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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이라는, 남북정상회담의 짧은 준비기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근본적인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격 발표된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우리가 이 변화를 주체적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게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 간 풀어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들을 긴급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8~30일 평양에서 개최된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김양건 북측 통일전선부장은 8월 5일 평양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서명했다.
ⓒ 청와대 제공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면 우선 피해갈 수 없는 의제가 '한반도 비핵화' 이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의 당면 목표라 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 실현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그동안 북한 핵문제 '해결'을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화 했던 것도 비핵화 이슈를 피한 정상회담 개최는 의미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의 기본 가닥이 안 잡힌 상태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얻을 게 없다"(2007년 신년기자회견), "남북정상회담은 북핵문제가 풀리지 않고는 성사될 수 없다"(6.14 <한겨레> 인터뷰)고 말해왔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이런 전제조건이 일단 풀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해결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해결의 가닥'이 잡힌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정에서 보듯이 북핵문제는 언제 다시 반전을 겪게 될지 모르는 만큼 노 대통령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남북한이 주도할 평화체제 논의에도 중요한 역할"

특히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는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내렸는지에 대해 아직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이를 불식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6자회담 참가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절차를 더욱 확고히 하는 가시적 성과를 이끌어내야 할 상황이다.

이봉조 통일연구원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과정을 더욱 견실하게 만드는 것은 남북한이 주도해야 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못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노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핵문제 해결 없는 평화체제 논의는 공허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비핵화'는 이런 국제사회의 시선 때문만이 아니라 오히려 국내적으로 더 절실한 요구다. 북한이 지난해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 보유선언'을 한 상황에서 북핵 위협에 우선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은 바로 남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남한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한정돼 있다. 북한은 핵 폐기를 궁극적으로 미국의 위협 제거, 즉 북미관계 정상화와 맞바꾸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런 '현실'을 감안, 비핵화와 관련한 진전된 조치를 끌어내기보다는 우선 6자회담에서 합의된 비핵화 절차를 공고히 하고 가속화하는 '정치적 의지' 확인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 연합뉴스

6자회담에서 전향적 자세 보이고 있는 북한

현재 6자회담을 통한 비핵화의 이행은 이른바 '초기단계' 조치가 마무리 과정에 접어들면서 다음 단계의 '로드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북한은 핵무기 제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 기지였던 영변의 5메가와트 원자로와 재처리공장 등의 가동을 정지시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ㆍ검증을 받아들였다.

다음 단계 조치의 핵심은 영변 핵시설들의 불능화(disabling)와 '모든 핵프로그램'의 신고. 이에 대한 대가로 나머지 5개국은 중유 95만t 상당의 에너지-경제 지원을 북한에 제공하고, 특히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교역법 적용 등 적대조치들의 해제를 진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돼있다.

지난달 중순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에서 북한은 상당히 전향적이고 실무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의지를 거듭 확인하면서, 그 구체적인 기술적 방안에 대해 논의할 의지가 있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자세는 지난 7, 8일 판문점에서 열린 에너지-경제협력 실무그룹회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 조치의 대가로 받게 될 중유 95만t 상당의 에너지-경제 지원 방안과 관련, '소비형'과 '투자형'으로 나눠 구체적 요구를 제시했다.

즉 '소비형' 지원으로서 매달 중유 5만t씩을 정기적으로 제공받길 희망했고, 이와 함께 '투자형' 지원으로서 에너지 생산시설 개보수와 관련된 설비를 요청했다는 것. 또 에너지-경제 지원이 북한이 취할 비핵화 조치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융통성을 발휘하겠다는 태도도 밝혔다.

이 같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는 비핵화 의지에 대한 간접적 확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부의 의심처럼 비핵화 의지가 없는 단지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면 이렇게 구체안을 만드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의도는 다음 주 중국에서 개최되는 한반도비핵화 실무그룹과 8월말 러시아에서 열릴 예정인 동북아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 회의를 거치면서 차츰 더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정상회담에 응한 것 자체가 '전략적 결단' 뒷받침

노 대통령은 일단 비핵화 의제와 관련해 새로운 방안을 제안하기보다는 이같이 궤도에 오른 6자회담의 과정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불능화 조치'를 확실히 이행하도록 하고, 이와 함께 진행될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를 성실히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핵프로그램 신고 단계에서 기존 핵무기나 고농축우라늄(HEU) 계획 등을 둘러싸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정부는 그동안 남북대화와 6자회담의 '선순환적 관계'를 강조해왔다. 이는 북핵문제를 남북대화로 풀어나가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6자회담의 틀을 이용해 해결해야 한다는 정세판단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원칙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성사로 그 유용성이 증명됐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그 기조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의 비핵화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어떤 방법, 어떤 표현으로 끌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핵폐기 과정이 탄력을 받은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정치적 의지가 실린다면 북한 체제의 특성상 그 의미는 무겁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호응해 나온 것 자체가 최근 보인 비핵화에 대한 전향적 태도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만 매달리지 않고 남북관계를 함께 풀어나가겠다는 것은 남측에서 받게 될 지원까지 포함, '포괄적' 해결방안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전략적 결단'을 배제하고는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1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현재 6자회담의 추진 속도로 볼 때 남북정상회담이 남북한과 미국, 중국 간 4자 정상회담 또는 6자회담 참가국 전체 정상들이 모이는 '빅 이벤트'로 이어지는 상황 전개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가능성의 전제가 되는 것이 '비핵화' 이슈의 진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핵화'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의 '입구'이자,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는지를 재볼 수 있는 '가늠자'이기도 하다.

▲ 2단계 제4차 6자회담 이레째인 지난 2005년 9월 19일 낮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6개국 대표들이 회담 직후 손을 맞잡고 이를 축하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성연재

#남북정상회담#비핵화#불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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