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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올자(스위스)와 제임스 전(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가 나이 쉰을 목전에 두고 만들고, 무대에 선 합작품 '그래요, 김치 치즈'의 한 장면.
ⓒ 김기
폭염경보가 내려진 28일 전라남도 목포시에서는 20회를 맞는 전국민족극한마당(2007 목포 전국우수마당극제전을 겸하는)이 폭염에도 아랑곳 않고 유달산 산바람에 기대어 열리고 있었다. 이번 전국민족극한마당은 최근 많은 축제들이 그러하듯이 다양한 장르를 마당극에 초청하여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특히 마당극하고는 어쩐지 거리가 멀 것만 같은 공연 하나가 눈에 띈다. 공연 제목이 '그래요, 김치 치즈'로 그것만으로는 공연내용은 전혀 가늠키 어렵다. 춤공연이라고는 하지만 장르 또한 뭐라고 딱히 말하기 곤란하다. 두 명의 늙수그레한 사내가 등장하는데, 두 사람 모두 발레리노 출신으로 현재 안무가,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럼 이 공연은 발레? 발레리노 두 사람이 보이는 공연이니 발레라고 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일이 아니건만 그래도 어쩐지 어색하다. 그들이 서는 무대는 프로시니엄이 아닌 관객이 3면에서 지켜보는 마당극 스타일이다. 게다가 바닥도 춤을 위한 고무판이 아니라 마당극에 어울리게 천이 깔려 있었다.

공연 팸플릿과 무대 환경으로는 이들의 공연을 도저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뜨거운 여름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민요패 소리왓의 '삼승할망(삼신할미) 꽃노래'가 제주 사투리와 민요로 문을 열고 이어 두 사람의 등장에 관객들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조금 전의 토속적 분위기와 전혀 다른 탓인데, 커다란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나와 그 속에서 펌프를 꺼내 무언가에 열심히 공기를 주입하고 한 사람은 무대를 마치 이주일 걸음이라도 흉내 내는 듯 분주히 돌아다닌다.

▲ 이주일 흉내내기 혹은 공옥진의 병신춤이 연상되는 동작이 자주 보였던 작품. 그럼에도 오브제를 통한 상징구조는 인생이란 무게만큼 깊었다.
ⓒ 김기
두 사람이 번갈아 공기를 넣자 그것은 커다란 공의 형태가 되었다. 이들이 꾸민 20여분의 공연에 유일한 오브제다. 미리 말하자면 형태를 몰라 볼 정도로 수축된 공에 바람을 넣는 것으로 시작해서 팽팽하고 통통 튀는 공이 되었다가 결국 다시 공기가 빠져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공의 그런 변화와 함께 두 명의 사내는 천고의 진리인 윤회에 대해 보태거나 혹은 덜어내고자 다양한 동작과 표정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문득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 등의 뽕짝이 들린다. 요즘 유행하는 신 버전의 트로트가 아니라 그야 말로 60~70년대가 아니면 듣지 못할 구식 노래들이다. 물론 단독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고 문주란의 뽕짝보다 더 낯선 스위스의 50년대 노동요가 동시에 겹쳐서 나온다. 서로 다른 두 노래가 섞이다보니 서로가 가진 명징한 조성성은 사라지고 마치 현대음악처럼 묘한 정서를 자아낸다.

그러면서 두 사내의 동작과 표정은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익살스럽고 해학적으로 변한다. 때로는 다섯 살 아이들처럼 공을 갖고 놀기도 하는 그들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곧 쉰 살이 된다. 한국 발레의 대표적 안무가 제임스 전이 마흔 아홉, 스위스에서 온 필립 올자가 마흔일곱. 마치 그들은 이순에 다 와서 다섯 살 때를 다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동양적 윤회에 근간을 두고 있어 보이는 이 작품의 기본 구성과 안무는 필립 올자가 했으며, 한 달 전 서울에 온 필립은 제임스와 함께 작품을 구체화시켰다. 놀라운 것은 필립이 준비해온 이 작품이 대단히 한국적이라는 점이다. 중간 중간 이들의 동작은 마치 병신춤을 연상케 하기도 했는데, 필립에게 공옥진 선생을 아냐고 물었으나 모른다고 하였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그가 병신춤을 추는 것에 놀라웠다. 아니 뽕짝이라는 음악이 가진 힘에 놀랐다.

▲ 나이 쉰의 사내들이 공놀이를 한다. 하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 이들 예술가들이 세상에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가 되듯이..
ⓒ 김 기
다섯 살이 된 양 무대를 뛰어다니는 두 사람은 그러나 각자의 나라에서, 장르에서 이미 중견의 자리를 굳힌 사람들이다. 그들이 다시금 유아적 놀이를 표현의 주된 방법으로 채택한 목포에서의 공연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발레가 최초로 마당극판에서 공연됐다는 점이다. 그것도 억지 춘향격으로 클래식발레가 아니라 그 자리에 보여도 하등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려 마치 마당발레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보통 무용수들 중에서 발레 무용수들의 수명은 짧은 것이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발레리노는 대부분 20대로 30대 더욱이 40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정운식이 40대 초반으로 그나마 그 방면에서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필립과 제임스는 50대를 바라보는 나이로 그들이 꾸미는 무대는 발레 무용수들에 대한 또 다른 방향제시를 하고 있다.

공연을 마치고, 두 사람은 3면의 관객을 두고 연기하는 것이 분명 낯설었으나 동시에 더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목포에서의 한번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2007년 여름 서울 쇼케이스 및 목포, 부산, 대전, 춘천 등의 축제에 초청되었다. 2008년 여름에는 스위스에서도 유럽초연이 이루어질 것이며 Roxy 극장, Biesfeslden 등에서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또한 스위스의 다른 도시와 유럽 도시에서의 공연을 추진 중이다.

▲ 커다란 공 그러나 속이 빈 공갈공. 이것을 함께 들고 선 두 사내의 뒷모습에서 묘한 애수가 느껴진다. 그들은 분명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데...
ⓒ 김 기
요즘 TV 오락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대중의 문화적 수용 요인이 전과는 극단적으로 달라져 있다는 말들을 한다. 의미는 재미에 억압당하고, 감동은 흥미에 의해 외면당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순수예술이 대중을 향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스위스와 한국의 두 노장 무용가들이 25년 만에 만나서 보여준 것과 같은 여전한 예술의지였다고 보인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25년 전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에서였다. 세월이 흐른 후, 서로 다른 환경과 삶을 쌓아온 친구는 분명 전과 다른 점이 있었고 서로의 철학과 문화도 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50년 가까운 삶에서 얻은 깨달음과 춤이 가진 은유를 통해 이미 숫한 언어로 표현된 동서양의 다름, 인생유전의 삶 그리고 현실과 이상의 유리 등에 대해서 대단히 상징적이면서도, 남성적인 표현을 보였다.

댄스 씨어터 즉 무용극이란 말도 이미 존재하지만 이들의 춤은 그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었다. 향후 이 작품들이 한국에서도 몇 번 더 공연되고, 내년에는 스위스 및 유럽 곳곳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그렇게 회를 거듭하면서 '그래요, 김치 치즈'는 확대 재생산될 것이라고 한다.

한 마리 고고한 백조만을 연상시키던 발레를 '아무나 하는 발레'로 한없이 대중 곁으로 끌고 온 서울발레시어터의 제임스 전이 이제 판발레 혹은 마당발레까지도 시도한 것은 한국발레가 막연히 고전발레만 흉내 내듯 반복하는 것이 아닌 진정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갈증과 당위에 대한 표출일 것이다. 이 무대를 위해 제임스 전은 2월부터 대단한 감량과 체력 관리에 임했다.

#필립 올자#제임스 전#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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