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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단개구리를 형상화한 윤숙정 선생의 작품
ⓒ 김대호
나는 요즘 스스로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이 오십은 무엇일까? 봄날의 푸르름과 여름날의 찌는 듯한 폭염, 그리고 멀지 않아 다가올 가을날 나는 어떤 표정이어야 하는가?

한 달 전 한 신문에서 '20대의 젊은이가 꼭 해봐야 할 것은 치열하고 지독한 사랑'이라는 국회의원인 심상정씨의 인터뷰를 읽었다. 심장으로 정치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 40~50대의 몇몇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첫 번째 반응은 '국회의원이?'였고, 다들 자신들의 건조한 20대 때의 추억에 대한 후회의 말들을 토해냈다.

▲ 개구리의 귀소본능을 형상화한 작품을 바라보는 윤숙정 선생
ⓒ 김대호
20대. 그것이 나락에 이르는 길이라도 몸을 던져보는 불나비 같이 지독하고 치열한 사랑의 기억이 내게는 없다. 엄혹한 시대였던 터라 '사랑타령'은 배부른 짓이었다. 그러나 지천명을 앞두고 나는, 문득문득 그 시절 철없이 보이던 또 다른 모습의 그들의 '사랑타령'이 부럽다. 때로는 시기와 질투가 난다.

▲ 7마리 중 나머지 4마리가 사는 작은 연꽃연못
ⓒ 김대호
진주난봉가는 '하룻정은 3년이요. 본댁 정은 100년이라'고 하였지만 10년을 사랑하고도 하루 만에 잊히는 사랑이 있고 하루를 만나도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사랑도 있다. 지난 시절 나의 사랑은 악몽, 춘몽, 선몽 중 어떤 것이었을까. 꿈 축에도 끼지 못하는 잠꼬대일 수도 있다. 역으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뇌사상태의 연속일 수도 있다.

월선리에서 윤도예방을 운영하고 있는 윤숙정(여·52) 선생은 "사십 넘기가 그리도 힘들어 홍역을 앓더니 오십은 포기가 되더라"며 "50 나이의 여자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이 같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인생의 봄과 폭풍이 치는 여름날을 보내고 다가올 날들보다 보낸 날들을 뒤돌아 자신을 곧추세우는 나이라는 뜻일 게다.

지난 주 만난 윤 선생은 개구리 이야기를 했다. 월선리엔 유난히 양서류와 파충류가 많다. 참개구리, 청개구리, 비단개구리, 두꺼비, 도롱뇽에다 능구렁이, 꽃뱀, 살모사, 독사 등등 그 수와 종류를 헤아릴 수 없다. 초여름이 되면 개울을 나와 승달산으로 향하는 두꺼비의 행렬은 그 집요함이 마치 종교의식을 진행하는 디오니소스 그것 마냥 그들의 귀소본능은 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다.

▲ 사건 이후 만들어진 제비의 화장실 받침대
ⓒ 김대호
윤 선생 도예방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말이 연못이지 사실 작은 물웅덩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여름이면 새하얗게 꽃대를 세우는 백련이 심어져 있는데 이곳에 터를 잡은 비단개구리 일곱 마리가 있었다. 요놈들이 비라도 올 듯싶으면 어찌나 '개골개골' 울어대는지 신경이 거슬려 작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작심한 윤 선생은 개구리 일곱 식구를 포획해 이사시키기로 맘을 먹었다. 그 중 두 마리는 교미 중이었는데 암컷 등에 업힌 수컷은 막대기로 건드려도 절대 떨어지지 않아 그냥 대야에 담아 500여m 떨어진 개울에 풀어 주었다. 물을 좋아하는 놈들이라 새 터전에서 잘 적응하리라 생각한 터였다. 개울에서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놈들을 보며 스스로 대견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단다.

바깥일을 보고 3~4시간 후 공방에 도착한 윤 선생은 기이한 개구리들의 행렬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개구리 두 마리가 대문턱을 오르기 위해 '펄쩍'거리고 있었다는 것. 같이 있던 제자가 '아침에 내보낸 놈들'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지만 설마 했다고 한다.

▲ 공방에 걸린 꽃바구니
ⓒ 김대호

▲ 사고를 당해 죽은 강아지 다롱이의 집과 문패
ⓒ 김대호
그러나 잠시 후 그 뒤를 따르는 두 마리의 개구리는 추측을 기정사실화했다. 수컷을 업고 있던 그 개구리가 근 500여m에 이르는 논길을 헤치고 마을 한중간에 있는 공방까지 찾아왔더라는 것이다. 대견하기도 했거니와 그 지친 모습이 안쓰러워 당분간 동거(?)를 허락하기로 했다.

그 동거도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밤낮으로 울어 대는 개구리 소리가 귀에 거슬린 윤 선생은 다시 개구리 포획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300여m 떨어진 김문호 촌장의 승광요로 이사시키기로 했다. 승광요에 있는 10여개의 절구통에 놓아주면 월선리를 찾는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자료가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한 까닭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길을 앞서던 두 마리는 마을 사람이 뿌려 놓은 제초제에 중독돼 죽었고 등에 업힌 수컷과 업은 암컷은 지나던 차바퀴에 희생당한 것이다. 몇 톤에 이르는 거대한 차바퀴의 위력에도 암컷의 몸통을 휘어 감은 수컷의 앞다리는 풀리지 않고 있었다. 윤 선생은 개구리의 귀소본능이 그토록 집요한 줄 몰랐다는 것이다. 서식 산란 육아에 대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는 사람의 이기심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 남은 4마리 개구리의 안부를 살피는 윤숙정 선생
ⓒ 김대호
하찮게 여기고 무심코 건드린 우리의 작은 몸짓이 자연에게는 치명적인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는 거대한 자연 혹은 우주에도 생명의 법칙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윤 선생은 실토한다.

▲ 개구리의 귀소본능과 업힘의 미학을 말하는 도예가 윤숙정 선생
ⓒ 김대호
우리는 수없이 업힌다. 아이가 어미에게 업히고, 웨딩마치에 맞춰 남편의 등에 업히고, 늙어서는 자식의 등에 업힌다. 업히고 업고, 업힘의 방식과 대상은 달라도 거기에는 사심이 없다. 업힘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된 법칙은 체온이 교통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고루한 주제라고 이야기하는 인류문명의 역사와 함께해 온 화두, 사랑이다.

윤 선생은 이제 작고 하찮은 것들과 함께 산다. 제비집엔 밑받침을 달아 화장실을 만들어 주고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지만 기르던 강아지 다롱이에게도 문패를 달아 주었다. 절구통에는 연꽃을 심고 창가로는 어여쁜 꽃바구니를 달았다. 잡초를 막기 위해 깔았던 바닥의 자갈도 모두 걷어 냈다.

윤숙정 선생은 나이 50에 개구리 이야기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한다. 버드나무에 이는 바람처럼 잔잔하고 은은한 사랑, 여름 보리 잎에 이는 풀피리처럼 경쾌하고 산뜻한 사랑, 가을 단풍처럼 얼굴 붉히는 쑥스러운 사랑, 매서운 북풍에도 식지 않는 아랫목 같은 포근하고 따듯한 사랑, 그리고 폭풍처럼 태풍처럼 지독하고 치열한 사랑. 이 모든 것들이 개구리의 업힘에 있다.

▲ 절구통에서 고개를 내민 연꽃
ⓒ 김대호
개구리에게는, 6개월이면 식어 간다는 사람과 달리 사랑의 유통기한이 없다. 목숨을 건 귀소본능처럼 평생을 고조되어 가고 상승해 가는, 끈질기고 질긴 근원적 본능이 개구리의 사랑 방식이다. 개구리와 같은 지독하고 치열한 사랑만 넘쳐났으면 좋겠다. 부디 그 사랑에 분노와 증오가 같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연재기사] 김대호의 월선리 사람들 바로 가기


태그:#윤숙정, #개구리, #귀소본능, #월선리예술인촌, #윤도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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