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고려대 졸업 여부 잇단 의혹'.
7월 25일에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려 있던 제목이다. 이쯤 되면 호사가들을 위한 폭로전 수준이다. 지금까지 터진 사건들로도 현 상황을 인식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한국 최고의 만화가 이현세까지 학벌사회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도 밝혀진 마당이다. 여기서 개개인들을 더 들춰내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인가?
한국사회는 사회적 자본이 고갈됐다. 공적인 신뢰가 무너지자 각 개인은 사적으로 연고망을 구축하려 한다. 심형래 감독이 고려대 대학원의 최고위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과연 고려대 출신이라고 봐야 하는가가 논란의 내용인데, 명문대 대학원 최고위 과정이야말로 연고 만들기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학벌문중은 거대한 연고망이다. 일단 그 안에 편입되면, 마치 조폭처럼 배타적인 이익 결사체의 일원이 된다. 자식을 그 안에 집어넣기 위해 전 국민이 전쟁에 돌입하는데, 그것이 입시경쟁이다. 한국의 대학이 하는 일은 교육이나, 학문이 아니라 패거리를 재생산하는 것인데, 패거리는 문중에 입문하는 것으로 확인 되므로 졸업보다 입학이 더 중요하다.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적 연고망' 쟁취해라?
가끔가다 서울대 입학 경력을 강조하는 인사들은 이래서 탄생한다. 입학을 위해선 자살까지 해가며 경쟁하지만, 졸업에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이유도 이미 학벌문중에 든 이상 한 가족이 됐기 때문이다.
일부의 사람들은 단지 입학에 미끄러졌다는 이유로 삼등국민으로 전락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깔끔하게 학벌 간판을 딸 사람은 재수, 삼수를 하고, 이도저도 다 싫은데 돈이 많은 사람은 식민지 종주국의 간판을 따러 가지만, 둘 다 못하면서 자기 이마에 찍힌 입학성적이란 낙인을 거부하는 대학생은 메뚜기 편입생이 된다. 편입을 통해 비록 적통은 아니지만 서얼로라도 연고망에 편입되는 것이다.
이미 나이가 많아 그럴 수는 없지만, 일정 정도의 수준에 올랐고, 사회 생활하면서 한국사회의 공적신뢰가 붕괴됐다는 사실을 절감한 사람들이 사적 연고망을 쟁취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이번에 논란이 된 대학원 최고위 과정이다.
대학원 최고위과정은 대학에겐 효자다. 학벌간판, 학벌연고에 한 맺힌 사람들을 대상으로 알토란같은 돈벌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간 1000만원씩 10명한테만 걷어도 1억이다. 이런 노다지 장사가 어디 있는가? 학교는 돈 벌어 좋지, 학생은 간판 따 좋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연고 나눔 사업이다.
학문 아닌 권력 추구하는 한국의 대학들
한국의 대학이 추구하는 것은 학문이나, 교육이 아니라 권력인데, 학교의 권력은 입학생의 입시성적으로 결정된다. 그 다음엔 졸업생, 즉 문중식구들이 사회에서 차지한 권력의 크기로 결정된다.
그래서 학교는 입학생 입시성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악한다. 그 다음엔 문중식구들이 한국사회의 포스트를 더 많이 점령하도록 노력한다. 그도 모자라면 이미 각 포스트를 점령한 사람들을 문중식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또 대학원 최고위과정이다.
원래 문중엔 입문절차가 가장 중요하지만, 순혈성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똑같은 비중으로 중요한 권력극대화를 위해 입문 엄격성을 약간 훼손한다 해도, 이미 권력을 획득한 자들을 문중으로 부르는 것이다(입문의 엄격성이 일반인에게 얼마나 냉혹한지는, 사람이 자살까지 해가며 원해도 입학을 허락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대학원 최고위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대학 출신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같기도 동문'이 된다. 고려대는 심형래 감독이 동문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그 대학 학벌연고망의 권력이 커지니까. 아마도 대학원 특수과정 이수자들은 학업 과정이나 졸업 이후에 그들이 분명히 동문이라고 지속적으로 말을 들었을 것이다. 심형래 감독에겐 고려대측이 동문의 대우를 해왔을 것이다.
타격할 지점은 '대학서열체제'
그러므로 심형래 감독이 고려대 출신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가 공직에 출마한 것이 아닌 이상, 사회 통념적으로 일반적인 경우에 비추어 보자면, 분명히 틀린 건 맞지만 딱히 틀린 것도 아닌 그냥 그렇고 그런 일이다. 한국사회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꼭 누구누구 유명인을 찍어 탈탈 터는 방식으로 이슈화해야만 하는가? 언론은 한 사회의 역량을 뒷받침한다. 역량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여야 한다. 이미 여러 사람 다쳤다. 이젠 사람 뒷조사 말고,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역량이 집중돼야 한다.
타격할 지점은 이미 나와 있다. 바로 학벌사회다. 학벌사회를 쳐야 한다. 학벌사회를 만드는 것은 대학서열체제다. 올 여름에 잇달아 터진 학벌 사칭 사건이 단지 호사가들을 위한 이벤트가 아닌, 한국사회의 모순을 뒤집는 계기가 되려면 이제부턴 대학서열체제를 타격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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