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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강변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
ⓒ 강기희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더불어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생명과 평화. 생명을 가진 것들이 그 생명을 올곧게 유지할 수 있을 때만이 평화는 온다. 평화가 진정한 의미의 평화로 남기 위해선 생명존중이 전제 되어야만 가능하다.

강원도 정선의 동강. 동강의 생명은 평화롭지 않다. 그러하니 동강에선 평화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동강에서 평화를 느끼고 생명을 느끼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라고 언제고 생명과 평화를 유지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물은 인간에게 있어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고자 하는 보편적 사고인 생명과 평화를 찾기 위해 '도암댐 해체를 통한 범국민동강살리기운동본부'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단장 도법스님)과 손잡고 '평화를 위한 아름다운 동행-동강에서 도암댐까지' 동강도보순례 행사를 벌였다. 행사의 시작은 지난 16일(월)이었고, 그 끝은 23일(월)이었다.

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의 시작은 마음을 추스르는 것부터 해야 했다. 동강을 걸으며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면 도암댐까지 이르는 긴 여정을 버텨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연 질서 파괴된 동강에선 생명이란 말이 낯설다

▲ '도암댐 해체하고 동강을 살려내라'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들고 있는 소년. 소년은 이날 깃발을 들고 순례단의 맨 앞에 서서 걸었다.
ⓒ 강기희
작은 장마가 몇 차례 이어진 동강은 예상대로 검붉게 죽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비가 온 후 이틀 정도 황토물이 흐르고 나면 맑은 물이 흘렀지만 지금의 동강은 자연의 질서라는 것이 유지되지 않고 있었다. 자연의 질서가 파괴된 동강에선 생명이라는 단어조차 생경스럽고 낯설었다. 거대한 하수구 같은 동강을 바라보면 생명과 평화라는 말은 꿈 속에서나 만날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수중 생태계가 죽은 동강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동강을 살려내라'라는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든 사람들뿐이었다. 물고기 대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의 목적지는 도암댐. 발이 부르트고 종아리 근육이 뭉치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는 행보였다.

동강살리기 행보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어린 학생도 있고 평범한 주부도 있다. 휴가를 낸 직장인도 있고 월차 휴가를 받아 온 신부님도 있다. 신발끈 단단히 조여 맨 출판사 사장님도 있고 제자들에게 현장교육을 시키기 위해 학생들과 함께 온 대안학교 교사도 있다.

각자의 삶터에서 나름대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정선으로 모인 것은 죽어가는 동강을 살려내는 일에 동참하기 위함이다. 이들 중에는 예전 동강댐 건설 반대에 동참했던 사람도 여럿이다.

동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물빛이 짙었다. 정선읍내를 지나 정선아라리 발상지인 아우라지에 이르는 물빛은 차라리 물이라고 할 수 없었다. 자동차를 탄 이들의 무심한 지나침이 야속타 싶지만 동강을 외면하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그마저 슬프다.

댐이 무슨 죄, 만든 사람이 죄인이지

▲ 순례단 단장인 도법 스님과 정선군 유창식 군수와의 대화. 유창식 군수는 도암댐 해체를 반대했다. 그러나 군민은 해체 요구.
ⓒ 강기희
정선지역을 관통하는 동강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곳곳에서는 축제가 한창이고, 다가 올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쓸쓸하게 비에 젖어들고 있었다.

동강도보순례단이 도암댐에 도착한 것은 동강을 걷기 시작한 지 7일만인 22일(일) 오전 10시경이었다. 200km에 이르는 긴 여정의 방점을 찍는 시간. 그 시간에도 도암댐에선 죽음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협곡인 송천계곡을 막아 만든 도암댐은 그 자체로 흉물이었다. 생명과 평화라는 화두를 붙잡고 7일이나 걸었지만 도암댐을 목도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간 참아왔던 분노도 폭발했다.

"아무리 개발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듯 도암댐은 말이 없었다.

"도암댐이 무슨 죄가 있나. 댐을 만든 사람이 죄인이지."

"그렇다고 댐을 이대로 두어야 하나요?"

"댐이 문제라면 걷어내면 될 일 아닌가."

함께 걷던 도법스님과 순례자가 말을 주고받았다. 맞다. 도암댐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싶다. 아름다운 계곡을 막아 물 속 생명을 죽인 것은 인간이지 도암댐이 아니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이 도암댐이라면 그 댐을 걷어내면 생명은 다시 살아날 것이었다.

도암댐으로 인해 행복하지 않은 동강마을 백성들

▲ 걷고 또 걸어도 죽음의 강인 동강의 물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 강기희
▲ 정선읍내를 걷고 있는 순례자들.
ⓒ 강기희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댐 하나로 인해 인간까지 위협받고 있으면 그 댐을 걷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나 정부는 그 죄를 덮기에 급급하다. 행여 불똥이 자신에게 튈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부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왜 애끓는 마음으로 동강을 가로 질러 건너라 하시나이까?

왜 이 적막한 시인더러 그 적막하고도 가엾은 동강의 어여쁜 꽃을
지켜내라 외치시나이까?

왜 동강에 수줍어 맑음으로 사는 아이들로 개헤엄의 자유로운 영혼을
그리어 내라 하시나이까?

왜 동강을 지켜내는 먼 길, 험한 길, 희생으로 가는 길
그 길을 지게라도 지고 부수어 내어 담아내라 명령을 두고 계십니까?

왜 이 땅 외로운 지킴이 되어 피를 흘려,
강물은 더욱 푸르고, 산의 정기를 우뚝 세워
바른 세움 길을 가르치라 하셨나이까?

왜 원앙같이 붉게 붉게 피지도 못하는 믿음의 꽃을
쉬리와 같이 오래오래 피지도 못하는 영혼의 꽃을
동강에 두어 그것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걸어가라 하셨나이까?

사랑하는 친구들께서는 이미
동강 위 봄의 선구자 연분홍 진달래꽃을 보셨을 것이외다
동강 햇살 아래로 푸르게 짖어대던 여름 녹색의 감격을 맛보아 아셨을 것이외다
동강 너머 예언자의 가을 깊은 눈길을 짐작 하셨을 것이외다
동강 겨울 기둥 되어 하얀 순례자의 발걸음 인도하던 순백의 정기를 걸어보아 감격 하셨을 것이외다

사랑하는 친구들께서는 이미
어찌하여 이 나라에 태어난 가난한 선비가
속절없이 이같이도 동강을 붙들고 우는지 짐작 하셨을 것이외다?
절망을 노래하기엔 너무도 슬픈 사실이이기에
이별은 너무나 참혹한 것이기에
노래가 끊어진 강 너머 절망이 너무 큰 것을 알기에

붙들고 지켜낼 것이외다
기여코 나의 자리로 초대할 것이외다

그러나 그 동강 머리 속에 그리면서
찬바람 오고가는 산허리에서 오히려 웃으며 말할 것이외다
우린 이 강으로 인하여
"세월의 깊은 애무를 나눌것이라고"
"인간의 부끄러움을 씻어 낼것이라고"

- 도현종 시 '동강 사람의 질문과 이유' 전문


▲ 폭우를 맞으면서도 동강살리기의 염원은 멈출 수 없었다.
ⓒ 강기희
지금 강변마을 사람들은 동강으로 인해 전혀 행복하지 않다. 도암댐으로 인해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고 있으니 그것은 헌법에도 위배되는 일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헌법을 지키지 않으니 백성들이라고 그 법을 지킬 이유 없다. 그러나 정부는 법을 지키라 요구한다.

1985년 전두환 정권시절 철없는 몇몇 인간들이 저지른 일에 도암댐 하류에 사는 백성들과 물 속 생명체들만 곤욕을 치른다. 댐을 만들면서 몇 사람은 잇속을 챙겼겠지만 그 이후로는 댐을 만든 정부도 적자투성이인 도암댐을 유지하느라 세금 쏟아 붓기에 바쁘다.

우리의 걸음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 말로만 듣던 도암댐에 도착한 순례단. 도암댐은 예상보다도 규모가 작았고 물은 죽어 있었다.
ⓒ 강기희
지난 22일 순례단은 '동강에서 도암댐까지'라는 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도암댐으로 갔다. 물만 맑았으면 산책하기 좋은 길. 하지만 물은 잠시라도 마주치기 싫을 정도였다. 전날 비가 내리던 날과 달리 햇볕이 쨍쨍한 날이라 맑은 물이 더 없이 그리웠다.

도암댐은 소양강댐과 같은 사력댐. 돌을 쌓아 만든 댐이다. 전력생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전력생산이 중단된 지도 오래 되었다. 댐의 기능을 상실된 이유는 오염된 물을 방류한다는 것. 전력생산이 중단된 도암댐의 물이 동강으로 흘러가고 동강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

순례단이 도착하자 쓸모도 없는 도암댐을 지키던 경비 직원이 놀란 눈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도암댐 해체 집회라도 여는 줄 알았는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도암댐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정선 5일 장터에서 동강을 살려내기 위한 '동강생명평화기원제'를 올렸다.
ⓒ 강기희
도암댐에서 순례단은 '동강생명평화기원제'를 올렸다. 함께 한 이들은 백 번의 절을 하면서 동강이 살아나고 도암댐이 해체되길 기원했다. 몸을 한 없이 낮추어 절을 할 때마다 땀방울이 아스콘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옷이 젖어 들어갔고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미리 와 있던 방송 카메라가 학생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을 클로즈업했다. 백 번의 절이 끝나고 시낭송이 있었다. 절절한 시구에 순례자들의 표정이 날카롭게 빛났다.

"강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동강이 죽어간다는 것은 인간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동강이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도암댐을 해체해야 합니다. 동강을 살려내고자 하는 우리의 걸음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적 드문 도암댐에서 도법 스님의 강연을 듣는 이는 순례자들과 방송팀. 몇 마리의 까마귀뿐이었다. 죽음을 부르는 도암댐에서 동강의 생명과 평화를 설파하는 도법 스님의 말이 전국으로 퍼져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태그:#도암댐, #해체, #생명평화탁발순례단, #도법스님, #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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