 도움이 될 것임을 믿고 있었다는 것도 이런 비난을 받게 했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가 인도적 활동을 위해 세계 각지에 봉사자들을 파견하거나 현지에 지원시설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세계인과 고통을 함께하고 그들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은 칭찬하고 격려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선교라는 궁극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이뤄지는 한국교회의 활동을 순수한 인도주의의 맥락 안에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인도적 구호활동이나 봉사활동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 신념, 신앙에 의해 정당성을 확보한 인도주의 정신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선교를 목적으로 한 봉사활동은 뚜렷한 목적이 개입된 것이므로 인도적 활동이라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세계의 많은 기독교 단체들과 기독교인들이 선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적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인도적 활동을 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일이다.

구체적 목적이 개입된 인도적 활동은 한국교회에만 그치지 않는다. 각종 단체들도 해외로 영역을 넓히고 단체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현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나 준비가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공동체의 분열과 대립 상황의 악화 등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자신들은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말하겠지만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고달픈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행동일 수도 있다. 한 사회에서 일하기 위해 수년 또는 십여년 동안 서서히 신뢰를 쌓고 현지인들과의 적극적인 협력 속에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세계의 많은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활동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무력 분쟁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

냉전 종식 후 지구촌은 각종 무력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냉전 후 무력 분쟁의 특징은 국가 사이의 대립이 아닌 한 국가 내 분열된 집단 사이의 대립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국내 분쟁 당사자들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 사이에 적용되는 '게임의 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변화한 무력 분쟁의 일반적 양상과 각 분쟁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시작은 국가 사이의 전쟁이었으나 현재 진행되는 무력 분쟁은 내전 상황이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종교적, 인종적으로 생각을 달리하는 집단들의 대립이 미국이라는 강력한 외부세력의 영향과 맞물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들 내전에서 반군이라 불리는 무력 분쟁 당사자들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를 상대하기 위해 국가간 전쟁의 경우에는 생각할 수 없는 자살폭탄 테러와 납치 등 민간인까지 희생시키는 전략 전술을 쓰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이슬람 세계가 기독교 서방세계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는 급진 이슬람주의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

아프간 분쟁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미국과 서유럽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그들에 협력하는 나라 등 모든 비이슬람 세계에 대한 탈레반의 방어와 공격 정서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침공으로 몰락한 탈레반 세력은 서방세계의 지원을 받아 아프간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아프간 정부가 이슬람 세력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탈레반이 서방의 지원으로 재개된 제도적 학교교육을 거부하고 학교와 학생들을 공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들이 가장 적대시하는 것은 자신들의 땅에 외부 세력이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들의 전통적 사회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 전통에 뿌리를 둔 서방세계에 대한 적개심은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진다.

현장을 고려한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한 이유

수십 년간 인도적 지원 활동에 종사해온 이름 있는 국제단체들이 90년대 후반 채택한 것이 'Do No Harm/해 끼치지 않기' 원칙이다. 이 원칙은 무력 분쟁과 사회적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 활동할 경우 외부세력으로서 고민하고 지켜야 할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순수한 인도주의에 입각한 활동이라 할지라도 외부세력의 개입이 분쟁과 사회적 갈등 자체에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 이론이 주장하는 최선의 선택은 상황을 개선시키지는 못할지언정 악화시키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휴전 후 또는 재난 후 밀려드는 인도주의 단체들은 사회의 지각을 변동시키고 물가인상과 부도덕한 상행위 등 지역 경제에도 예기치 못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인종 분쟁이 심한 지역에서 한 집단을 지원함으로써 갈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고, 종교적 갈등이 첨예한 지역에서 종교적인 색깔을 드러냄으로 지원을 받는 대상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무장경호대를 이용하는 것이 무력 사용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될 수 있고, 르완다에서처럼 난민 캠프 지원이 결국 가해자를 돌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의도가 정당하고 옳다고 해서 그것이 현장에서 원하는 것은 아닐 수 있고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활동이라 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상황의 발생으로 분쟁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탈레반 세력이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고 아프간 정부, 한국 정부, 그리고 간접적으로 유엔까지 자신의 협상 상대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현재 탈레반은 아프간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가중시키기 위해 자살테러 공격과 다국적군과의 무장 대결을 강화하고 있다.

탈레반은 이번 협상을 지렛대로 자신들 투쟁과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세를 넓히기 위해 향후 납치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에 더욱 더 의존할 수 있다. 또한 이라크에서 자주 발생한 납치와 처형 방식의 '효과'를 시험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결국 안전을 철저히 담보하지 않은 조심스럽지 못한 접근이 의도치 않게 아프간 분쟁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게 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도움을 받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더구나 종교, 인종, 뿌리 깊은 사회적 갈등이 얽혀진 무력 분쟁 상황의 경우에는 더욱 더 조심스럽고 분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해외에서 인도적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의 많은 교회와 단체들은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을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태그:#아프간분쟁, #탈레반, #아프간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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