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끝내 인질 1명 살해"와 "인질 8명 석방" 소식이 혼란스런 그대로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장식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단정적으로 '인질 석방' 소식을 제목으로 뽑았다. <조선일보>는 AP통신의 보도를 인용해 따옴표를 따 "8명은 미기지 도착"이라고 알렸다.
<국민일보>와 <경향신문>은 제목은 뽑지 않았지만, < AP통신 >과 <연합뉴스>를 인용해 "한국인 8명이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인질 8명을 석방했다는 보도가 잇따랐으나 확인되지 않았다"(혹은 "확인중")이라고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만 <서울신문>만 "22명 억류"로 제목을 뽑았다. <한국일보>도 '억류'쪽에 방점을 찍어 기사를 보도했다.
대다수 신문들은 어제 밤, 아니 오늘 새벽까지 제작시간을 연장하며, 인질 살해 소식과 인질 석방이라는 혼란스런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대다수 신문들은 결과적으로 '대형 오보'를 냈다.
신문사들로서도 결코 내고 싶었던 '오보'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 경쟁적으로 빨리 보도하고자 하는 선정적인 보도 태도 때문에 나온 '오보'라고 할 수만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이런 '오보'를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왜 이리 무책임하게 보도했느냐는 '질책'이나 '비판'을 위한 문제 제기는 아니다. 23명의 목숨, 이제는 22명으로 줄게 된 인질의 생명의 안위를 다루고 있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우리가 지금이라도 재고해야 할 점들은 없을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외신 홍수 속에 '혼돈스런 상황' 극에 달해
결과적으로 오보에서 벗어난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미확인'을 전제로 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에 따랐다고 말하고 있다.
인질 8명 석방 사실을 처음 확인 보도한 곳은 <연합뉴스>. 어제 오후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에서 나오던 8명 석방설에 이어 <연합뉴스>는 저녁 8시 58분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긴급뉴스'로 "신병인도 직후 안전한 곳 이송-'최종 연락 기다린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연합뉴스>는 이어 후속 보도를 통해 인질 8명이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방송사들도 9시 뉴스에 곧 이 같은 석방 소식을 보도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랍 위성 TV인 <알자지라>와 < AFP >가 '한국인 인질 1명 살해'를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방송사 앵커들이 9시 뉴스를 진행하면서 "혼란스럽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혼돈스런 상황'이 연출됐다.
이후에도 혼란스런 상황은 계속됐다. 일본 NHK와 AP는 밤늦게 연이어 '8명 석방' 소식을 타전했으며,
는 "석방된 이들이 "미군 바그람 기지로 이송됐다"이라고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오후 5시 54분 아프간 통신사인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는 "탈레반이 인질 협상 결렬 선언을 했다"고 보도했는가 하면, KBS는 <뉴스9>에서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스프 아마디와의 육성 통화 내용을 따서 "인질 한명을 처형했으며, 나머지 22명의 인질은 억류 중"이라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또 밤 11시 30분경 < DPA통신 >은 "8명 인질은 석방되지 않았다"고 보도해 혼선은 극에 달했다.
<서울> <한국>은 어떻게 '오보' 피했나
결국 이 같은 외신들의 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한국 신문 편집자들의 고민이자 시험대가 됐다. <조선일보>는 '외신 널뛰기 보도에 혼란·충격'이라는 기사에서 "하지만 문제는 이 모든 상황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5일 하루 종일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당국자들의 저마다 다른 얘기가 전혀 여과되지 않은 채 계속 '뉴스'로 전해졌다"고 분석하기도 했지만 <조선일보> 역시 '결정적인 판단'에서는 '8명은 미기지 도착'이라는 AP보도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석진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이와 관련 "8명이 풀려났다는 확증을 찾을 수 없었다"며 "그렇다면 '억류'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8명이 석방됐다는 외신 보도들이 있었고, 또 바그람 기지로 이송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지만, 이 같은 외신 보도를 뒷받침해 줄 그 어떤 '정황'도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강석진 국장은 "외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이들 외신 보도의 진위 여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외신 보도 내용을 뒷받침할 정황 등에 대해 편집진들이 집중적으로 토론했으며, 그 결과 '억류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8명 석방설 부인'이라고 제목을 뽑은 황유석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도 "석방설을 보도한 외신의 취재원을 신뢰하기 힘들었고, 여러 가지 나온 외신 보도들을 종합적으로, 상식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탈레반 대변인 아마디의 육성을 통해 인질 22명 억류 사실을 <뉴스9>에 보도한 KBS 국제부의 한 기자는 "아마디의 육성을 내보내면서도 사실 석방 여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며 "<연합뉴스>와 다른 외신 보도들을 인용해 '석방됐다'는 보도도 있다는 내용도 함께 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동안 아마디와의 통화 내용에 비춰 볼 때 아마디의 '전언'에 더 비중을 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단 탈레반 대변인인 아마디의 '육성'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그 자체만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검증 불가피한 정부의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
다수의 신문들이 늦게는 새벽 2시까지 제작 시간을 연장하면서 고심했지만 결국 '석방' 쪽에 방점을 찍게 된 데는 <연합뉴스>나 <중앙일보> <한겨레>가 인용한 것처럼 "8명이 곧 석방 될 것"이라는 '정부관계자'의 발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 신문 기자는 "어떻든 석방이 임박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 있었고, 그렇지 않다는 외신 보도에 대해 정부가 '시인'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 쪽 판단을 믿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오판"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외신 보도를 '상식적', '합리적' 차원에서 종합해 판단한 <서울신문>과 <한국일보>는 '8명 석방' 오보를 비껴 갈 수 있었던 데 반해 '정부관계자'의 석방 임박 발언에 무게를 실은 <중앙일보>나 <한겨레>는 결국 오보를 낸 셈이 됐다.
이 정부 관계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취재 기자들이 입을 닫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실제 어제 밤 9시 30분 경까지도 '8명 인질 석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정황이 복수의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정부가 현지 협상팀이 전달하고 있는 '협상 정보' 이외에 외신에 의존하고 있는 언론 이상으로 별도의 '정보 수집 채널'이나 '분석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일단 협상이 진행되는 민감한 상황에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대응으로 일단 '화살'을 피해가고는 있지만, 파병까지 한 나라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에 대해서는 차후 '검증'이 불가피한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