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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애인 전문극단 휠 단원들. 동작은 서로 다르고, 노랫말도 서로 같지 않지만 그들의 마음은 진정한 하나
ⓒ 김기
국내 어느 공연장을 가건 1층 맨 뒤에는 의자는 없지만 휠체어를 둘만한 자리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휠체어 탄 장애인이 들어와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일이다. 극장 내부에 휠체어 자리는 만들었지만 문제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 극장 안까지 오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서울의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만 해도 휠체어 장애인이 공연을 관람하기에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구경하기도 그런 형편이니 그 극장 무대에서 장애인이 공연을 꿈꾼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기존 설치되어 있는 장애인석에도 문제점은 있다. 세계장애인기구에 따르면 인류의 10%가 장애인이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등록된 장애인수가 200만이다. 아직까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 인해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수까지 추산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문화복지차원에서 우리의 현실은 지하철의 장애인서비스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 극단 휠의 신체훈련. 지도하는 이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진 못해도 그것 때문에 동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들에게 포기란 단어는 사전에서 지워진 듯...
ⓒ 김기
물론 아직도 장애인들에게 문화보다 더욱 시급한 생존권 문제가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문화복지란 말이 세월 좋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누려야 할 행복의 권리가 있다. 모든 공공시설들이 좀 더 이용하기 편리한 형태로 발전하는 속에서도 그 대상 속에 장애인이 빠져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2001년 송정아(뇌병변2급·'극단 휠' 단장)씨를 주축으로 모여 연극을 시작하여 얼마 전 최초의 장애인 뮤지컬 <사랑>까지 13회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 장애인 극단 휠의 경우를 보면, 우리의 현실이 구호로써는 장애인복지를 외치지만 실제 장애인입장에서는 여전히 턱 높은 문을 철거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시각장애인 두 사람. 한 사람은 완전히 시력을 잃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치 얼굴을 가리듯이 가까이 해서 겨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 김기
장애인전문극단 휠은 상시 활동하는 단원이 10명이고, 간헐적으로 공연에 참가하는 비활동 단원은 훨씬 많다. 비활동 단원들도 직장 등 생계문제가 해결된다면 연극에 매달리고 싶어한다는 것이 단장 송정아씨의 말이다.

극단 휠의 정기공연이 지난 6월 말경에 있었다. 장애인이 만드는 최초의 뮤지컬이란 의미를 가졌지만 언론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직 장애인 문화에 대한 뚜렷한 개념이 없는 실정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극단 휠은 언제나 그랬듯이 연습실과 공연할 극장을 찾는 것이 난제였다. 비장애인의 경우라면 대학로에 즐비한 소극장 어디라도 상관없겠으나 객석은 물론이요, 무대는 당연히 장애인을 염두에 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공연장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홍보나 관객유치를 위해서는 대학로 소극장이 월등한 이점을 가졌음에도 장애인 극단에 그곳은 그림의 떡일 따름이다.

지난 6월 무대에 올렸던 극단 휠의 뮤지컬 <사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장애인 문화접근성 확대 지원을 받았는데, 이런 지원도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송정아 단장이 처음 예술위원회(당시 문예진흥원)을 찾았을 때만 해도 장애인극단을 지원할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그 이듬해야 비로소 공식 지원분야가 작은 규모나마 생겨서 몇몇 장애인 문화단체가 지원을 받게끔 된 것이다.

공연이 잡히면 매일 연습을 하지만 평소에는 매주 한 번씩 모여 기초 훈련 및 단원들 토론으로 시간을 보내는 극단 휠을 만났다. 이들은 WCO(세계문화오픈)가 문화 단체들에 무료로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 오픈센터에서 그동안 연습을 해오고 있었다.

어느 극단이 마찬가지겠지만 장애인 극단에는 특히 더 중요한 과정이 신체기초훈련. 이날 모인 단원은 단장 송정아씨를 포함해서 총 7명. 이제 무대에 서지 않는 단장을 제외한 단원들 모두는 이들을 돕기 위해 합류한 뮤지컬 배우 이은아씨를 따라 몸 풀기를 한 시간 넘게 지속했다.

▲ 지난 6월 무대에 올렸던 뮤지컬 <사랑>의 연습 장면.
ⓒ 김기
뇌병변, 시각장애 등 각자 가진 장애가 다른 이들이기에 누구 하나의 동작도 지도자의 것과 같지는 않지만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큼은 모두 같았다. 그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바라보자니 처음에는 연민이 생겼으나 차츰 그 연민은 감탄과 존경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알고 있는 듯했다. 인간이 취해야 할 것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임을. 극단 휠 단원들이 신체 훈련을 통해 노리는 것은 발레리나 혹은 요가 고수 같은 최고의 동작이 아닌 그들을 주저앉히려는 장애를 이겨내려는 최선임을.

신체 훈련을 마치고는 차기 작품을 위한 전체 토론을 했다. 극단 휠은 지금까지 모든 작품을 집단창작 형식으로 대본을 만들어 왔는데, 그들이 무대에 올리는 이야기들이 모두 장애를 말하는 것들이기에 그렇다. 또 그렇게 만들어지는 작품의 등장인물도 극 중 이름과 실제 연기하는 사람의 이름이 같게 한다는 점이다.

단원들 중에 시각장애인이 있어서 그렇게 했겠지만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서 보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강한 의지가 숨겨 있는 것 같다.

이날도 극단 휠 단원들은 12월 장애인연극축제인 나눔연극제와 그전에 자신들을 도와준 단체들에 대해 보답할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배역 또한 연출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원들 서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연출자는 단지 그것을 조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 극단 휠을 만든 송정아 단장. 뇌병변 1급 장애인.
ⓒ 김기
여러모로 일반 극단과는 달랐다. 그들이 잠깐 보여준 연기에서도 역시 달랐다. 이 날 연습 끝 무렵 지난 6월에 공연했던 뮤지컬 <사랑>의 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사랑>의 거의 클라이맥스 부분이었다. 장애인 사내가 비장애인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었는데, 어눌하고 동작 역시 전혀 세련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사랑에 대한 간절함만은 줄리엣에 대한 로미오의 그것을 뛰어넘는 절절한 감정이 실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극단 휠 송정아 단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극을 포함한 장애인 예술은 비장애인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이 가능한 새로운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장애인 극단이라고 해서 흔히들 우울한 정서를 미리 짐작하시는데 그런 점들이 우리가 꺼려하는 점들이죠. 장애로 인해 우리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선입견입니다. 장애가 아니면 표현하지 못할 부분들을 우리식으로 그리고 밝게 표현하고자 노력합니다. 우리들의 땀과 노력이 새로운 장애인 예술장르 개척에 도움이 되어 더 많은 장애인이 거리로, 문화계로 당당히 나서게 되길 바랍니다."

송 단장도 그렇듯이 장애인들은 대부분 예술에 대한 욕구를 실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항상 자기편인 가족들조차도 연극을 하겠다는 말에는 모두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과 우려 때문인데, 극단 휠과 같은 장애인 문화단체들이 더욱 활성화되면 이런 사회 전반의 편견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우리 문화계는 또 다른 장르 개척이 가능해질 것이다.

▲ 연습을 모두 마치고 포즈를 취해준 극단 휠 단원들.
ⓒ 김기

#장애인#사랑#뮤지컬#극단 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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