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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둘러보니 고추대가 반은 쓰러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잘은 몰라도 한 500대는 넘어져 있는 것 같다. 어쩐지 고추농사가 풍년인가 했다. 키가 몰라보게 쑥쑥 자라 사람 키만 해지고 고추대가 미끈하게 잘도 빠지는가 싶었다. 고추를 손으로 만져보면 뿌듯하니 풍만 감을 주며 며칠 전부터 빨갛게 축제마당을 준비하더니 이 모양이다. 속이 부글거려 하늘을 쳐다본다. 또 한바탕 번개가 번쩍 천둥이 꽝꽝거린다. 야속한 하느님.
이건 또 무언가. 고구마 옥수수 밭에 들어서자 기절할 뻔했다. 이 난리 통에 귀한 손님이 다녀갔나 보다. 산돼지들이 텃밭에 몰려와 파티를 열고 간 것이다.
고구마는 아직 여물지 않아 통알 가지도 안 했는데 들 쑤셔 놓고, 옥수수는 익은 것만 골라 홀라당 벗겨 먹어치웠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해도 너무 하다 싶게 분탕질을 해놓았다. 국지성 게릴라는 먼 나라 얘긴 줄만 알았더니만, 산골 텃밭까지 게릴라 극성부려 쑥밭을 만들어놓다니…, 허참.
고구마 밭도 정리하고 고추도 일으켜 세워야하는 데 또 비가 쏟아지고 있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계속하니 온 몸이 끈적거리고 짜증스럽다. 물 구경이나 가자.
조금 전부터 북한강 수위조절을 하려고 춘천댐을 방류한다는 소식이다. 천둥 번쩍이고 장대비가 계속되었으나 방류장면을 못 보면 서운할 것 같아 댐을 향해 차를 몰았다.
물이 불어 댐이 차오르자 그 동안 사람들이 버려 논 생활 쓰레기들이 댐 위에 가득하다. 이 많은 쓰레기들이 어디에 숨어있다 모여 들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수문을 열자 삶의 찌꺼기들이 순식간에 쭉쭉 빨려나간다. 아, 시원한 대청소.
수문 10개가 열렸다. 보기 드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우르릉 우르릉, 콸콸, 흙탕물들이 고꾸라지고 자빠지고 넌출지고 폭포를 이루며 시원스레 쏟아져 내린다. ‘콸콸 콰르르’ 하얀 포말이 부서져 흐트러지는 가 싶더니 이내 뽀얀 안개가 꿈처럼 돌아 나간다.
콸콸 한꺼번에 쏟아지는 폭포, 그리고 부서지는 포말, 그냥 그대로 하얀 비단을 널어놓은 듯, 주렴을 걸어 놓은 듯, 폭죽을 터트리듯, 볼수록 가슴이 시원해온다.
댐 물 구경을 하고 돌아오니 언제인 듯싶게 장대비가 멈추고 ‘쨍’하고 해가 배시시 웃고 있다. 폭우 속에서도 정원엔 상사화 피어나 임을 찾아 먼 길을 떠나가고 있다.
텃밭엔 멧돼지가 분탕질을 쳐놓았어도 토란잎엔 하얀 빗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후드득거리고, 고추잠자리 내려와 양 날개를 비비적거리며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호우경보 속에 많은 비가 퍼붓고 있다. 그 때마다 고추 대와 참깨 대궁이 또 넘어지기 시작한다. 어쩔꼬.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장대비 앞에 약한 마음을 추스르며 먹을 만큼만 남겨달라고 두 손을 모을 뿐.
폭우 속에서도 참외빛깔이 더욱 노랗게 익어가는 걸 보면 가을도 멀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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