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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회
홍어회 ⓒ 맛객

지난 16일 목포에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안 그래도 그 사람 요즘 소식 없네? 밥은 먹고 살려나. 생각을 하던 차에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맛객 지금 어디야?”
“버스 안입니다. 목포에서 올라가고 있어요. ”

“어디쯤인데?”
“어…. 여기가 안산 부근이죠.”

“나는 지금 식당에 있지. 홍어가 기가 막히게 좋다. 감태무침도 있고 말야.”
“으아~ 혼자서만 드시깁니까?”

“맛객도 곧장 일루 와”
“에이 그건 안 되죠.”

“그럼…. 이번 주 금요일 어때? 시간 돼?”
“네 좋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선릉역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의 가사가 그 사람의 시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인이면서 나물채취도 하며 강원도 산골에 살다가 최근엔 서울로 들어와 패션업을 하고 있는 정덕수(오색령)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는 자그마치 500여만원이나 한다. 산삼 2뿌리를 봤는데 그중 한 뿌리를 1천만원에 팔아서 절반은 살림살이에 보태고 나머지 500여만원으로 카메라를 구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카메라를 남이 가져갔다고 한다. 공짜로 가져가기가 미안했는지 뒷통수를 쳐서 기절시켜 놓고. 밤거리는 조심해 다니기로 하자.

식당은 선릉역에서 삼성역으로 걷다 보면 포스코 본사가 나오는데 못 가서 뒷골목에 있었다. <고운님>이란 옥호를 달고 있다. 요즘은 온갖 저질 잡스런 상호가 눈을 더럽히는 세상이다. 간만에 고운 상호를 만나니 목마른 자가 샘터를 발견한 기분이다.

장흥매생이국(1만원), 벌교꼬막(2만원), 여수서대찜(3만원), 생굴전(3만원), 영광보리굴비찜(3만원), 여수가오리찜(3만5천원), 완도마른생선찜(3만5천원), 완도마른생선젓국(4만2천원)이 있고 이밖에도 목포지도병어, 무안뻘낙지, 완도간재미, 완도아나고, 홍어 등이 있다.

메뉴들이 말해주듯 이곳은 전라도 특산물을 가져와 내 놓는 남도음식전문점이다. 때문일까? <식객>으로 우리 식문화에 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만화가 허영만씨도 이 집을 드나들고 있다고 한다.

허영만은 김영하와 함께 만화계에서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이 집을 선택했다면 음식이 기본 이상은 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홍어, 간재미, 꼬막, 매생이, 장어 등 입맛 돋구는 남도특산물

갑오징어 숙회
갑오징어 숙회 ⓒ 맛객

갑오징어는 완도에서 당일 올라와서 그런지 맛이 깨끗하다. 살짝 데친 갑오징어를 미나리무침과 함께 먹거나 초장에 찍어 먹는다. 만약 이 글을 읽는 그대가 6월에 완도에 갈 일 있다면 갑오징어를 회로 맛보기를 권한다. 부드러우면서 진득하게 씹히는 식감이 참 좋다. 산오징어와는 확연한 맛의 차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매생이탕
매생이탕 ⓒ 맛객

매생이는 겨울이 제철이지만 요즘은 냉동을 해 놓기 때문에 사철 맛 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냉동 매생이는 제철에 먹는 매생이의 풍미를 따라가질 못한다. 하지만 매생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돼지고기, 김치, 홍어를 한꺼번에 먹는 것을 삼합이라 한다
돼지고기, 김치, 홍어를 한꺼번에 먹는 것을 삼합이라 한다 ⓒ 맛객

씁쓰름한 맛의 감태무침
씁쓰름한 맛의 감태무침 ⓒ 맛객

홍어는 제법 선도가 좋다. 홍어는 무조건 퀴퀴한 냄새가 날 것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잘 삭힌 홍어는 퀴퀴하긴 하지만 기분이 불쾌하진 않다. 반대로 잘 삭히지 못한 홍어는 퀴퀴한 냄새가 진할 뿐 아니라 입에 들어가는 순간 기분까지 나빠진다. 무조건 많이 삭혀진 것만 찾는 사람은 그런 것도 맛있다고 먹겠지만 정도를 벗어난 맛은 맛이 아니라고 본다.

이 집 홍어는 삭힘에 불만이 없을 정도다. 다만 돼지고기가 평범하다는 것은 아쉽다. 내 놓고 고기가 좋다고 자랑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김치는 1년 된 묵은지를 사용한다. 완전 전라도식이 아닌 현대인의 입맛에 약간은 타협을 했다. 도시인이 먹기에 부담 없는 맛이다.

돼지고기, 김치, 홍어의 순서대로 포갠다
돼지고기, 김치, 홍어의 순서대로 포갠다 ⓒ 맛객

삼합은 홍어, 김치, 돼지고기를 함께 먹는 걸 말한다. 이때 세 가지를 포개는 순서에 따라 맛은 달라진다. 돼지고기 위에 김치를 얹고 김치 위에 홍어를 올리는 게 정석이다.

맛이 순한 순서대로 포갰다. 그래야 돼지고기의 맛을 느끼면서 김치와 결합해 맛을 증폭시키고 마지막에 홍어맛이 느껴진다. 만약 홍어가 제일 밑에 깔린다며 혀와 직접적으로 닿기 때문에 김치와 돼지고기 맛은 홍어 맛에 눌리고 만다.

맛객은 그동안 강남에서 남도식 음식을 여러 번 먹어 봤다. 결과는 하나같이 실망스럽기만 했다. 거의 모든 음식이 단맛이 한판승을 거둔 데다 너무 서울식에 치우쳐버렸기 때문이다.

이곳 <고운님>도 100% 남도식이라 할 수는 없다. 이해한다. 현대인 특히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인장의 마음이야 남도풍 100%를 고집하고 싶지만 손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식초만 해도 양조식초 대신 감식초나 막걸리 식초를 주인은 사용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식초를 여러 병 만들어 놓고 음식에 넣어보기도 했단다. 그런데 손님들이 쉰 것처럼 냄새난다고 먹지를 않는다고 한다. 해서 마음과 달리 양조식초를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이 집이 강남에 있는 집치고는 그래도 가장 남도음식에 가깝게 내놓는 이유는 완도가 고향인 주인의 의지가 한몫 하고 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묵나물이나 고향음식에 대한 향수가 있어 그런 음식들이 메뉴나 반찬구성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본만 가지고 시작해서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기는 무늬만 전라도식 식당과 차이가 거기에 있다. 그렇기에 <식객>의 허영만씨도 드나든다고 하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10728183 에 있습니다.


#홍어회#삼합#남도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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