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프라우요흐를 내려오자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오전에 전날 저녁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 술 약속을 한 것이 5시경이었는데, 벌써 1시간 이상 지났으니 만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술과 고기를 사서 우리 5명이서 조촐하게 한 잔하는 걸로 결론을 짓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호스텔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깜짝 놀랐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함께하자고 권하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늦은 마음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반갑게 맞아주며 함께하기를 권하는 그들이 고마웠다. 우리가 장봐온 먹거리들도 나누면서 그렇게 인터라켄에서의 밤도 즐겁게 깊어만 갔다.
알고 보니 나이도 우리와 비슷한 그들은, 그들도 프랑크푸르트 전을 보면서 만나게 된 사이라고 했다. 현기, 나와 동갑내기인 준현이는 함께 온 병욱이와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는 유학생이라고 했다.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을 못 잊어 졸업 전 독일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와는 달리 형님으로 보였던 정도는 대체에너지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했고, 남들의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촬영에 여념이 없던 지은이는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는 PD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말한 미현이는 어린 나이에도 당시 3개월째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다섯과 새로 만난 다섯 모두, 누구하나 특별하지 않은 사람, 유쾌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여행이 주는 큰 즐거움이 평소에는 만나보기 힘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여행을 하고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금방 친해지는 것이다. 오늘 만난 이들도 그런 여행의 큰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3일 뒤 라이프치히에서 있을 프랑스전을 볼 계획인 것을 확인하고는 우리는 금방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함께 모여 응원하기로 다짐하고 너무나 즐겁게 그날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의 모임은 장난 같지만 '인터라켄 돼지껍데기파'로 이름 붙여졌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준현이네가 우리와 함께 먹으려고 장보아 둔 물건 중 돼지껍데기가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라켄 서역 근처에는 한국 식료품을 파는 음식점이 있다. 물가가 비싼 스위스인데다가 멀리서 온 한국음식들이니 가격이 쌀리는 없지만, 오랜만에 즐겁게 먹자고 소주 몇 병과 냉동삼겹살을 샀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구입을 하니, 주인아주머니가 덤으로 돼지껍데기를 주셨다고 한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스위스까지 와서 소주에 돼지껍데기를 먹어보다니 말이다. 더구나 집을 떠나 러시아와 북유럽을 돌아다니며, 지난 2달여간 한국음식은 거의 먹어보지 못한 나에게 소주와 삼겹살, 그리고 돼지껍데기는 정말 감동이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오랜만에 만난 음식들과, 음식보다 더 반갑고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하니 그날 밤은 너무나 즐거웠다.
취리히가 아니라 쥐~릭
준현이네와 정희, 자영이는 라이프치히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다음날 먼저 인터라켄을 떠났다. 동구형, 현기, 나, 이렇게 우리 셋은 인터라켄에서 하루 더 머물며 에너지를 좀 충전하고 17일 취리히로 갔다. 취리히로 간 것은 라이프치히 행 야간열차를 타려면 취리히로 가야하기도 했고, 스위스까지 와서 인터라켄에만 머물다 떠나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17일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우리 셋은 인터라켄을 떠나 취리히 행 열차에 올랐다. 국토가 온통 그림 같은 풍경인 스위스는 아무 기차나 잡아타고 풍경을 구경해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서둘러 기차를 탄 탓에 혹시 잘못 탄 게 아닌가 싶어서 주변의 할머니에게 이 기차가 취리히 가는 것이 맞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닌가! “Where?” 하며 계속 되 묻기에 나중에는 기차 시간표에 나온 'Zurich' 철자를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아하~! 쥐~릭!” 이러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인 즉 취리히라고 발음하면 어느 스위스 사람도 못 알아듣는단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너희 나라엔 Z자와 CH 발음이 없는 것을 안다하시면서 스위스 인상에 대해 되물어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라데팡스를 찾아갈 때 만난 프랑스 아저씨도 라데팡스라는 우리 발음을 못 알아듣고 철자를 보고나서 “아~! 레뒤폰~스!” 하던 기억이 나서 현기와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 최대의 도시라는 취리히는 금융과 패션, 관광의 중심지라고 한다. 특히 국제행사가 많은 스위스에서도 특별히 행사가 많은 곳으로 거의 매일 행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종종 스위스의 수도를 취리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위스의 수도는 베른이다.
취리히의 첫 인상은 스위스 패션의 중심지답다는 느낌이었다. 취리히의 중심거리라 할 수 있는 기차역거리(Bahnhofstrasse)에는 온갖 명품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차림새가 무척 세련되었다. 파리의 샹젤리제거리나 로마의 스페인광장 거리의 사람들과 비슷했다.
라이프치히로 가는 김에 들르기로 한 베를린 행 야간 기차를 타기에는 아직 6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취리히 호수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기차역 거리를 따라 바로 내려오면 취리히 호수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취리히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도 풍경이지만, 유레일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탈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한 2시간 정도 취리히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정말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 갑판으로 나가 의자에 앉아있으면 호수 주변의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쁜 스위스의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한 팀은 신혼부부와 그의 친구들이라고 했다. 결혼피로연 겸하여 왔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관심도 보이고 현기와 동구 형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멋진 포즈도 취해주었다.
12인의 인터라켄 돼지껍데기파 완성
저녁 7시 기차시간이 다 되어 취리히 역에 돌아왔더니, 이번엔 취리히 역이 서울역으로 바뀌어 있었다. 웬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취리히 역에서 한국어가 당연한 듯 들렸다. 더욱 놀란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우리가 탑승할 열차는 취리히-베를린 야간 열차였는데, 그 객차의 길이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너무도 친절하게도 라이프치히 행 객차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정확한 전후사정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만을 위해서 미리 준비한 특별 열차편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객차에는 오직 한국 사람들만 가득했다. 취리히에서 라이프치히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떠날 것을 스위스 철도 직원들은 미리 알았던 것일까?
아무튼 동구 형과 현기, 나는 경기 당일 오전 시간을 라이프치히 인근의 베를린 관광으로 계획했기 때문에 베를린 행 칸으로 갔다. 여기는 앞 객차하고는 다르게 사람도 한산했고, 한국 사람은 더더군다나 보이지 않았다.
기차가 막 출발할 무렵 올라 탄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한국 분이시죠?” 하고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현기, 나와 동갑인 그녀는 장원희라고 이름을 밝혔다. 그리고 그 베를린 행 칸에는 한국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박정현이라는 누님이셨다.
여행을 오면서 막 구입한 DSLR카메라를 잘 못 다루던 원희는 사진 전문가인 현기와 동구 형의 설명에 폭 빠졌고, 월드컵이 끝나면 북유럽을 여행하시겠다는 정현누님은 나의 북유럽 여행 설명에 귀 기우려주셨다.
“우리 내일 프랑스전 같이 응원합시다!”
그렇게 깊어가는 열차에서의 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었고, 프랑스전을 위한 필승의 응원단인 우리 인터라켄 돼지껍데기파는 12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제 라이프치히에서 프랑스를 이기는 일만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중동부 유럽 정보는 지역의 특성상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많이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여행기는 독일월드컵 이야기와 함께, 유럽 중에서 제가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와 흔히 잘 소개되지 않는 여행지를 중심으로 소개 하겠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7월 27일(금요일)에 이어집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김현기, 박동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