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와요. 잠깐 조는데도 매일 남편이 꿈에 나타나요. 자기는 죽지 않았다고 하네요."
"회사 사람들이 장례만 치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하대요. 그런데 장례 치른 뒤 나타나지를 않아요."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 안에서 12일째 검정색 상복을 입고 1인시위를 하고 온 정은영(33)씨와 7일 저녁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신 8개월의 만삭인 정씨는 "내 남편을 살려내라"고 쓴 피켓을 들고 1인시위에 나섰다.
남편 최광진씨는 7월 10일 낮 12시경 대한항공 김해정비공장 격납고 지붕에서 떨어져 사망했다(향년 38세). 대한항공 김해정비공장 과장이었던 남편은 16년 동안 근무했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지만, 유가족들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자살했다면 '업무상 스트레스' 때문이라 보고 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정씨는 "그냥 꿈이었으면 좋겠네요"라고 대답했다. "답답하다"며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이러다가 정말 공항에서 아이 낳는 거 아닌지, 유산이라도 하는 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네요"라고 말했다.
이날도 정씨는 몸살 기운이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김해공항에 나갔다. 정씨는 "몸이 너무 안 좋아요, 약도 못 먹고 있어요, 몸살이 오는 것 같아요, 오늘은 쉬고 싶었지만 하루 빠지면 이틀 빠지게 되잖아요, 끝까지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회사 말만 믿고 3일 만에 치른 장례 후회"
유가족들은 남편 최씨가 죽은 지 3일 만에 장례를 치른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것도 화장해서 흔적조차 알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곧바로 장례를 치른 이유는 대한항공만 믿었기 때문"이라고 정씨는 밝혔다.
"후회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았지요. 그때는 그런 일을 처음 겪다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남편의 동료와 회사 사람들이 와서 장례를 치르면 보상이며 산재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따랐던 겁니다. 그런데 어찌 이럴 수 있나요."
"1인 시위 뒤 회사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정씨는 말했다.
"장례 치르기 전에 회사 사람들이 했던 태도라면, 1인시위 현장에 나와 보거나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아직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아요. 3일째 되던 날 공장장이 개인적으로 왔다면서 그러대요. '시위 접고 언론에도 안 알리면 긍정적으로 하겠다'고 말입니다."
"남편의 동료들도 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정씨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이전에 알던 분들한테 전화를 해봤죠. 겨우 통화가 되면 '지금 와서 말할 수 없다'거나 '도움을 못줘서 미안하다', '지금 이 상황에 누가 나서겠느냐' 등의 말만 하대요. 대한항공 직원들은 어느 누구 하나 나와 보지 않네요. 사회가 이런 것인지…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
"노조가 당연히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씨는 "직원들도 살아야 하기에 회사 눈치 봐서 그렇겠지, 이해가 되면서도 참 섭섭하네요"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에 대해 물었더니 정씨는 "이 정도 상황이 되면 노동조합은 당연히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소한 고생한다며 물 한 잔이라도 떠다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얼마 전 노조 간부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회사에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주라고 하더래요"라고 설명했다.
"남편의 자살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더니 정씨는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1인시위 피켓에 적힌 글을 본 사람들도 말해요. 대한항공 다니면 연금도 많이 받고, 아내와 자식도 있는데 왜 자살하느냐고요. 그날 새벽 3시에 집에서 나갔는데, 자살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눈빛이라도 그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죠."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몸무게가 10kg 정도 빠지기도 했으니까요. 일본에 가려고 여권도 갱신해 놓았고, 일본 관광 책도 사서 읽고 있을 때였죠. 7살 난 딸이 있고, 7년 만에 둘째를 가졌다고 너무나 좋아했는데, 자살이라니요. 그건 아닙니다."
"사람을 비행기 부품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 같네요"
1인시위를 보고 지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물었더니, 정씨는 "고마운 분들이 참 많네요"라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은 음료수를 사와서 주고요, 한 아주머니는 '내 딸 같다'고 했고요. 손을 잡고 울기도 하는 분들도 많아요. 젊은 여자는 아기 낳은 지 얼마 안됐다며 자기가 '미치겠다'는 말을 하대요."
정씨는 "회사는 직원이며 직원 가족을 사람으로 보지 않네요, 신랑이 죽은 게 비행기 부품이 하나 없는 것보다도 못한 것 같네요, 대한항공은 비행기 부품 하나가 없으면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찾아와서 꽂는 것 같대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를 끔찍이도 위하는 효자였죠"라고 말한 정씨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모든 것을 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했다.
"뱃속에 있는 아기를 잘 낳을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딸과 함께 잘 살 수 있을지 정말 앞이 캄캄합니다. 좀 도와주세요."
회사측 "회사에서 장례 등 종용한 부분 없다"
정은영씨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남편의 상사였던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그 상사는 "빨리 정리되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서로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장례·화장에 대해, 그는 "당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개인 입장에서 볼 때 유족과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진행시켜 나간 것으로 안다"면서 "장례와 화장에 대해 유족들에게 물어 확인한 뒤에 했으며, 회사에서 종용한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고 최광진씨의 업무와 관련해 그는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했지만, 누구나 업무로 인해 잘못이 있으면 지적을 받고, 상사들이 수정 지시를 내릴 때도 있다"면서 "최 과장도 다른 직원과 같이 일반적인 수준이었으며, 특별히 최 과장만 나무랐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1인시위에 직원들이 와 보지 않는다"는 정씨의 주장 대해, 그는 "회사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통제할 수도 없다. 직원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자살이라면 업무상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회사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