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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 책표지
<한강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 책표지 ⓒ 판미동
어릴 때 맑디맑은 냇물에 몸 담그고 놀던 때에 나뭇잎배 띄워본 적이 있다. 물길 따라 떠내려가는 나뭇잎배 따라 첨벙대며 따라가다가 물살 급한 곳에 이르면 나뭇잎배는 쏜살같이 사라지고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었다. 다른 나뭇잎배 띄우고 놀면 그만이지만 떠내려가는 나뭇잎배가 어디까지 흘러갈까 궁금한 적도 많았다.

어른이 되어 이따금 찾는 고향 냇물은 예전처럼 맑지 않다. 농작물도 가축도 자연이 아닌 인공의 힘을 빌어 기르고 사육하는 때에 예전처럼 맑은 물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전해주고자 종이배 접어 아이들 손에 들려 냇물로 간 적도 많다. 물에 들어가 첨벙대는 대신 물가에 서서 종이배 띄워 보내며 소원도 빌어보고 저 배가 흘러서 어디로 갈까 얘기도 나눠보곤 했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종이배를 띄우면서도 생각은 막연할 뿐이었다. 냇물이 흘러서 바다까지 갈 거라고 생각은 해보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흘러 어느 바다에 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찾아보거나 알아본 적은 없다. 다만 어린 녀석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대물림처럼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한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는 말 그대로 한강의 발원지부터 시작해서 바다에 이르는 1308리 길을 강물 따라 걷고 또 걸으면서 쓴 체험의 기록이다. 나뭇잎배나 종이배 띄워놓고 저 배가 어디까지 갈까 궁금해 하던 정도에서 머무른 게 아니라, 아픈 다리 절뚝이고 쏟아지는 땀방울 씻어내며 써내려간 생생한 기행문이다.

흐르는 강물 따라 무작정 걸었던 게 아니라 강물에 의지해서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을 더듬어 찾아보고 느껴보고 되새기며 지나갔다. 강원도 황지 검용소에서 시작해서 경기도 김포 보구곶리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통해 차분하고 꼼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삶의 터전이었고, 삼국시대 항쟁의 중심지였으며, 고려와 조선시대 세곡 운반의 통로였던 한강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다.

발원지 검용소부터 서해 바다로 들어가는 보구곶리까지 처음부터 한 줄기로 흐른 게 아니라 수많은 내가 모이고 강이 합류해서 한강이 된 것이다. 작은 내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있고, 지방마다 강줄기마다 다른 이름이 있다. 한강이란 이름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사용되었고 그 전에는 시대마다 각기 그 명칭이 달랐다.

한강의 물길 따라 한강의 유래를 알고 역사를 이해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가지만 역사는 흘러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바다로 간 물의 행적은 찾아 복원하기 어렵지만 현재로 흘러온 역사의 물줄기는 힘써 노력한 만큼 되살릴 수 있다.

총 길이 514㎞, 1308리 길을 걷고 또 걸어 완성한 한강 문화유산 답사기 <한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는 한강의 역사, 한강 물줄기에 의지해서 살아온 인간의 역사, 그 인간들의 땀방울과 숨결로 빚은 문화와 환경을 촘촘하게 복원시켰다.

저자의 발길 따라 책장을 넘기다보면 골골마다 물줄기마다 향토적 정서 물씬 풍기는 정겨운 소(沼), 강, 나루, 고개, 마을 이름 확인하고 유래를 알아보는 재미가 있다. 강줄기 따라 세월 따라 흘러 전해온 전설이나 이름난 이들의 행적이 담긴 유래를 읽는 재미도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들과 나눈 대화도 있고 살다 떠난 이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름만 남은 곳의 이야기도 있고, 이름과 함께 터만 앙상하게 남은 곳의 이야기도 있다. 시도 있고 노래도 있고 한숨도 있고 눈물도 있다.

저자의 여행기가 정겨운 이유가 있다. 과거 속에 묻힌 이야기 뿐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을 뜨겁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맹자가 말했듯이 낮은 데로 내려온 나는 다시 북녘 산하의 강들, 대동강, 청천강, 압록강, 두만강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바다가 잇닿는 지점까지 내려올 것이다. 언제 오리란 약속도 없이. 다만 조강나루터에서 개성 땅으로 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갈 것이라는 기대만을 안은 채 돌아갈 뿐이다.

한강따라 짚어가는 우리 역사 - 청소년을 위한 역사 체험여행 1

신정일 글, 신정일 사진, 판미동(2007)


#한강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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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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