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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분 후의 삶> 글: 권기태
ⓒ 랜덤하우스
생의 끝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죽음이란 놈이 검은 손을 뻗어 자신의 목숨을 막 채어가려는 찰나에 이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시 태어난 사람일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떤 아픔도 슬픔도 받아드리며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일을 경험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내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이 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서 죽음의 순간 불꽃 같은 희망 하나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 분 후의 삶>. 한 시간도 아니고 십 분도 아닌 일 분 후의 삶. 삶의 막다른 곳에 이른 사람들은 자신이 삶이 일 분 후에도 지탱될 것인가 반문한다. 그러면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니 놓을 수가 없다. 희망의 끈을 놓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희망은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거짓말일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부질없는 희망을 접어버리는 게 마음의 평정을 가져온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선택할 일은 오직 하나이다. 그 거짓말이 현실이 되도록 사력을 다하는 것. 사람은 힘이 없을 때 죽는 게 아니다. 가망이 없어서 죽는다."

파도에 휩쓸려 인도양 한가운데로 떨어져 7시간의 사투 끝에 거북이의 극적인 도움으로 살아난 임강룡씨의 이야기다.

그야말로 망망대해. 그 망망대해에 어느 순간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그에겐 죽음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그 죽음이 밀려오는 순간에도 자신을 찾으러 배가 돌아올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바다에 떠 있다. 그 순간 한 마리의 거북이가 자신을 태우고 바다를 헤엄쳐 간다. 자신이 태우고 왔던 배를 향해.

거북이가 그를 구한 것은 우연만의 일일까. 어쩌면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바다에까지 전해져 그의 생명을 구한 건 아닐까.

"내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운항실습이 아니라고. 연습 없이 태어나듯 생존에는 실습이 없다고. 나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채로 몸을 내던졌다. 신체가 허공에 뜬 순간과 그대로 차가운 수면을 뚫던 순간이 구분이 안 됐다. 살아야 했고 급박했다. 몇 분을 더 살아도 비관하며 살 수는 없었다. 우리 삶에 꽃이 절실하다면 성에에 그려내기라도 해야 했다."

한겨울, 배의 폭발로 난파를 당해 죽음의 지경에 이르렀다가 살아난 21살의 꽃다운 처녀의 이야기다. 물 밖으로 나온 얼굴은 화염에 후끈거리고 물속에 들어간 몸은 꽁꽁 얼어간다. 힘은 빠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목까지 쳐들어온 순간에도 동료애를 보인다. 그리고 몇 분을 더 살아도 비관할 수도 없다는 그 의지. 그 의지가 결국 삶을 지탱하게 만든다.

사람은 힘이 없을 때 죽는 것이 아니라...

사실 죽음의 순간이란 우연처럼 누군가에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뿐이다.

산에 오르면서, 배를 타고 항해를 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누가 자신에게 엄청난 사건이 닥칠 거라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위험스럽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이 어둠 귀신처럼 찾아온다. 그러나 그 순간에 어떤 사람은 살고, 어떤 사람은 이승을 마감한다. 운명일 수도 있고 의지일 수도 있다.

이 책은 바로 죽음의 위기와 부딪쳤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생존의 기록들이다. 산사태로 진흙더미 속에 매몰되었다가 살아난 사람부터 연말 지하하수구에 빠져 지상에서 사라졌다 구조된 사람의 이야기.

태권도 유망주로 희망의 삶을 살다가 어느 날 2만2900볼트에 감전되어 팔을 잃고 살아난 사람, 비행기 추락 사고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내의 뱃속의 아기를 지켜내기 위해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했던 사람의 이야기. 극한의 고통 속에서 산을 정복하고 돌아오다 조난을 당해 발가락을 잃고도 다시 산을 찾는 산 사나이의 이야기.

생사의 기로에서 생의 끈을 잡았던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내 손에서 끈끈하게 잡힌 채 놓이지 않았다.

<일 분 후의 삶>. 책 속의 인물들의 이야길 읽어가면서 저 외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마 그들의 심정도 이 책 속의 주인공들과 같은 절박한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그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인내하며 기도할 것이다.

그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사람은 힘이 없을 때 죽는 것이 아니라 가망이 없어서 죽는다'는 말을.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 즉 가망을 놓지 않으면 망망대해에서 거북이의 도움으로 살아난 사람처럼 그들도 무사히 살아날 것이라는 말을.

일 분 후의 삶 - 생사 고비에서 배운 진실한 삶의 수업

권기태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2015)


태그:#죽음, #일분후의 삶,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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