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말을 조금 변형하여 내식대로 바꾸어보자면, 여행은 '제약이 많으면 볼 수 있는 것이 많다'고나 할까?
지난해 3개월간 러시아와 유럽을 여행하며 체득한 여행 수칙이다. 여행자의 몸을 제약하는 것이 최소일 때, 최고의 여행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장기간 여행을 걱정해 가져간 옷과 준비물들은 그저 배낭의 무게를 늘려주는 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짐들은 배낭을 메고 걸어야하는 여행객에게 최대 장애물이었다.
하물며 짐 따위도 그럴진대, 만약 아이와 그것도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어린아이와 함께 여행을 해야 한다면….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여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뿐 아니라 오소희씨 주변 분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책 서문에 소개된 주변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미쳤구나'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솔직히 동감했던 부분은 오소희씨의 자신감보다는 그런 주변 분들의 반응이었다. 혹 여행이 '아이에게 학대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너무 나간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드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느낀 나의 생각의 첫 번째 잘못된 점은 아이는 짐과 다른 존재였다는 것이다. 말을 하며 소통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한 생명체로 느낌이 분명한 아이 중빈이는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다.
필자의 표현을 빌려본다.
"아이의 보폭은 좁고 일정은 늘어졌지만 아이는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작고 조용하고 낡은 것들이었다." - p.39
아이가 아니었다면 술탄의 오랜 궁전에서 꽃과 지렁이를 감상할 이유도 없었고, 터키의 장난스런 아이들을 관심 있게 쳐다보거나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터키에 동네 놀이터가 그렇게 많은지도, 개와 고양이 같은 일상적인 동물들이 터키에서도 똑같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아이와 여행하는 여자 여행객이 누릴 수 있는 친절함과 배려도 다른 여행기는 물론 일반적인 여행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여행할 때도 그랬는데,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선 여자, 특히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
러시아에서조차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아이와 함께 있는 여자는, 공격받는 남자를 보호해 줄 정도의 강력한 방어막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학생 등이 해코지를 당할 성 싶으면, 주변에 있는 처음 보는 아이와 아주머니 곁으로 찰싹 붙는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오소희씨의 여행기를 읽자면, 이러한 장점은 터키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아이를 통해 금방 관심을 받고, 도움을 받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인상적이다. 물론 아이가 제약으로 다가오는 에피소드들도 보이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내용도 함께 나온다.
터키라는 여행지가 주는 묘한 매력
몇 해 전부터 터키는 갑작스럽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아마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급격히 익숙해졌고, 평범한 유럽여행은 너무 흔한 것이 된 요즘엔 터키가 주는 묘한 매력에 한국 사람들이 급하게 취한 듯하다. 지난해 유럽을 돌아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이 터키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최근 여행을 떠나는 주변사람들 중에도 터키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나라. 하지만 터키는 동시에 뭔가 어렵고 무서운 일이 있을 듯 한 꺼려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찾아보니 외교통상부에서 발표하는 신변안전에 특별 유의 및 여행필요성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 여행자제 나라에 러시아와 함께 터키가 들어있다). 이런 터키를 아이와 함께 간다는 것이 말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다녀온 러시아도 그렇지만, 위험을 걱정하여 터키를 안 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여행이란 것이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특별히 위험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에서 터키가 특별히 위험하다고 보기 힘들다.
이 책에서 오소희씨는 약간의 두려움과 묘한 매력이 있는 터키를 좀 더 특별한 필체로 소개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아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느린 속도와 시선이 특별한 터키를 소개하는데 더 안성맞춤인 듯도 싶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이스탄불의 화려한 이중적 매력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시장이 모습이 더 자세히 그려져 있다. 3살 정도의 남자아이들이 그렇지만, 자동차나 열차 같은 탈 것을 좋아하는 아이 덕에 열차부터 택시, 좁은 미니버스, 히치하이킹한 화물차까지 타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다양한 터키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반적인 여행에선 접하기 힘들 터키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터키를 여행하게 되면 으레 가는 여행지들의 번잡하고 화려한 모습보다는, 조금은 느리고 하지만 여유로운 시선에서 보이는 진짜 매력들을 소개하고 있다. 꼭 미묘한 터키의 향신료를 뺀, 담백하고 신선한 여행지 터키의 매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평범하기에 더 특별한 터키이야기
다양한 여행기를 통해 얻게 되는 간접 경험들은 신선하고 새로운 점을 느끼게도 하지만, 과도한 이미지로 여행지를 본인이 사는 곳과는 다른 무조건 환상적인 곳으로 포장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 특히 요즘 미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터키를 그렇게 소개한 화려한 여행서들이 많은 듯하다.
그런 가운데 오소희씨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는 그런 여행의 화려함보다는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와 그것이 주는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여행기는 터키의 화려함 보고 싶다면, 혹은 터키에 대한 자세한 여행안내서가 필요하다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터키의 일상적인 진짜 모습을, 한국의 아이와 엄마라는 일상인이 접한 특별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전혀 실망시키지 않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