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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자지라> 방송이 방영한 한국 인질 모습.
<알 자지라> 방송이 방영한 한국 인질 모습.
아프간 한국인 피랍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아프간에 특사를 파견하고 직접 탈레반과 접촉을 시도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테러 단체와의 협상 불가론을 재천명하며 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아프간 피랍사태를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의 관심도 줄어들며 납치 초기와는 다르게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랍자들과 그 가족들은 피랍 4주째를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입니다.

피랍자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나?

지난달 19일 피랍된 인질들은 탈레반이 정해놓은 장소 몇 군데에서 지금까지 장기간 억류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유준현 성대의대 삼성 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고강도의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생활여건이나 식사, 물 등의 환경이 열악한 상황으로 추측할 때 피랍자의 신체면역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평소 가벼운 질병이더라도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일례로 감기만 걸려도 면역력이 좋은 사람들은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지만, 면역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은 감기가 오래갈 뿐만 아니라 심하면 폐렴 등의 합병증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유 교수는 "극도의 긴장상태에서는 소화불량, 위장장애 등이 있을 수 있으며, 척추질환이 있는 사람은 불편한 자세가 오래되면 더욱 악화되기 쉽다"며 "인질 상태로 오래 지내게 되면 음식 섭취가 더욱 힘들어지고 판단력이나 움직임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피랍자 가운데 김지나(32)씨가 척추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소염진통제를 복용하지 못한다면 그 통증은 다른 피랍자들보다 훨씬 심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고 알려진 유경식(55)씨는 현재 갑상선 약을 투여 받지 못해 다른 인질들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성운 경희의대 내분비내과 교수는 "장기간 약을 투여받지 못하면 근육 경직이나 심장이 비대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심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약을 전달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가 9일 <연합뉴스>와의 간접 통화를 통해 인질의 건강상태에 대해 "약을 처방해 날마다 좋아지고 있으며 생명이 위험에 처한 상태도 아니다"고 전해 약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절한 약물이 투여되고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 고통

아프간 피랍자 가족들이 조속한 인질석방을 위해 미국정부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1일 오후 광화문 미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을 나선 피랍자 가족들이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프간 피랍자 가족들이 조속한 인질석방을 위해 미국정부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1일 오후 광화문 미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을 나선 피랍자 가족들이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하지만 이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 괴로움'일 것입니다. 특히 인질이 되면 극도의 불안, 초조, 긴장, 공포상태가 계속 지속되므로 상당히 위축되고, 우울증이 생기며, 인질생활이 끝난다 하더라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생길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 장소에 분산되어 인질생활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인질들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면 문제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유범희 성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남은 인질들의 공포심이나 정신적 압박이 크게 증대되다가 상황이 반복되며 장기화될수록 공포심과 스트레스 노출에 대해 적응해가면서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후에 나타날 인질들의 우울증과 의욕상실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이런 정신적 스트레스가 지속된다면 더는 견디지 못하고 신체적으로도 극도의 피로감과 쇠약감에 시달리게 되고, 신체적 질환이 쉽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인질 상태에서 현실적 대처방안을 찾을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국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돌아가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유범희 정신과 교수는 "희망을 버리는 순간 정신적 공황뿐만 아니라 신체적 상태도 극도로 나빠질 수 있다"며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피랍자 가족들의 마음도 피랍자들과 같이 타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샘물교회 장애인 사역담당을 맡고 있으며 현재 납치된 인질 가족들의 카운셀러 역할을 맡고 있는 이헌주 목사는 지난 8일 전화통화에서 "가족들의 마음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면서 "충격으로 실신한 분들은 현장에 나오지 못하고 계신다"고 안타까운 가족들의 현재 상태를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범희 정신과 교수는 "가족들 역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준하는 증상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크게 염려했습니다. 특히 피랍자들의 석방소식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최악의 상황을 연상하게 되고, 우울감과 함께 인질들과 유사하게 무기력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인질들과 가족들 모두가 거의 비슷한 정신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됩니다. 유 교수는 가족들에게 "지나친 긴장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기 때문에 차분하고도 낙관적으로 상황을 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스톡홀름 증후군'과 '리마 증후군'

참여연대, 평화여성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아프간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 가로수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여성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아프간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 가로수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피랍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인질들과 탈레반의 심리 상태가 변할 수도 있습니다.

유범희 정신과 교수는 "피랍자가 장기 억류 시 테러범과 인질을 동일시하여 초기의 적대적 감정이 우호적 감정으로 변하는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의 양상을 보일 수 있다"며 "이는 공포심,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다른 방법의 방어기전이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유 교수는 "인질범이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하에 오히려 인질범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수도 있다"고 조언합니다.

또다른 심리 변화는 탈레반에서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즉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렇게 인질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을 '리마 증후군(Lima Syndrome)'이라고 합니다.

이런 스톡홀름 증후군과 리마 증후군에 의해 장기 억류 인질들은 그만큼 살해될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7월 19일(이하 한국시각) 인질들이 납치된 이후 6일 만에 배형규 목사가 살해되었고, 이어 5일 후인 지난 31일 심성민씨가 살해된 이후 지금까지 추가 살해 소식이 없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매일 전해지는 피랍자들과 그 가족들의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론 여론은 예전에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된 고 김선일씨 때와는 다르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붓다의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일단 우리는 지금 총력을 다해 독화살을 맞은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의 관심은 이보다 먼저 독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이고 독화살을 쏜 원인의 제공자가 누구이며 독화살의 재료는 무엇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는 독화살을 맞은 사람들을 먼저 치료한 이후에 한다 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피랍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독화살을 맞고 신음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그 어느 때 보다 온 국민의 따뜻한 관심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씨가 아프간 탈레반에 의해 추가 살해된 지난달 31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아프간사태 평화해결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두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씨가 아프간 탈레반에 의해 추가 살해된 지난달 31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아프간사태 평화해결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두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덧붙이는 글 | [도움말을 주신 분들] 유준현 성대의대 삼성 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김성운 경희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유범희 성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엄두영 기자는 현재 경북 의성군의 작은 보건지소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진료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입니다. 많은 독자들과 '뉴스 속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피랍자#건강#의학#피랍자 가족#스톡홀름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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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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