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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마을 풍경.
아미쉬 마을 풍경. ⓒ 유정
사람의 인연은 수많은 우연으로 만들어진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 모양이다. 97년 경실련이 겪었던 '비디오 테이프 사건'으로 경실련을 떠나야 했던 양대석 전 사무국장이 정말 우연찮게도 서왕진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과 조우했나보다.

간혹 한식 먹을거리를 장만하려고 델라웨어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는 모양인데, 그 곳에서 만났단다. 내가 미국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니 꼭 한 번 얼굴을 보고 싶다고 인사를 전해 온 터라 서 처장의 집에 간 김에 양 국장도 찾기로 했다.

모처럼 마주친 얼굴, 양대석

델라웨어(Delaware)에서 한 시간이 좀 넘는 거리를 달려서 간 곳은 펜실베니아(Pennsylvania)의 랭카스터(Lancaster) 지역이었다. 저녁을 먹고 출발하는 바람에 느즈막이 도착해서 밤늦도록 맥주를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실련도 그 일로 사무총장이 사임하는 등 크나큰 시련을 겪었지만, 그 역시 10여 년 전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으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답해야 했던 그의 심신은 매우 지쳤을 것이다.

또 자신이 내뱉은 말이 자신을 옥죄는 바람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다른 일행들이 있어서 과거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이런 만남을 통해 경실련과 과거 동료들에 대한 마음의 부담과 부채가 혹시 있다면 해소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음 날 오전 양 국장의 안내로 랭카스터 일대를 둘러봤다. 오기 전부터 궁금했던 것은 아미쉬(Amish) 공동체였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때 뉴저지에 있는 부르더호프(Bruderhof) 공동체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저녁식사 시간에 초대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공간을 들여다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 방문에 대해 어느정도 기대를 가졌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마차. 어제 양 국장 집에 가면서 한 두대의 마차를 보기는 했지만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그들의 교통수단인 마차가 곳곳에서 천연덕스럽게 다니고 있었다.

나는 루트비어(Root beer)라고 해서 아미쉬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음료를 한잔 마셨다. 처음엔 비어라고 해서 보통 맥주인줄 알았는데, 알콜이 없으면서 약간의 쓴 맛과 쏘는 맛이 독특했다. 꼭 포도 쥬스 색깔 비슷한 음료였다. 집 앞에 노점처럼 해 놓고 팔고 있었다. 이처럼 이들은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팔기도 한다. 가구나 퀼트, 담배 등을 주변의 매장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맨발로 사는 사람들

랜디스밸리 박물관 내부
랜디스밸리 박물관 내부 ⓒ 유정

아이와 부인은 모두 맨발, 아이는 아직 영어를 배우지 않아서 독일어만 하고 있고, 집 앞에는 손수 한 빨래들이 널려 있다. 전기, 전화, 세탁기, 자동차 등 일체의 산업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생활이 현대문명으로부터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지키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농사가 이들의 주된 생업이고, 비료나 농약은 쓰지 않는다. 연방정부의 의무교육 대신, 자신들이 만든 학교에서 아이들이 8학년까지 배우도록 하고 있고, 연방정부의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폭력에 반대하는 이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다. 북미 전역에 14만 4000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알려진 아미쉬 사람들은 18세기 유럽의 종교박해를 피해 미대륙으로 건너 온 주로 독일, 스위스계 사람들이다. 엄격한 규율의 정도가 공동체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크게는 아미쉬, 메노나이트(Mennonite) 등으로 나뉘지만 그 안에도 조금씩 다른 규율의 차이가 있는 그룹이 존재한다고 한다.

아미쉬 공동체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공동체, 자녀와 어른을 돌보는 헌신과 비폭력, 그리고 신앙에 바탕을 둔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무엇보다 땅을 소중히 여긴다. 그들의 생업이 농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시에 기술이 가져다주는 해악을 경계하며 전통적인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18세기 정도의 삶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 국장은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겸손하며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며 공동체를 위한 사랑뿐 아니라 발딛고 살아가는 자연에 대한 존중에 이르기까지. 양 국장은 신앙의 힘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을 보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된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민자의 향수, 랜디스밸리 박물관

랜디스밸리 박물관 내부
랜디스밸리 박물관 내부 ⓒ 유정

사실 공동체적 삶 속에서 개인이 옳다고 믿는 가치대로 살아가기는 힘들다. 이런 현대 사회의 여러 제약도 있지만 사실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주는 편리함을 추구하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일행은 현대문명을 포기하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자신도 이민자이기는 하지만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느리게 사는 삶을 유지해 온 아미쉬 마을은 이민자의 정서라기보다는 신앙이 남긴 살아있는 18세기 유럽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19세기 독일계 이민자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랭카스터에 있는 랜디스밸리(Landis valley museum) 박물관은 뿌리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이민자의 향수가 만든 곳이라 할만하다.

이 지역에 정착한 랜디스 가문의 7대 손인 조지 랜디스(George Landis)와 핸리 랜디스(Henry Landis) 형제에 의해 1925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애초 랜디스 가문이 정착하여 일군 랜디스 밸리 일대가 고스란히 박물관으로 유지되고 있다. 1800년대의 호텔이며, 대장간, 여인숙, 주택, 제분소, 마굿간, 가게, 우체국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신들의 부모가 살았던 집이며, 집안의 가구며 물건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의 거리 자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1800년대 후반의 독일계 이민자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박물관인 셈이다. 그들이 정착하여 일군 마을이라 그런지 지명조차 랜디스 밸리이다. 펜실베니아 더치(Pennsylvania Dutch)라 불리는 독일계 이주민들이 랭카스터 지역에 들어 와 살면서 그들이 유지하고 보존해 왔던 전통을 이 두 형제의 노력으로 지금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랜디스 가문은 종교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 온 독일계 메노나이트 집안이다. 그런 영향탓인지 몰라도 이들 형제도 자신들이 살아 온 삶의 방식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야 자신들의 삶의 양식을 현대 문명의 발전에 구속되지 않으려 한 것이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들이야 새로운 삶의 양식이 들어 와 기존의 삶의 양식이 파괴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전통을 버리고 전통을 박제화하는 것은 아닐까

사라져 가는 자신들의 전통과 뿌리에 대한 흔적을 남기려는 그들의 노력이 박물관 곳곳에 배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민자들이 갖는 떠나 온 고향에 대한 향수가 혹시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머리를 스쳤다. 자신들의 에스닉(ethnic)적 정체성에 대한 회고가, 떠나 올 당시의 자신들의 전통에 대한 고집스런 유지로 작용하는 이민자들의 독특한 정서를 생각해 보면 그러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언어의 경우에도 여전히 이 지역에는 아미쉬 마을 사람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독일어가 사용된다고 한다.

독일계 이민자들이 만들어 낸 독특한 전통과 삶의 양식이 통째로 보존되고 있는 랜디스 밸리 박물관을 보면서 사라진 전통과 삶의 양식을 되살리려 민속촌을 만들어 '개발'한 우리 모습이 오버랩된다. 어떻게 보면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과거 삶과 문화를 아예 포맷해 버리고 나서는 뒤늦게 우리들이 버린 삶의 양식을 우리 삶 안으로 가져 오지 못하고 박제화 된 무엇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눈에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보이는 아미쉬 사람들의 삶은 그들에게는 '현재'이다. 같은 공간에 그들의 현재의 일부가 박물관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18세기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는 우리 삶의 양식에 대한 자극과 경계도 나를 성찰하게 하지만 18세기의 과거를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방식도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하루였다.
#마차#맨발#아미쉬#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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