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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인 왕언니 고의숙씨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인 왕언니 고의숙씨 ⓒ 김혜원

지난 1일 상해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1시간 10분여. 청도 공항에 내리니 40℃를 육박하는 뜨거운 지열이 숨을 막히게 한다. 공항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 '덕수궁'이라는 한국음식점에서 <오마이뉴스> 유명 블로거인 '왕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등줄기를 타고 연신 땀이 흘러내지만 반가운 인연을 만날 생각을 하니 오히려 잔소름이 돋는다.

"하하하, 중국에서도 번개가 가능하네요."
"번개요? 호호호. 정말이네요. 번개 맞네요. 국제적인 번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국내도 아닌 외국에서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낸 가족이나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악수를 하고 얼싸안았다. 블로그 안에서 친한 이웃으로 지낸 세월이 1년이 넘다보니 서로에 대해 알 만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반가움의 표현이 나온 것이다.

중국 청도에 사는 중국인들과 한국인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잔잔하고도 진솔한 글 솜씨로 전하는 중국통 '왕언니'. 그는 지난해 4월경부터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고단한 삶의 놀이터(☞ 클릭! 블로그 바로가기)라는 집을 짓고, 2007년 7월까지 132개라는 적지 않은 수의 포스팅을 해오고 있다. 오마이뉴스 블로거라면 누구나 그 이름이 익숙한 유명 블로거 중 한 사람이다.

왕언니와 중국 '덕수궁'에서 번개하다

그가 올린 글 중 조선족들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전한 '내가 만난 조선족' 시리즈는 그를 단번에 유명 블로거로 만들었다. 중국에 거주하거나 중국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블로거들도 있지만 그처럼 조선족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듣기는 쉽기 않았기 때문이다.

청도 사람들의 이야기인 '칭따오(청도) 수다' 역시 오마이뉴스 메인면을 수차례 장식하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히 청도 재래시장의 소박한 풍경과 올림픽을 앞두고 최근 일고 있는 개발붐에 밀려난 철거민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아 블로거는 물론 독자에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중국 청도에서 여성복을 만드는 공장을 하는 여동생을 도와주고 있다는 '왕언니'의 본명은 고의숙(54).

5남매의 맏이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친정어머니와 함께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는 그는 지금도 여전히 여동생이 사장으로 있는 봉제공장에서 직원들의 식단을 짜고 식재료를 준비하는 등 언니로서 큰 일을 하고 있다. 집에서나 블로그에서나 '왕언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굴곡 있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지난 중국살이 4년 역시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제 서서히 중국생활에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는 그는 자신의 블로그명을 <고단한 삶의 놀이터>로 지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원래는 <고의숙의 단단한 삶의 놀이터>로 지으려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 저의 생활이 워낙 고단하고 힘이 드니까 '고단한 삶의 놀이터'라고 했어요. 삶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탄탄해지면 <단단한 삶의 놀이터>라고 바꾸겠지요."

막다른 길에서 택한 중국살이 4년

동생과 함께 복장공장을 키워가는 것이 꿈이라는 왕언니.
동생과 함께 복장공장을 키워가는 것이 꿈이라는 왕언니. ⓒ 김혜원
홀어머니 아래 5남매의 맏이로 동생들과 어머니를 챙겨야 했던 그. 하지만 그의 인생도 그리 평탄하지는 못해 힘들다는 중국행, 그것도 가장 어렵다는 봉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IMF 이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큰 돈을 사기당하기도 했구요. 재기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한국에서는 쉽지 않더라구요. 그러던 중에 청도에서 봉제공장을 하는 여동생에게 연락이 왔어요. 자기를 도와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고…."

그는 중국까지 들어오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본국에서는 할 만한 일은 다 해본 사람이라면서 가장 막다른 길에서 택하게 되는 것이 중국행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와중에 중국말과 물정에 어두운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다가와 등을 치는 조선족들까지 있어 그동안 적지 않은 피해까지 보았다는 것이다.

그의 블로그에 가끔 비치는 조선족에 대한 서운함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중국말도 못하고 중국 공안이나 법에 대해 알지 못하니 한국말과 중국말을 모두 할 줄 아는 조선족을 고용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거든요. 조선족을 통하지 않고는 허가 하나도 낼 수가 없으니 그들이 속이려 들면 고스란히 속는 수밖에 없어요. 억울해도 답답해도 도움은커녕 하소연할 데조차 없는 것이 중국에 들어와 일하는 한국 사람들의 속사정이에요."

"기사로 나가기엔 궁상맞은 수다에요"

120여명의 중국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봉제공장.
120여명의 중국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봉제공장. ⓒ 김혜원
한국에서도 팍팍한 삶을 살았지만 중국에서 역시 그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동생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120여명의 직원들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그가 맡은 일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40분이지만 왕언니의 출근은 그보다 이른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한단다. 오전 6시 30분부터 장에 나가 120인분의 장을 보고 10시 이전에는 돌아와야 낮 12시 점심시간에 맞추어 음식장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공장 애들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거든요. 중간에 결혼을 해서 밖에 사는 아이들도 있지만 하루 세 끼는 모두 공장에서 먹지요. 그러다 보니 이틀에 한번씩은 큰 장을 보아야 해요. 식재료를 사와서 분류하고, 다듬고, 저장하는 일이지만 워낙 재료가 많으니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도 힘이 들지요. 그래도 그 일만 하고 나면 좀 시간이 남아 교회 봉사도 나가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그런답니다."

<오마이뉴스>와는 어떤 인연으로 가까워지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강화도에 사시는 전갑남 기자의 부인과 함께 공부를 했어요. 저도 마흔이 넘어서 방송통신대학을 다녔거든요. 사는 게 바빠서 대학원 진학은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지만 …. 컴퓨터도 그때 배웠어요. 전갑남 기자의 부인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전갑남 기자 기사를 찾아 읽고 댓글도 달고 그러다가 <오마이뉴스> 블로그까지 진출하게 되었지요."

중국이야기가 '사는이야기' 섹션의 기사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면서 기자로 활동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젓는다. 그저 자신의 팍팍한 삶을 털어놓은 개인적인 수다 같은 데다가 대부분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고단한 이야기다 보니 기사로 내놓고 싶지 않은 것이란다. 또 너무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도 그리 반갑지만은 않단다.

"제가 쓰는 이야기가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거든요. 지금의 제 삶처럼 말이죠. 제 글을 좋아 해주시는 이웃들이 있어서 보람도 있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내가 너무 궁상스런 이야기만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두려워요. 제 글이 <오마이뉴스> 메인면에 올라왔을 때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어찌나 부담이 되던지 얼른 내려줬으면 싶더라구요."

'고단한 삶'에서 '단단한 삶'으로

지난 4년 동안의 중국생활에서 그는 더 많이 단단해졌다. 작은 문제만 생겨도 눈물바람을 하며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던 그가 지금은 오히려 11년차 베테랑인 동생에게 조언을 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종업원이 속을 썩이거나 클레임을 먹을 때면 다 때려치우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자고 하지요. 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지난 11년 고생은 다 헛거인 걸요. 큰 돈 번 것도 없이 뼈빠지게 일한 게 전부에요. 납품일과의 싸움, 종업원들과의 싸움, 불량과의 싸움…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어려운 건 한국에서나 해외에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외국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하청 생산해서 전량 다시 수출해야 하는 임가공 봉제공장은 일의 양에 비해 수익은 적다고 한다. 동생의 일솜씨와 성실성이 소문이 나면서 외국 주문은 늘어나고 있지만 워낙 싼 임가공료와 가끔 일어나는 클레임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큼 형편은 좋아지지 않는다고.

왕언니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수시장을 생각하고 있단다. 공장이 있는 청도에 가게를 하나 내고 중국 내수시장에까지 물건을 팔아 임가공료에만 의존하는 수익구조를 탈피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임가공업이 내수시장에 물건을 내기 위해서는 새롭게 허가를 내야하고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기에 엄두를 못 내고 속만 태우고 있는 것이 대부분 중국 진출 임가공업종이 겪는 한계라고 한다.

싼 현지 임금과 세제혜택, 저렴한 공장임대료 등 좋은 조건으로 중소임가공업의 희망진출 1위국이었던 중국이지만 최근에는 줄어든 세제혜택과 노동법 강화 등으로 오히려 중국을 떠나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다른 나라로 가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더 이상 중국땅이 임가공업의 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물러서면 한국 아줌마가 아니다!

왕언니는 직원 120명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다.
왕언니는 직원 120명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다. ⓒ 김혜원
이처럼 많은 한국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해 고국으로의 귀국하거나 또 다른 나라로의 진출을 꿈꾸지만 의지의 한국 아줌마, 한국 언니 왕언니는 여기서 좌절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성공할 거예요. 우린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데까지 내려가 본 사람이고 고생도 해볼 만큼 했거든요. 더 이상 어떤 어려움이 있겠어요. 우리 다섯 남매 똘똘 뭉쳐서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요. 힘들고 어려울 때면 더 어려웠던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이겨내려고 해요. 열심히 살 거예요. 그리고 꼭 성공할 거예요."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무한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한국 아줌마들. 먼 중국땅에서 만난 왕언니 고의숙씨 역시 어떠한 고난의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지혜롭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안에서 작은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의 아줌마, 한국의 언니였다.

때로는 한국에서 때로는 말도 통하지 않는 먼 외국에서 이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언니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의 번영이 있지 않았을까. 오늘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동생들과 가족들 그리고 조국을 위해 힘든 일 어려운 일을 마다 않고 땀을 흘리는 수많은 우리들의 왕언니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당신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왕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왕언니 블로그 '고단한 삶의 놀이터' 바로가기


#왕언니#블로거#중국#봉제공장#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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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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