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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로 향하는 한 도로 옆에 세워진 안내표지판. 수십 발의 총알 세례를 받았다.
ⓒ 김창엽
동가식서가숙하며 미국을 떠도는 동안 내심 가장 걱정스러웠던 게 총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외딴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모바일 홈리스 처지여서 동네 분위기가 안 좋은 곳에서는 적잖이 긴장됐습니다.

미국에 총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개인 소지 총기가 모두 몇 자루인지 그 정확한 숫자는 알 길이 없습니다. 신고하지 않은 총도 적지 않을 테고, 또 일부 총기의 경우 고장으로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막연하게나마 무척 많이 깔려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캘리포니아 북동부의 알투라스라는 산골 마을에서 만난 사냥꾼 할아버지는 총이 없는 집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더군요.

미국의 총기 전문가들 추정에 따르면 적어도 세 집에 한 집 꼴, 많게는 두 집에 한 집 꼴로 총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로에서 총 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들

대도시, 특히 우범지대에서는 거의 매일 끊이지 않고 총기 사고가 발생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도시는 엘에이(LA) 남쪽에 있는 캄튼(Compton)이라는 곳일 겁니다.

요즘 미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인, 랩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또 미국의 여자 테니스 스타인 비너스와 세레나 두 윌리엄스 자매가 어린 시절 테니스를 익힌 동네며 현 부시 대통령 일가가 잠시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당 갱 관련 총격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요. 시 인구가 10만명쯤 되는데, 많을 때는 한해 50명 이상이 총을 맞고 운명을 달리 했으니까요. 인구 대비로 따지면, 현재 이라크에서 발생하는 각종 테러 등으로 인한 사망 보다 비율이 더 높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갱 관련 사고는 없지만, 사실 미국의 시골도 총기로부터 안전한 곳은 못됩니다. 시골의 경우 호신을 겸한 사냥용 총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시골 도로 변에 세워진 각종 교통 신호판 치고 멀쩡한 것이 없을 정도로 찌그러진 데가 많았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총알 자국들이었습니다.

시골 청년들의 장난으로 짐작됩니다만, 대로에서 총 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네들의 정신 상태를 읽을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시골 생활이라는 게 젊은 사람들로서는 놀 거리도 별로 없고, 하루하루 삶이 판박이처럼 비슷해서 따분한 까닭에 총질을 해대는 거겠지요.

자위와 방어 수단으로 총을 소유하는 사람들

▲ 캘리포니아 북동부 산골 마을 알투라스에 사는 사냥꾼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장총 광고에 나온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동네에 총 없는 집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창엽
군대 시절을 빼놓곤 총을 접할 기회가 드문,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총이 여간 해서는 친숙하기 힘든 존재 아니겠습니까. 한데 미국 사회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총이 널려있다 보니 최소한 총에 대해 무감각 하다랄까, 심지어는 친근하게까지 여기는 거지요.

크고 작은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총과 인연을 끊지 못하는 걸 보면 상당수 미국 사람들이 총에 중독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물론 그네들이야 중독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총을 사랑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미국인들의 총 사랑은 물론 남에 대한 해코지, 혹은 공격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놓고 총 소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위와 방어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 합니다.

주로 시골 지역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연방 혹은 지방 정부 당국과 무장 대치극을 벌이는 사람들이 바로 자위, 방어 수단을 강조하는 축에 들겠지요.

천만다행이겠지만 유랑인 생활을 하는 동안 민간인들로부터 피격의 위험에 노출됐던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두어 차례 총구가 이 아메리칸 홈리스를 향했던 적은 있었습니다.

한밤 중 노숙을 하다가, 재수 없게 경찰 친구들로부터 '거동 수상자'로 찍혔을 때인데요. 차 안에서 세상모르고 한참 자고 있는 사람을 문을 두드려 깨워놓고선, 총을 꺼내 들고 문을 열고 나오길 기다리는 거지요.

경찰들은 범죄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지역에서 보통 2인 1조로 순찰을 도는데, 한 친구는 손전등으로 조명을 확보하고, 다른 친구는 총을 겨누는 겁니다. 설마 경찰이 생사람을 죽일까 하는 생각에 놀랄 것까지야 없지만, 눈을 비비고 차 밖으로 나오면서 기분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 경찰들의 경우 총기 사용에 관한 한 터프하기로 이름이 높지 않습니까. 총기가 널려있는 사회이다 보니, 경찰로서도 어설프게 거동수상자나 피의자를 다루다가는 한방에 목숨을 날릴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미국의 고속도로나 길 가운데 유난히 많은 것이 경찰 혹은 보안관(셰리프)이름 인데요. 이들은 십중팔구 근무 중 순직한 사람들로 보면 될 것입니다. 이중 일부는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일 테고요.

덧붙이는 글 |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총기, #미국,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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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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