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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손학규 지지 386' 논쟁의 불이 붙었다. 최근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의 비판을 시작으로 손학규 캠프 대변인이 된 우상호 의원의 반박이 이어졌다. 여기에 다시 민주노동당이 가세했다. 권영길 캠프의 박용진 전 대변인이 비판글을 보내왔다. 우상호·박용진은 각각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대변인 시절, 입장은 다르지만 '친했던'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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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친했다. 함께 당 대변인 노릇을 하던 시절, 국회 브리핑실에서 만날 때면 친한 선후배로 인사를 나눴다. 서로의 아픈 곳 찌르고 나서도 웃을 수 있었다.
대변인들끼리 떡볶이집으로 빈대떡집으로 해물탕집으로 몰려다니며 술잔을 기울일 때에도, 그와 내가 같은 편,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같은 편에 서는 느낌을 줄 정도로 그와 친했다.
당 대변인을 그만두고 대선을 앞둔 대선주자와 각 정치세력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는 요즘, 우상호 의원은 손학규의 대변인이 되었고 박용진은 권영길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배지를 달았느냐 아니냐의 차이와 9살의 나이 차이를 빼고 나면, 학생운동 출신, 총학생회장과 학생운동연합체의 '의장'직 경험, 전국연합 활동, 정당활동에서의 대변인직 수행이라는 경험은 서로 비슷하다.
90학번인 나는, 386은 아니면서 386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386 학생운동의 끝자락에 서있었던 것이다.
1980년 광주, 2007년 이랜드
그러나 그들이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몰려가고, 그 대가로 공천을 받고 의원배지를 달고 있던 시간대에 나와 내 세대들은 92년 백기완·97년 권영길에 이어 민주노동당 창당에 헌신하며 시대의 1㎝ 전진을 일구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들은 비슷했지만 달랐다.
지난 6월 천영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가 대전 대덕구에서 출사표를 던지던 날 대전으로 향하는 KTX 안에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어라, 탈당하셨던데 이제 민주노동당으로 오시는 건가요?"
"왜, 가면 공천줄 거야?"
"주죠, 빈 지역구 많으니까…."
천영세 의원의 사무실 개소식 축하인사를 전해달라면서 그는 천영세 의원을 여전히 "의장"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공동의장이었던 천영세 의원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의 표현이었다. 자기가 모신 열린우리당 의장이 도합 8명이었는데 제일 존경하는 의장님은 뜻밖으로 천영세 의장이라나…. 휴대폰 너머로 그의 맑은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그 '제일 존경하는 의장님'은 지난 달 31일 새벽, 뉴코아 강남점 바닥에서 경찰의 군홧발에 치이면서 이랜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원내 정당 국회 수장으로서의 지위도 다 팽개치고 한 사람의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목이 다 쉬어버렸다.
권영길 의원은 분을 삭이지 못해 육두문자까지 내뱉으며 노무현 정권을 저주했고 문성현 당 대표는 마창노련의 '문전투'로 돌아가 육탄돌격을 서슴지 않았다.
민주와 개혁, 과거 학생운동의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던 소위 386들이 손학규에게서 국민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시대정신'을 찾았다며 "유레카"를 외치고 있었다.
그 시간 민주노동당의 그들은, 의원배지의 편안한 권리도 거부하고 과거 경력의 화려함도 앞세우지 않고, 20~30대 젊은 당원들을 이끌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을 보호하고 앞장서고 있었던 것이다.
범여권 주자들이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지었다고 말할 때, 노무현 정권이 지휘한 경찰폭력은 전두환이 전남도청을 진압하던 것 같은 새벽시간에 여성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진압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힘없는 자들의 당당한 저항'이라는 광주의 시대정신은 단지 과거에 갇힌 기억일 뿐이고 오늘에는 관심 밖으로 내몰려야 하는 하찮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한 때 국민들에게 친근했던 그들의 손학규 선택은 권력 금단 현상이 두려워 '화려한 휴가'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부나방의 마지막 몸부림일 뿐이다. 정치권 386들의 자살일 뿐이다.
2등 이인제 데려오더니 3등 손학규... 다음은?
386세대의 자살은 우리 시대에서 퇴장당하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붕괴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안타깝게도 "이명박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보면서 손학규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는 우상호 의원의 변명은 변명처럼 들린다. 밥 서너 번 같이 먹고 손학규를 선택했다는 그의 결정은 단지 권력을 잃을까 당황해 아노미 상태에 처한 386 세대들의 '혼절한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에서 2등하던 이인제를 데려다가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동교동계의 낡은 셈법보다, 한나라당에서 3등하던 손학규를 데려다가 권력을 유지하려 하는 386세력의 셈법이 더 질낮아 보인다.
그 선택이 실패라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지만, 나이만 젊은 386세력들의 노회한 선택은 더 부끄러운 것이다. 어쩔 건가? 다음엔 4등짜리를 데려올 건가?
행정권력에 이어 압도적인 의회권력까지 장악했던 자유주의 정치세력 노무현 정권은 결국 아무 것도 해낸 것 없이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국민들은 보수수구세력에게서 느꼈던 환멸을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도 느끼고 있다. '대통합'이니 '소통합'이니 하면서 버나잽이 광대노릇까지 선보이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들에게 국민들은 냉소만 지을 뿐이다.
그들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진용을 갖추게 되든,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되뇌이던 '본질'과 사람까지 한나라당에서 데려와야 하는 '실력'은 민중의 뇌리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들의 바닥을 드러낸 셈이다.
엉터리 보호법을 만들어 놓고 "비정규직을 위한 조치"였다고 큰 소리 치는 그들의 도덕적 가치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쿠데타를 자행해 놓고 "구국의 결단"이라고 이야기하는 군부잔당들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모른다. 권력을 농단하는 쿠데타도 나쁘지만 생존권을 유린하는 행위는 결코 그에 못지 않다.
결국 386의 '혼절한 시대정신'은 침몰하고 있는 범여권이라는 배의 갑판 위에서 발구르고 있을 뿐이고 기껏 올라탄 구명보트가 손학규라는 구멍난 쪽배에 불과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라, 어쩔 수 없었다고
손학규가 왜 안되냐고 논쟁해보자고 했다.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다"라는 우상호 의원 특유의 솔직함이 아니어서 내 귀를 의심했다. 손학규는 왜 안 되냐고 되묻는 말은, 자신이 자랑스러워 하고 있을 운동의 기억이 단지 과거에 머물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의 본질은 '가치'의 실현이다. 단지 과거 운동권 경력으로 치면 이명박도 '민주화 운동 세력'이다. 우상호 식으로 말하면, 왜 이명박은 안 되는지 국민들에게 설명해 보라.
혁신은 '방법론'이지 '가치'가 아니다. '혁신'이라는 애매한 말은 '가치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혁신은 물론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혁신은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구와 무엇을 위한' 혁신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우상호와 386의 기준대로라면, 편법증여와 정경유착 뇌물사건 두목인 삼성그룹의 이건희도 '혁신'을 했으니 훌륭한 사람이고, 사람을 파리 목숨 취급하는 이랜드그룹의 박성수 회장도 구멍가게를 대그룹으로 혁신했으니 대통령감이다.
정치의 본질은 또한 '누구 편에 설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손학규가 한나라당에게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대선을 앞두고서야 한나라당의 한계를 통탄하며 뛰쳐나오려면, 자신이 도대체 한나라당의 개혁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말해야 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행했는지 보여주었어야 한다.
도대체 지난 세월 누구 편에 서 있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왜 그 시절 내내 기득권 세력의 권력을 위해 헌신봉사하다가 이제사 우국지사가 된 듯 행동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상호와 386의 선택이 국민들에게 이해받으려면 그리고 자신들의 과거를 배반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설득력 있는 이유와 일관된 철학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추락하는 자유주의정치세력의 구조물이 되어버린 정치권 386들이 관심있는 것은 권력의 단맛을 유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뿐이다.
내가 그들의 선택을 혼돈에 갇힌 자살행위로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상호는 울었다, 민주노동당도 울었다
우상호 의원은 의원을 하면서 네 번을 울었다고 했다.
김한길 세력이 탈당하던 날 그가 브리핑을 하면서 목메어 했다는 소식에 나는 그를 위로했다. 그는 자고 나면 탈당하는 열린우리당의 대변인 노릇을 한탄해 했다. 이젠 자신도 탈당해서 손학규를 선택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최근에 많이 울었다. 한미FTA 타결소식에 분신한 가난한 노동자 당원을 보내면서 울었고, 이랜드 아줌마 노동자들이 울부짖을 때 같이 울었다.
미련해 보이고 왠지 구닥다리 같아 보이지만. 민주노동당의 선택은 변하지 않는다. YH사건·구로동맹파업·광주항쟁,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항전. 그 모든 것은 오늘날 등장인물과 사건 이름만 달리한 채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민중의 눈물은 반복되고 있다.
손학규는 과연 이 반복되는 슬픔을 끊어낼 사람인가? 그런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실력도 자격도 없다. 그가 한나라당에 몸담아왔던 지난 시간이 그것을 증명하고, 한나라당을 욕하는 것 이외에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지난 몇 달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386들의 손학규 지지선언은 자신들이 돌보지 않아 말라 비틀어진 알량한 시대정신의 종언이고 정치적 자살선언이자,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몰락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부족하지만 솔직하고 끈질기지만 조급하지 않은 진보정치세력이 무럭무럭 자라, 그들이 몰락하고 퇴장당한 자리에서 굳건한 반수구세력 연합전선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성장이 한나라당의 패배와 무능한 범여권의 퇴장을 재촉해 나갈 것이고 광주에서 시작한 시대정신을 오늘에 완성해 나갈 것을 믿는다.
결국 "손학규는 안 되고, 386세력은 혼절해 버렸으며, 그들의 정치세력은 역사에서 퇴장당하고 있다"는 것이 우상호 의원의 논쟁 요청에 대한 나의 답이다. 권영길과 수백번 밥 먹고 토론해 봤으며,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성장시킨 민주노동당 내 또 다른 386들과 젊은 힘들이 오늘을 선택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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