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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맨 닮았지요? 이 땅 농사짓는 농민의 전형입니다.
ⓒ 이우성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농부, 해발 1200고지 10만평이나 되는 600마지기 농장을 가장 편한 휴식처로 생각하는 사람,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농부로서의 자긍심과 희망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농부 이해극(57)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에게 붙어다니는 말도 많다. 고추왕, 발명왕, 발명가협회회장, 친환경농업 전도사, 통일농업 선구자, 부시맨. 그런데 그가 불러달라고 하는 이름은 '농사꾼'이다.

그에게 농사일은 즐거움이다. 뙤약볕 쬐는 여름에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다른 일들을 접어두고 대관령보다 더 높은 600마지기 어마어마한 밭에서 겨우 혼자 농사일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 있는 청옥산 1200m 고지. 연평균 기온이 섭씨 5도로 대관령보다 400m나 높은 이곳은 밭 600마지기로 유명한 곳.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 드넓은 땅을 옥토로 바꾼 사람이 바로 이해극 선생이다.

청옥산에서만 16년째 꼬박 친환경영농에 바친 결과 유기물 함량이 5.4%나 나왔다(전국 평균2.1%). 배추, 상추를 심고 수확 후에는 호밀을 심어 지력을 높이기를 수차례, 실패를 딛고 얻은 성공의 기쁨은 달콤하다. 그래서 선생이 쓰는 말이 있다.

"실패의 진보적 가치는 충분히 있다."

처음 북한 땅에 농업 기술 전한 '통일농부'

▲ 끝이 보이지 않는 10만평 너른밭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몇명과 함께 채소 농사짓고 있습니다.
ⓒ 이우성
이곳은 한여름인데도 덥지 않다. 밤이 되면 긴 팔에 전기장판을 깔고 자야 한다. 여름 모종 키우기는 안성맞춤. 그러니 그가 이곳에서 여름 동안 휴식한다는 이유를 알겠다. 더위를 피해 이곳으로 농사일하러 오는 것이다.

"똥만 싸고 지구촌 오염만 시키고 가면 그게 무슨 인생이야. 한 시대 살면서 선배로부터 받은 것을 후배에게 온전하게 물려주는 것이 도리 아니야. 사회발전의 간단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선생은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이곳 말고도 충북 제천 봉양에 4000평 비닐하우스 농사도 있다. 제천 봉양면 한가지골에 친환경생태마을을 조성해 유기농업교육, 후배인력 양성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유기농업 밭을 비롯해 세미나실, 황토방 등 각종 시설을 갖춰 놓고 있다. 유기농밀과 냉동 동결건조시킨 브로콜리잎을 섞어 브로콜리 국수, 쿠키, 빵을 만들어 판매도 하고 있다. 이곳 운영은 동생이 사업화해 '행복한 국수'에서 전담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아토피를 고쳐보자고 시작한 일이다.

통일농업에 대한 선생의 역할도 무게감이 있다. 그는 남한 농부로서는 처음으로 북한 땅에 농업기술을 전한 '통일농부'다. 1998년 현대아산의 지원으로 북한 북고성 남새농장에 비닐온실 1만2000평을 짓고 유기농법으로 멜론, 상추, 가지, 토마토와 같은 각종 채소를 심어 가꿀 수 있도록 했고, 삼일포에 3000평의 과수농장을 조성해 영농기술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관령에서 육묘한 견본 배추, 고추 모종을 북송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북한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현재 북한에 우리 기술, 우리 자동화, 우리 효소 같은 것이 들어가 영농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통일농업을 한층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자신한다. 독립군이 월급을 타고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가산탕진하고 해서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을 들으니 선생은 독립운동가임이 틀림없다.

그밖에 개성, 연변, 중국 가나안농군학교 등에도 그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저 농사가 좋아 시작한 일일 뿐, 선생에게 힘들다, 귀찮다는 얘기는 들어볼 수가 없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새가 없다는 것을 신조처럼 간직하고 산다. 병든 엄마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건강한 생각, 건강한 농법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선생은 철도청 전기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남긴 이야기가 참농부로 살아가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

"병든 사람에게는 하룻밤이 길고 고달픈 사람에게는 한걸음이 멀며, 알고자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지루하다."

그는 중학교 시절 4H 활동을 통해 함께하는 삶, 공동체 삶, 나누는 삶에 대하여 배우게 되었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힘을 모아 더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하여 농업고등학교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해극 선생은 제천농고를 졸업하고 해군에 자원입대해서는 전기기술을 익혔다. 선생이 농민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기기술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과 군대에서 익힌 전기기술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그때부터 고향 제천 봉양에 돌아와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 고추농사를 시작하는데, 군대시절 태국에서 사시사철 고추가 열리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겨울 추위를 피하여 남들보다 더 빨리 고추를 딸 수 있는 방법을 시도했다. 고랭지인 제천에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남들보다 석 달이나 일찍 고추씨를 뿌려서 모종을 길러내 몇 번의 실패 끝에 남들보다 2∼3개월 일찍 풋고추를 수확하게 되었고, 고추농사를 지어 큰 성공을 거둔다.

다시 화학비료와 살충제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고추농사를 짓기 시작하였고, 유기농업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추를 많이 생산하는 '고추 다수확 왕'에 뽑히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익힌 농사기술을 다른 농민들과 나누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건강한 토양의 지력 배양만이 품질 좋은 농산물 생산 가능"

그 후 90년대 청옥산 600마지기 버려진 땅을 발견해 비옥한 농토로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숱한 어려움을 뚫고 '땅을 키우는 농부'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땅을 살리는 일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초기 폐허화된 농장에 휴경기 호밀 녹비재배로 땅을 살렸다.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 생산을 위해 "병든 어머니가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없듯이 건강한 토양의 지력 배양만이 품질 좋은 농산물 생산이 가능하다"는 신념의 실천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일반 상추가 보관기간이 3일 정도인데 반해 15일까지 보관하더라도 싱싱함이 그대로 살아있을 만큼 저장성도 뛰어나다. 정성을 기울인 만큼 알차고 건강한 농산물을 거둘 때 그 보람이 농사짓는 재미고, 농부의 즐거움이라고 껄껄 웃는다.

무엇이든 자신이 신이 나서 하면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농부인 선생은 농사를 짓다 불편한 곳이 생기면 곰곰이 궁리해서 좀 더 편하게 만들어 쓰곤 한다. 발명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따로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생활 속에서 얻은 소재로 여러 가지 물건을 발명하게 된 것. 게으른 사람은 핑계를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방법을 찾는다는 것. 그래서 선생은 천재와 노력하는 사람마저 이기는 즐기는 사람이 되어 즐겁게 발명을 했다.

▲ 하우스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물도 모아 물탱크에 저장합니다. 물 한방울도 허투로 쓰는 일이 없습니다.
ⓒ 이우성
처음으로 만든 발명품은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가 정상 이상으로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삐삐' 하는 경보음을 울리는 기계(다목적온도변화경보기)였다. 이 기계로 4H 경진대회에서 2등상을 받았다. 비닐하우스의 문을 여닫다가 끙끙 앓게 된 부인을 보고, '비닐하우스 자동개폐기'를 발명했다. 실패를 거듭하다가 17번 만에 성공해 일본을 비롯해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동시에 이랑 만들고 비닐 씌우는 밭두둑피복성형일관작업기를 개발해 30분에 300평을 씌우게 되었다. 또 수확한 농작물을 트랙터에서 바로 차에 실을 수 있도록 한 트랙터 부착형상차 작업기, 폭설이 왔을 때 경보를 울려주는 폭설피해방지기, 씨앗을 한꺼번에 50개씩 자동으로 뿌려주는 자동파종기와 같은 것들을 개발했다.

600마지기 농장에도 선생의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비닐주머니로 큰 담수탱크를 만들고 하우스 치마비닐을 말아올려 빗물을 모아 호스로 탱크까지 연결해 빗물을 모으는 장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가 만든 발명품은 모두 어떻게 하면 농사를 더 편하게, 힘을 덜 들이고 지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만들게 된 것들이다. 선생은 농업이야말로 종합응용과학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자신의 연구와 노력의 성과 체험사례를 20여 년간 600여 회의 교육과 강의를 실시하여 수강자 10여 만명, 농장견학 연간 3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농민교육에도 노력하고 있다.

"퇴비 만들어 농민에게 주면 국민 의료비 경감될 것"

그는 앞으로 수입개방 압력에 대비하여 나아갈 길은 고품질 농산물 생산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애국심을 호소하기보다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이 우선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들의 소득구조 변화로 인해 소비성향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발빠른 시장대응만이 살길이라고 확신하면서 친환경시범마을 육성 등을 통해 소비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느낄 수 있는 농업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산림은 방치 수준입니다. 1조원 들여 잡관목을 이용해 퇴비를 만들어 농민에게 주면 국민 의료비가 경감될 것입니다. 그러면 5조원 정도 의료비가 절감될 것입니다."

선생은 국민 건강은 생각하지 않고 외국 농산물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관료들이 한심하다. 지혜롭게 민간기업들이 나서 농민교육과 소비자교육을 함께 해야 불임시대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의 나라 농산물로 국민건강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배불리 먹으면서 한국은 오히려 행복지수가 낮아진 것으로 판단한다. 국가 안위가 달린 문제이므로 한국 농업을 경제적인 것으로만 따지지 말라고 일침한다.

숫자가 적더라도 농업은 해야 하는 일, 러시아 다차처럼 전원농을 많이 길러내야 할 것으로 본다. 퇴직자, 귀농자에게 300∼500평 정도 땅을 마련해 주고 육묘는 실비로, 퇴비는 무상으로 주어 농사짓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저장고 달린 집을 짓고 있습니다. 해발 1200고지라 이곳은 더위가 없습니다. 농사 일 하는게 피서라는 선생의 말씀이 이해되었습니다.
ⓒ 이우성
선생이 해결책으로 내놓는 이론은 명확하다. 국가의 정치 목표는 복지사회이고 그 근원은 먹을거리다. 농업이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애정으로 아이 키우듯 모두가 농업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도 남에게 신의를 얻어야 돈을 벌 수 있으므로 항상 왜 농사짓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 농산물이 지구촌에서 제일 안전하다는 인식과 국민 건강을 위해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농민도 할 말 할 수 있다는 명쾌한 논리에 머리가 끄덕여진다.

농민으로 사는 이유를 제대로 정리해 보겠다는 이해극 선생, 1200고지에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을까. 뜬금없이 든 생각이다.

산토끼가 금방 뛰어나오고 수리부엉이가 웅웅 운다. 선생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사는 이유, 자신이 해야 할 일, 농민이 잘 살고 대접받는 사회를 위해 바삐 움직일 생각으로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청옥산에 부시맨 닮은 한 사람이 유기농업의 큰 수레바퀴를 손으로 우렁차게 돌리고 있다. 그의 이름, 이해극.

덧붙이는 글 | 이곳은 산아래 마을에서 이곳까지 올라가는데만 차로 1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가히 불가사의한 일을 혼자의 힘으로 일구고 있습니다. 그 많은 일, 소규모로 농사지으며 힘들다 하는 저 자신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흙살림(www.heuk.or.kr)신문 8월호에 함께 실렸습니다.


태그:#육백마지기, #이해극, #평창, #제천, #청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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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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