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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질사태를 군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보도가 있다. 이미 우리 국민이 두 명이나 희생되었고 정부에서도 강력한 톤으로 경고했는데, 그에 따라 아군을 동원한 작전도 전혀 배제되지 않는 것처럼 비친다. 어떤 신문에서는 특전사와 해병대를 거론하고 구체적으로 병력의 수치까지 말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아군의 투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전폭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일단 그들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가정하고 실제 작전에 들어간다면 해군의 특수전여단과 해병대의 특수수색대도 고려할만 하지만, 본래부터 비정규전을 주 임무로 양성되고 실전경험이 풍부한 특전사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파병의 경험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

그리고 해병대보다는 다른 부대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해병대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전투력이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강 수준인 것은 맞지만 해병대는 비정규전이 주 임무가 아니다. 해상을 통한 정규전에 특화(特化)된 전투력이 대부분이 산악지역인 아프간에서 비정규전을 수행하기에는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해병대보다는 산악지형에 익숙한 육군의 특공부대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강화된 대대급 이상의 특공부대가 주변을 제압하고 퇴로를 확보하면 몇 개 팀으로 구성된 특전사가 투입되어 인질을 구출하여 퇴출하는 형태가 될 것 같다.

일단 부대가 결정되어도 투입 단계에서부터 첩첩산중이다. 작전의 성격으로 보아 신속한 이동이 생명이다. 그런데 우리는 비정규전 부대와 장비를 급격히 수송할 능력이 부족하다. 미군의 지원을 받는다고 가정하고 아프간과 이라크 등에 파병된 부대가 먼저 카불에 도착하여 병참지원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구출부대가 무사히 카불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섬처럼 고립된 카불에서 인질들이 잡혀 있는 가니주까지 가려면 도로 이동은 절대 불가능하다. 도로로 통하면 안 되는 이유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헬기로 이동해야 할 것인데, 우리의 능력으로 작전에 필요한 헬기를 카불까지 전개시킨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에 가깝다. 보병 소대가 탑승할 수 있는 CH-47 헬기 10대 이상에 그들을 호위할 공격헬기까지 포함하면 항공모함이 동원되어야 할 판이다.

혹시 헬기가 준비되어 작전이 개시된다고 해도 문제가 크다. 우리나라 최대의 헬기인 CH-47의 항속거리가 500km 가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겠지만 남한의 몇 배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작전기간 중에 최소한 두 차례 이상의 급유를 받아야 할 것인데, 대부분이 적지(敵地)인 지역에 어떻게 착륙하여 급유를 받는단 말인가? 인질을 구출하러 간 부대가 오히려 포로가 될 지경이다. 그렇다면 공중급유를 추진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가 보유하고 있지 못한 기종 가운데는 공중급유기도 포함된다. 결국 병력과 소총을 제외한 모든 것을 미국의 지원에 의존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불가능으로 표현하면 간단할 것이다.

물론 위에 나열한 상황 자체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 아프간은 우리를 도와줄 이유가 없다. 아프간으로서는 아까운 병력을 잃어가며 겨우 체포한 탈레반 반군들과 이교도의 복음을 전파하러 왔다가 붙잡힌 인질을 교환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작전을 전개할 능력도 없는데다, 국제적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참패했다가는 그리 확고하지 못한 입지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제 코가 석 자'인 아프간에게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 게다가 인질이 잡힌 경위를 볼 때 도의적인 책임조차 물을 형편이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쥐고 있는 미국의 입장도 그리 시원치 않다. 이라크에 이어 아프간에서도 철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실정에 다른 나라의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대규모 작전을 감행하기는 어렵다. 그 이전에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한국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만일 미국과 아프간이 전폭적으로 도와줄 의사가 있다고 해도 인질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는 공염불일 뿐이다. 1976년 7월4일 이스라엘의 특수부대에 의해 감행되어 100여명의 인질을 모두 구출한 엔테베 급습작전의 신화가 새롭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소속 테러범들에 납치된 에어프랑스기가 우간다의 엔테베 국제공항에 기착한 것을 알지 못했다면 작전 자체가 논의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지금 이스라엘 시민들이 탈레반에게 납치되었다고 가정하면 엔테베의 신화가 재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럴 경우에 이스라엘은 탈레반을 공습하여 단호한 결의를 보여주겠지만 중동에 목숨을 걸고 있는 우리로서는 감히 보복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세계 최강 미국도 인질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었다. 1979년 이란에 혁명이 발생한 다음 과격파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난입하여 미국인 인질 52명을 붙잡은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무려 444일간이나 인질과 미국으로 망명한 팔레비 국왕의 교환을 요구하여 시위를 벌였다.

그때 참다 못한 미국이 시도한 구출작전은 참담하게 좌절당했다.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당시 대통령 지미 카터가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기획한 작전은 초기단계부터 무리가 많았다. 어떻게든 끼어들어 이득을 챙기려던 자들에 의해 기밀이 엄격하게 유지되지 못한데다 육, 해, 공군이 모두 관여하는 바람에 일관성이 유지되지 못했다.

게다가 생소한 사막지형의 비행경험이 부족하여 모래바람에 시야가 가린 헬기가 충돌하고 작전로에 설치한 추진기지가 이란시민들에게 발견당하는 등 불운마저 겹쳤다. 무리하게 펼쳐진 작전의 전과는 아까운 특수부대원들의 희생이었다.

세계 최강의 전력과 정보력을 보유한데다, 인질이 어디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던 미국도 구출작전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그때 잡힌 미국인 인질들이 풀려나게 된 것은 작전에 아니라 협상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 역시 협상을 통해야만 한다. 어떤 정부라도 그런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제대로 협상하는 것이 진정한 능력이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역량을 집중하고 국제적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긴밀히 협조하는 등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가장 중요한 만큼, 돈을 요구하면 당연히 아낌없이 쥐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판은 결과가 나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비록 소중한 생명을 잃었지만 이번 사건이 외양간이라도 고칠 수 있는 계기로 기능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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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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