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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풀잎에 빗방울이 대롱대롱한 여름들녘을 걸으며 마음성형을 시도해 봅니다.
ⓒ 임윤수
배배 꼬였습니다. 뭐 그리 뒤틀릴 일들이 많은지 새끼줄처럼 배배 꼬였습니다. 떨어져 가는 꽃 모양만 뒤틀린 게 아니라 구석구석, 사람 사람들의 심사까지도 꼬이고 비틀어진듯합니다.

후드득 내리는 장맛비를 맞으며 들녘 길을 걸어봅니다. 초록입니다. 산색도 초록이고 들녘도 초록입니다. 바윗돌을 쌓아올려 울퉁불퉁 거무튀튀하기만 했던 도랑둑도 초록빛으로 덮이고, 도랑을 흐르는 물조차 초록색을 띠었습니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풀잎에 앉았습니다. 빗방울의 무게가 버거운 듯 풀잎들은 허리를 구부립니다. 어떤 빗방울은 엉덩이를 대고 미끄럼이라도 타듯 뭉그적거리며 천천히 흘러내리고 어떤 빗방울은 간지럼이라도 탄 듯 때굴때굴 구르다 낙수처럼 떨어집니다.

▲ 이래저래 뒤틀린 심사만큼이나 꽃잎들도 뒤틀리고 꼬였습니다.
ⓒ 임윤수

▲ 꽃잎이 지며 배배 뒤틀리는 이 꽃을 볼 때마다 ‘곱게 늙어가야 할 텐데’를 수없이 반복해 봅니다.
ⓒ 임윤수
후드득거리던 빗방울이 멈추고 햇살이 쏟아집니다. 툭툭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풀잎을 걷어차며 여름들녘으로 발길을 옮겨봅니다. 풀잎에 맺혔던 물기가 바짓가랑이로 건너옵니다. 실오라기를 타고 야금야금 젖어드는 물기가 살갗으로 느껴지니 살아온 날들도 가슴으로 적셔옵니다. 촉촉하게 젖어오는 바짓가랑이에 지나간 시간들이 이슬처럼 맺혀갑니다.

비 멎은 들녘에서 돌이켜 보는 지난 시간

다는 아니겠지만 먹고 싶은 것도 먹어 봤고, 입고 싶은 것도 입어 봤습니다. 엄청난 착각일지 모르지만 사랑이란 것도 해 봤고 연애라는 것도 해봤습니다. 가슴이 저리도록 누군가를 좋아도 해 봤고, 그 좋아함을 어쩌지 못해 끙끙 열병을 앓듯 몸부림도 쳐봤습니다.

찬바람이 씽씽 일 정도로 예민하고 냉정한 시간도 보내봤고, 몸뚱이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데일만큼 불덩이처럼 뜨거운 시간도 보내봤습니다. 격렬한 몸부림으로 눈두덩이가 휑해지도록 허기진 아침도 맞아봤고, 사그라지는 초승달같이 헛헛한 밤샘도 가져봤습니다.

▲ 여름들녘에서는 잠자리도 마음을 성형하는 데 거울이 됩니다.
ⓒ 임윤수

▲ 영글어 가는 연밥에 앉은 잠자리에게도 생각이라는 게 있을까가 궁금해집니다.
ⓒ 임윤수
가끔은 당장 내일이라도 죽어야 한다면 뭐라고 쓸까를 생각해봅니다.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난장처럼 벌여 놓습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어떤 기억들은 ‘피식’하며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어떤 기억들은 미간을 찡그려야 할 만큼 괴롭거나 고통스럽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그 아쉬움에 마음이 시려오고, 어떤 기억들은 ‘엉엉’ 소리 내어 통곡하고 싶을 만큼 서러운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각양각색으로 떠오르는 추억들을 하나하나 추슬러가며 시렁에 메주를 달듯 널어봅니다. 그때는 그래서 그랬고, 이때는 이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그럴싸한 변명으로 책꽂이를 정리하듯 울퉁불퉁한 기억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합니다.

밭갈이를 할 때 쟁기 끝에서 훌렁훌렁 뒤집혀 지는 흙살처럼, 살아온 시간들을 온통 뒤집어 놓고는 밭고랑을 고르듯 지나간 시간들을 골라봤습니다. 그래,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한다면 뭐라고 정리하지?

‘한 세상 잘 살다 간다’는 말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어느 고승의 임종게를 흉내 내서가 아니라 정말 잘 살아온듯합니다. 물론 그때그때는 괴롭고 버거웠던 일들도 있었겠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것들이 다 사는 재미며 살맛이었습니다.

▲ 고운빛깔을 띠고 있는 연꽃이야말로 여름들녘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입니다.
ⓒ 임윤수
인생의 공통분모처럼 누구나 다 경험했을 것 같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원주율처럼 끝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기억들도 있습니다. 바랑하나 덜렁 둘러메고 구름처럼 떠다니고, 물처럼 흐르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지나쳐도 좋을 바윗덩이를 만났을 때도 허깨비와 씨름을 하듯 실랑이를 했고, 훌훌 넘어가도 좋을 고갯마루에서조차 나뭇가지에 꺼들려 마음에 상처를 만들었습니다.

옷이나 몸매에만 맵시가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맵시가 있을 터인데 마음의 맵시는 백안시하고 정작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을 외모의 맵시에만 청안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마음성형은 잠시라도 마음의 끈을 놓으면 원위치 되는 요요성형

오래된 건물은 리모델링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외모는 성형을 합니다. 예전에야 돈 많은 사람이나 연예인들이나 하는 게 성형이었지만 요즘은 일반화 된 게 성형입니다. 이 또한 세태이다 보니 성형을 잘 하기로 소문난 유명병원들이 여기저기서 명성을 떨치기도 합니다.

리모델링을 하고 외모를 성형한다는 소문은 왕왕 들렸는데 정작 마음을 성형하였단 말은 듣지를 못했습니다. 이왕 빗길에 나선 것 성형 좀 해 봐야겠습니다. 외모를 성형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뜯어고치는 마음성형을 해보려합니다. 어깨너머로도 배운 적도 없고 경험이 없어 돌팔이도 못되지만 흔들리는 아상을 수술대에 올려 놉니다.

▲ 백련, 색을 갖는 것조차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얗기만 한 백련은 마음을 성형하는데 좋은 수술도구가 됩니다.
ⓒ 임윤수

▲ 부끄럼이 없으니 속살까지 다 드러냈나 봅니다.
ⓒ 임윤수
성형을 하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발길을 옮겨갑니다. 쓱쓱 칼질을 하고, 삭둑삭둑 가위질을 하며 도톰한 눈두덩을 잘라내며 쌍꺼풀 만들어 가는 고통, 쪼글쪼글한 주름살이 반질반질해지도록 보톡스를 주사하려는 심정으로 뒤틀리고 배배 꼬인 심사를 조심스럽게 펼쳐갑니다.

미워하거나 증오했던 마음을 칼끝으로 떠올리고, 가위질 앞에 추악한 과거들을 올려 놉니다. 생살을 째고 뼈를 깎아내는 고통쯤을 연상해 가며 마음의 맵시를 가다듬습니다.

핏방울이 솟고 생채기가 아물어 가는 갈등 끝에 이해와 포용이 돋아납니다. 살점을 도려내듯 고통스럽기만 하던 지난 시간들이 돋아나는 새살처럼 새롭게만 느껴집니다. 착각일지언정 마음의 주름살이 펴졌습니다. 뒤틀리고 불편하기만 했던 마음이 다림질을 하고 풀을 먹여 놓은, 광목으로 된 이불홑잎처럼 바스락 소리가 나도록 빳빳하게 펴졌습니다.

▲ 짝짓기 하는 곤충을 볼 때도 머리로는 생태계를 말하지만 가슴으로는 질펀하고도 뜨겁기만 한 정사를 연상하게 되니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흐름인가 봅니다.
ⓒ 임윤수
헤매듯 걷던 여름들녘이 저만치에서 끝이 납니다. 무심코 디딘 발걸음이 눈에 보이지 않던 웅덩이에 텀벙 빠지며 흙탕물이 튀어 오르고, 튀어 오른 흙탕물에 바짓가랑이가 엉망입니다. 엉망이 된 바짓가랑이를 보는 순간 조금 전까지 빳빳하기만 했던 마음에 흙탕물 같은 불편함이 젖어옵니다.

내심 마음을 성형 했는가 했더니 그건 성형이 아니라 착각이었고, 어설플지라도 그것이 성형이었다면 그건 잠시나마 마음의 끈을 놓으면 언제든지 헝클어질 수 있는 마음의 요요(搖搖)였을 겁니다.

기가 막히게 마음성형을 잘한다는, 그 곳을 한 번만 다녀오면 삭막했던 마음도 비단결처럼 고와진다는 그런 병원은 없을는지요?

태그:#요요, #성형, #마음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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