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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거처 히말라야(트래킹 11일째, 안나푸르나 쏘롱라 고개)
눈의 거처 히말라야(트래킹 11일째, 안나푸르나 쏘롱라 고개) ⓒ 양학용 & 김향미
여인 네 명이 걸어왔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눈부셨다. 12월 25일, 트래킹 4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마스떼!"
"마낭으로 갈려면 어느 길로 가야죠?"

아내와 나는 갈림길에서 길을 물었다. 여인들은 눈만 껌벅거리더니 그네들끼리 옥신각신이다. 이방인이 던진 낯선 말을 두고 격론(?)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마. 낭. 이 쪽? (아니면) 저 쪽?"

손가락으로 두 길을 차례로 가리키며 다시 물어보았다. "아!" 네 명 중 제일 젊은 여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가락을 맞대어 보였다. 양 쪽 길은 곧 만난다는 뜻이었다. "그.래.요?" 순간 아내와 나는 동시에 눈빛이 반짝였다. 여행을 떠난 지도 70일째. 아내와 나는 내내 24시간 동안 붙어 다녀야했다. 둘 다 한나절만이라도 혼자 걷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의 경우 라타마낭 산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아내는 왼쪽, 나는 오른쪽 길로 걷기 시작했다. '룰루 랄라' 콧노래가 다 나왔다. 혼자란 사실이 이렇게나 좋을 줄이야. 파란 하늘과 하얀 설산과 흙 갈색 돌집은 물론이고 길에 퍼질러놓은 말똥 냄새까지도 상큼했다.

혼자서 가는 길, 그러나 이상했다

히말라야의 아이들
히말라야의 아이들 ⓒ 양학용 & 김향미
30분이나 지났을까. 좀 이상했다. 내 길은 마르상디 강을 따라 자꾸만 오른편으로 굽어지는데, 아내의 길은 산을 넘어 왼편으로 멀어져갔다. 때마침 지나는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두 길은 라타마낭을 지나 차매라는 마을에서야 만난다고 했다. 너무 먼 거리였다. 차매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가 질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아내는 돈 한 푼 없었다. 히말라야 산 중의 낯선 길에서. 아, 어떡하지.

나는 곧바로 뒤돌아 뛰었다. 얼마나 차이가 났을까. 마음이 급했다. 아내가 간 길은 가파르게 산을 타넘었다. 숨 막히던 1시간. 마침내 그녀가 보였다.

"휴, 이젠 됐다."

나의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네 명의 여인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나타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말이다.

아내를 보면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 그녀는 네팔어를 모른다. 네 명의 여인들도 한국어나 영어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수다를 떤다.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서야 안 일이지만 순박한 사람들에겐 특징이 있다. 우리가 자기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묻고 또 묻는다. 그때마다 아내는 답도 하고 도로 물어보기까지 한다.

'아내는 혹시 우주인이 아닐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들은 마치 모든 언어는 한 뿌리에서 나왔으니 서로 통한다고 믿는 것만 같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니 보고 있다고 해야 옳겠지만. 눈과 입. 나도 언뜻 말뜻을 알아들을 때가 있다.

갈림길에서 만난 탄촉 마을 사람들(왼쪽이 푸르나와 할머니)
갈림길에서 만난 탄촉 마을 사람들(왼쪽이 푸르나와 할머니) ⓒ 양학용 & 김향미
아직도 숨을 할딱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뒤를 돌아보라고 했다.

"아!"

말문이 막혔다.

"멋있지? 저 산이 쿠쿰부로(5900m)래. 저기도 달력 여기도 달력, 대단하지? 그리고 이 마을 이름이 티망이래. 할머니가 다 설명해줬어."
"히말라야가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네!"

티망의 아이들과 쿠쿰부로
티망의 아이들과 쿠쿰부로 ⓒ 양학용 & 김향미
만년설 쿠쿰부로가 구름 띠를 두르고 있었다. 내가 가진 지도에는 없는 마을, 티망.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풍경이었다. 여행은 가끔 그렇게 길을 잃어버리고 여정에 없던 곳을 방문하는 순간, 그 속살을 보여주곤 한다.

그날은 트레킹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어두워질 때까지 걸었다. 티망 할머니의 친구 댁에서 화롯불에 알루(감자)를 구워먹으며 한 시간 쯤 놀았기 때문이다.

아내의 해석에 의하면, 네 명의 여인은 탄촉 마을에 산다. 할머니의 딸, 친구, 친구의 딸이라 했다. 할머니의 딸, 푸르나(갈림길에서 길을 가르쳐줬던 그 젊은 여성)는 도시로 시집 갔다가 잠시 지내러 오는 중이었다.

친정 한 번 오는데 4일 동안 걷는 셈이다. 그런데 두 아이의 엄마라는 그녀는 대단한 인상파였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녀의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는다고 금방 볼 따귀에 불통을 만들며 인상을 써댔다.

이런 일도 있었다. 티망을 벗어나 산길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신발을 벗어들고 치맛자락을 걷어서 손으로 말아 쥐고 왔던 길로 뛰어갔다. 내가 놀라서 물어보았다.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할머니 일행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계속 길을 갔다. 30여분 후, 그녀는 맨발로 달려와서 발바닥을 쓱쓱 닦더니 신발을 다시 신었다. 티망에 짐 보따리를 두고 왔던 것이다.

안나푸르나의 예쁜 마을(마낭)
안나푸르나의 예쁜 마을(마낭) ⓒ 양학용 & 김향미
탄촉에 도착하자 그녀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 안에는 흙바닥에 카펫이 깔려있고, 한 편에는 나무 침대가 다른 편에는 선반 가득 식기구가 놓여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네모난 화덕이 온기와 불빛을 동시에 만들어 주었다. 원룸인 셈이었다.

나이 든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푸르나는 이 분들도 "맘"이라고 했다. 함께 걸어왔던 할머니가 "맘이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하더니, 여기 분들도 "맘"이란다.

'역시 아내는 우주인이 아닌 모양이다.'

곧바로 아내는 좀 전의 할머니는 이모일 거라고 정보를 수정했다. 푸르나의 부모님은 나그네를 먼 길 온 자식처럼 눈길로 쓰다듬듯이 바라보더니 곧 다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있는지,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다니는지…. 그런데 푸르나가 통역으로 나섰다.

재밌는 일이다. 네팔어를 네팔어로 통역하다니. 그녀는 이제 우리 대답도 곧잘 이해했다. 부모님 앞에서 외국인과의 통역을 해내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일. 단지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그녀를 바라보는 아내와 나도 즐거웠다.

아내의 정보는 80점 이상이었다

혹시 아내는 우주인이 아닐까
혹시 아내는 우주인이 아닐까 ⓒ 양학용 & 김향미
그때였다. 또 한 명의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Where are you from?"
"어머나! 당신 영어할 줄 알아요?"

아내와 나는 눈이 똥그래졌다. 푸르나의 자매였다. 그녀는 마낭의 호텔에서 일하는데, 지금 비수기라서 집에 돌아와 지낸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질문을 쏟아냈다.

"이 분들이 부모님 맞죠? 여긴 이모님이구요? 푸르나의 아이는 몇 명이에요? 저 많은 식기들은 '맘의 맘' 때부터 내려온 거죠?…… 그리고, 가족이 더 있어요?"

아내의 정보는 80점 이상이었다. 푸르나의 가족은 오빠가 한 명이 더 있는데, 현재 한국에서 일한다고 했다. 좀 전 부모님들의 눈빛에 담긴 의미가 짠하게 다가왔다. 아마 한국에서 많이 고생할 거라고 내가 얘기해 주었다. 그녀도 안다고 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몇 년 만 고생하면, 여기에선 호텔을 가질 수 있어요. 오빠가 돌아오면 마낭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게 제 꿈이에요."

푸르나의 여동생이 자기 방으로 가자고 했다. 놀랍게도 비디오 기기가 있었다.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최근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다. 그러는 동안 푸르나는 옆에 앉아 줄곧 인상을 써댔다. 이젠 대화에 낄 수 없어서 불만이라는 건지, 뮤직비디오 가수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건지, 동생의 꿈이 싫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꿈 속에서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세상을 여행하다 별안간 현실로 통하는 문 앞에 선 기분이었다. 동생은 다부지고 영어도 잘 했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푸르나의 언어가 편했다. 들어보지 못한 그녀의 꿈도 예쁠 것 같았다.

탄촉 마을의 푸르나 가족
탄촉 마을의 푸르나 가족 ⓒ 양학용 & 김향미
다음날 아침, 아내의 오른쪽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전날의 야간산행 덕분이었다. 그래도 아침 일찍 떠나기로 했다.

"나마스떼!"

작별인사를 했다. 푸르나는 우리가 빨리 떠난다고 잔뜩 화가 나서 인사도 없다. 그만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불렀다. 손짓으로 부지런히 말씀하셨다. 동생이 통역해 주었다.

"길을 잃어버리면 언제든 다시 와요."
"네, 할머니도 건강하셔야 해요."

돌아서려는데 뭔가 가슴에서 맴돌았다. 할머니는 알고 계셨던 걸까. 길을 가고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는 법이다. 아내와 나는 그럴 때마다 하늘과 가까운 땅 히말라야에 사는 푸르나 가족과 나누었던 얘기를 기억하리라는 것을.

"나마스떼!"

그제서야 푸르나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나마스떼!
나마스떼! ⓒ 양학용 & 김향미

덧붙이는 글 | 양학용 기자는 아내인 김향미씨와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길을 떠나 2년 8개월 동안(2003년 10월 16일~2006년 6월 4일)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습니다.


#히말라야#안나푸르나#트래킹#네팔#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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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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