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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시한 이틀 재연장'이라는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전하고 있는 31일자 신문들.
'협상 시한 이틀 재연장'이라는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전하고 있는 31일자 신문들.

오늘 아침 신문을 받아든 독자들은 다시 한 번 엉뚱한 기사에 혀를 찼을 것 같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31일자 신문들이 '협상 시한 이틀 재연장'이라는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은 인질 한명 추가 살해 소식을 최종 마감 시간 때문에 신문들이 미처 싣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살해 소식이 알려진 후 일부 신문들은 급히 추가판을 제작했고, 서울 등 수도권 일원에 극히 제한적으로 배포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마감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직면한 신문들의 불가피한 오보가 아니다. 신문들이 일제히 전한 '협상 시한 이틀 재연장'이라는 '오보'의 출처 자체가 태생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취재원'일 수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오늘 아침 조간은 모두 '오보'를 냈나

대다수 신문들이 탈레반과의 협상 시한이 '이틀 재연장' 됐다고 보도한 근거는 아프간 정부 협상단의 일원인 마라주딘 파탄 가즈니주 지사의 발언을 인용 보도한 AP 등 외신 보도였다.

결과적으로 마라주딘 파탄 가즈니주 지사를 비롯한 아프간정부 '협상단'이 근거도 없이 '협상시한을 이틀 재연장'했다고 잘못된 정보를 외신에 제공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물론 외신이 정보를 왜곡 전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 '협상단'이 잘못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그 정황은 오늘 일부 신문 보도에서도 확인된다. 탈레반에 납치돼 있는 인질 이지영씨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킨 <중앙일보>는 그 인터뷰를 주선한 것으로 보이는 특별통신원 아부하산(가명)의 전언을 빌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일부 내용 요약).

"한국인 납치극을 총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가즈니주 탈레반 최고지도자 겸 사령관인 물라 사비르다. 납치 이후 인질의 분산 배치와 이동, 감시는 부사령관인 물라 압둘라가 맡고 있다. 사비르가 전반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다. 그는 이 지역 슈라(부족 원로회의)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탈레반이 몸값을 원한다는 소문이 자꾸 돌고있는 데 대해 매우 분노하고 있다. 이런 소문이 아프간 정부 관리자들이 지어낸 음모 때문이라고 그(사비르)는 생각한다. 이런 루머가 계속된다면 인질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 정부 협상단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프간 정부 협상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앙일보>는 이같은 '전언'이 특별통신원 아부하산이 29·30일 사비르·압둘라와의 '통화'에서 들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가 전한 가명의 '특별통신원'의 전언을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역시 문제이다. 하지만, 오늘 새벽의 인질 추가 살해와 그동안의 협상 추이를 보면 그의 '전언'은 상당히 믿을 만한 것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의 '전언'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의 사태 추이를 분석해보더라도 몇 가지 확인된 '사실'이 있다.

'몸값 흥정', 아프간 협상단이 부풀린 측면 적지 않아

첫째, 아프가니스탄 주정부 관계자들을 비롯해 아프간 정부 협상팀의 '전언'은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이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외신 보도를 통해서 몇 가지 점이 확인됐다. 첫째, 아프간 주정부 협상단은 탈레반과 '직접 접촉 창구'를 갖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가 긴급히 보낸 의약품이 아직까지 인질들을 잡고 있는 탈레반 세력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아프간 정부 협상단 관계자들은 탈레반들이 자신들까지 '죽이려 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조선일보> 역시 "탈레반 측은 의회 대표단은 물론이고 부족 원로들과도 일절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만나주지도 않고 있다"는 압둘 살람 라케티 아프간 의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라케티 의원은 탈레반 고위 지휘관 출신으로 아프간 정부의 협상 의뢰를 받고 가즈니주 현지에 내려가기도 했던 인물이라고 <조선일보>는 소개했다.

둘째, 그동안 많이 거론됐던 '몸값 흥정' 또한 사실은 '인질과 탈레반 포로 맞교환'이라는 탈레반들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희석시키기 위해 사실 이상으로 아프간 정부 협상단 관계자들이 부풀린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들이 그런 이유는 실제 그런 요구가 없지 않은 측면도 있겠지만, 협상의 쟁점을 '몸값' 쪽으로 돌려서 포로 맞교환을 요구하고 있는 탈레반의 요구 사항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희석시키고, 탈레반을 결국 '몸값'이나 챙기려하는 '모리배' 수준으로 비하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도 없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셋째, 인질을 붙잡고 있는 탈레반 내 무장 세력 간에 몸값을 챙기려는 쪽과 그렇지 않은 강경파로 나눠져 있다는 지금까지의 한국 언론의 '도식적 분석' 역시 한국 언론들의 상상력의 산물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의도적 언론 플레이? 악의적 언론 공작?

몇 차례 이뤄진 인질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인질들의 분산 배치나 이동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또 인질 인터뷰 배치나 인질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알자지라를 통해 공개한 것 등 일련의 언론과의 접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인질들을 붙잡고 있는 탈레반은 느슨할지는 모르겠으나, 지도부의 분명한 지휘·통제 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나 주정부 관계자들이 '엉뚱한 정보'를 계속 무책임하게 흘리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희박한 존재감을 감추기 위한 '의도적 언론 플레이'이거나 아니면 심한 말로 '중간 브로커'로서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기 위한 '악의적 언론 공작'일 수 있다.

한국 언론이, 또 한국 정부가 앞으로의 보도나 협상에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이제 와서 다른 인질 사건의 경우 풀려났을 때도 억류 기간이 평균 4~5주는 됐다는 식의 '보도'나 '해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정보력'은 물론 '분석력'조차 빈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자화상일 것이다.
#백병규#미디어워치#탈레반#인질 살해#아프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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