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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나가는 밀밭
추수가 끝나가는 밀밭 ⓒ 조명자
내가 어렸을 때는 숨바꼭질을 주로 밀밭 고랑 속에서 했다. 키작고 억센 보리밭보다 가늘고 긴 밀대가 낭창낭창한 밀밭은 어린 계집아이들이 숨기 딱 알맞은 장소였다. 바람에 이리저리 일렁이는 밀밭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바람결대로 일렁이며 햇빛에 부서지는 밀밭은 짙은 녹색이었다가 엷은 황갈색이었다가 변화가 무쌍했다.

법문사로 가는 길옆엔 요동 흔적도 많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뭣 때문에 언덕 절개지를 말발굽 엎어놓은 것처럼 파놓았을까 고개를 갸우뚱 하겠지만 몇 년 전 실크로드 답사 때 황하 유역 황토 고원지대에 남아 있는 요동의 용도를 들었기 때문에 다시 보니 반갑고 신기했다.

요동, 대문도 있고 창문도 있다
요동, 대문도 있고 창문도 있다 ⓒ 조명자
요동 안 침대 위에 앉아있는 소녀. 입구 왼쪽엔 세면대, 오른 쪽엔 침대 그리고 전면에 싱크대가 있는 원룸형이다
요동 안 침대 위에 앉아있는 소녀. 입구 왼쪽엔 세면대, 오른 쪽엔 침대 그리고 전면에 싱크대가 있는 원룸형이다 ⓒ 조명자
황하를 따라 흘러내려와 형성된 황토 고원지대에는 유난히 많은 요동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민초들의 내 집 마련은 그림의 떡.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도 찬이슬 가릴 오두막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황토고원에서 사는 중국인들은 이 어려움을 자연 속에서 해결했다.

단단한 황토 벽돌과 다름없는 황토 퇴적층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방도 만들고, 부엌도 만들고, 창고도 만드는 완벽한 생활공간. 비가 적은 지역이니 무너질 염려도 없고, 더구나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천연의 토굴이니 없는 사람 살기엔 더 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법문사 박물관
법문사 박물관 ⓒ 조명자
드디어 법문사가 있는 서안 시내로 들어왔다. 서안 중심가에서 얼마나 떨어진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번화가에 속한 위치였다. 편도 2차선 도로 위에 자동차, 버스, 오토바이를 이용한 릭샤 등 다양한 운송수단이 종횡무진이다.

법문사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은 절이라는데 바로 신라 '고은 최치원' 선생이 70일 동안 이 곳에 머물면서 <법장스님 전기>를 썼단다. 18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법문사. 한창 융성할 때는 24개 전각에 오천 승려가 거주했다고 한다.

거찰답게 주변 경관도 단정한 모습이었다. 정갈한 전돌로 촘촘히 깔아진 길을 따라 대웅전으로 들어섰다. 중국의 절 지붕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독수리 머리처럼 생긴 치미가 양쪽으로 가깝게 붙어 있는 모습이다. 부처님 상호도 우리와 다르게 영 어설프고 법당 안이 온통 울긋불긋한 휘장이 드리워져 있어 어쩐지 마음이 모아지질 않는다.

법문사 8각 13층 전탑. 탑 밑에 있는 지하궁전에서 불지사리가 발견됐다
법문사 8각 13층 전탑. 탑 밑에 있는 지하궁전에서 불지사리가 발견됐다 ⓒ 조명자
재빠르게 삼배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대웅전 지붕 뒤로 우람하게 솟은 8각 13층 진신 보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8각 형태의 탑 모양을 보자니 언뜻 오대산 월정사 9층 석탑이 떠올랐다. 같은 8각이지만 전돌로 쌓은 법문사 탑과는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월정사 9층 석탑. 섬세하고 유려한 곡선의 월정사 탑을 어찌 우락부락한 중국 전돌탑과 비하리.

하여튼 오늘날 법문사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 해도 8각 13층 전탑이다. 1981년 홍수 때 무너진 탑을 1987년에 보수하다 우연히 지하궁전을 발견했는데 그 속에서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지하궁전에서 발견된 부처님 손가락 사리함과 청동 불상, 석불상, 경전, 벽화 등 수많은 유물들은 일거에 법문사를 불교 성지로 만들었다.

법문사 탑에서 발견된 불상, 단아한 상호가 돋보인다
법문사 탑에서 발견된 불상, 단아한 상호가 돋보인다 ⓒ 조명자
부처님 손가락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지하궁전 입구로 갔다. 보탑 아래로 연결된 지하통로를 들어가는 문이 조그맣게 지어져 있다. 좁은 통로를 통과하는 문이 모두 4개. 출입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작은 문에 아주 섬세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드디어 불지사리함 앞에 섰다. 서로 가까이 가려고 몸싸움을 하는 관광객 틈으로 나도 재빨리 끼어들었다. 어두컴컴한 조명에 금빛으로 빛나는 사리함. 8중 사림함 속에 봉안된 부처님 손가락 뼈가 모두 4개였다는데 내 눈 앞에 있는 자그마한 금탑 속에 모셔진 불지사리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우리 일행이 한 줄을 차지했다. 순서대로 시주를 하고 삼배를 했다. 지도법사께서 가져오신 소형 망원경이 큰 역할을 했다. 마음은 급한데 초점은 안 맞고. 난리를 쳐가며 돌려봤더니 얼추 보인다. 약간 상아빛이 도는 원통형 막대 같다고나 할까? 얼핏 보면 아이들 과자 모양과 비슷했다.

법문사 불지사리를 참배한 뒤 그 유명한 구양순체(해서)의 필체가 조각되어 있는 구성궁 답사를 위해 버스에 올랐다. 구성궁은 법문사에서 2시간 반이 소요되는 궁벽한 외지에 있는 곳이란다.

구성궁을 찾아가는 길은 험했다. 도심에서 벗어나 산골로 산골로… 온통 높고 낮은 산등성이와 계단식 밭이 흩어져 있는 그런 길. 흡사 강원도 산골 어드메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계단식 밭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밀 추수가 끝나면 바로 옥수수를 심는다더니 역시나 메마른 황토가 풀풀 날리는 계단식 밭에 옥수수 모종들이 자라고 있었다. 옥수수 밭에선 밀레의 만종에서 나오는 부부처럼 고개를 숙인 남녀 농부가 호미처럼 생기긴 했는데 흡사 곡괭이처럼 길게 생긴 연장을 들고 톡톡 치며 옥수수 모종 사이 흙을 깨주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넓은 옥수수밭에 풀 한 포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 넓은 밭고랑을 무슨 수로 풀 한 포기 없게 만들었을까? 중국서도 제초제를 쓰는 걸까? 날이면 날마다 풀과의 전쟁을 치르는 우리나라 농부들을 생각하자니 비법이라도 있으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정말로 옆구리가 결릴 만큼 시간이 흘러서야 구성궁에 도착했다. 얼마나 오지에 있었던지 가이드가 몇 번씩 뛰어나가 길을 물어 볼 만큼 외진 곳이었다. 버스에 내려 여기가 구성궁이라고 하는데 모두 기함을 했다.

우리는 '궁'이라고 하기에 거대한 궁궐을 생각했는데 인가도 별로 없는 촌구석에 마치 사당처럼 생긴 아주 작은 기와집이 구성궁이라는 것이다. 이곳이 바로 당 태종이 피서를 즐겼다던 그 궁궐 맞나?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동네 주민들도 신기하긴 마찬가진가 보았다.

우리 버스를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 뭐라 그러는데 아마도 저 사람들이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고, 설왕설래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버스를 내리는데 마침 관리인인 듯싶은 사람이 구성궁 대문을 잠그고 퇴근을 하려는 참이었다.

가이드가 중국어로 설명을 하니까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가 반갑게 웃으며 대문을 다시 연다. 한문과 서예에 능통하신 우리 법사님. 해서의 대가라는 구양순의 '구성궁 예천명' 비를 직접 볼 수 있다는 환희심에 붕 떠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해서, 행서, 초서 그리고 추사체까지. 듣긴 많이 들었지만 그 글씨체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수시로 헷갈리는 우리 같은 무식쟁이에겐 이 비석 하나 보자고 그 머나먼 길을 달려 온 것이 도무지 황당하기만 했다.

하여튼 전각 안에 모셔진 '구성궁 예천명' 비 앞에 섰다. 까만 돌에 새겨진 평범한 비석, 우리가 보기엔 여태껏 본 비석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서체를 제법 아는 서예가라면 평생 여기 한번 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산시성 린유현에 있는 구성궁은 원래 수나라 인수궁 터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 태종 이세민이 이 궁을 '구성궁'으로 고치고 여름 별궁으로 사용했는데 구성궁에서 솟아나온 샘물이 어찌나 달고 맛있었던지 태종은 이 샘물 맛을 찬하라는 명을 내린다.

당 태종의 명을 받들어 <구성궁예천문>이 지어졌는데 시문은 시중으로 있던 '위징'이 짓고 글씨는 구양순이 썼다고 한다. 맛좋은 샘물을 찬하면서 태종의 덕치를 찬양한 24행 50자의 시문. 비석 속에 음각된 구양순체는 힘이 있으면서도 단정한 선비의 기개가 느껴지는 듯 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6월 2일부터 10일까지 15년째 이어지는 '불교 공부' 모임에서 서안 답사를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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