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내가 갖는 첫 번째 느낌은 학교가 학부모들과 가깝게 지내려 한다는 것이다. 학기 도중에 아이의 수업 과목을 변경해야 할 이유가 생겼는데,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부모의 동의를 구했다. 무엇보다 매달 각기 다른 주제로 열리는 전체 학부모 미팅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매달 열리는 그 모임을 PTSA(Parent-Teacher-Student-Association)미팅이라고 부르는 데, 우리의 경우 학부모회라고 할까, 여기서 선출된 운영위원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한다. 우리의 학교운영위원회처럼 말이다. 물론 부모들은 이 모임뿐 아니라 학교 내의 여러 위원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미팅은 거의 매달 있는 데 주제도 다양하다. 아이들의 건강문제, 음주문제, 마약문제, 대학진학과 관련한 문제, 학교와 공동체 봉사에 요구되는 것 등에 대해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토론을 하면서 학교의 운영과 관련해 교장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또 매번 이런 모임과 행사에서 기부금을 받는다. 주민들의 기부금이 학교 재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학교일수록 이런 기부금이 많다.
나는 딱 1번 참석했는데, 내가 참석한 달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수업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었다. Back to School Night라는 행사였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 학교 스케쥴을 축약된 형태로 3시간이 넘도록 아이의 수업 순서대로 교실을 찾아가며 담당 교사들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 행사였다.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누군지도 알게 되고, 짧은 시간이지만 교사가 아이에 대해 갖는 느낌을 이야기 들을 수도 있으며, 아이가 지금 무엇을 교재로 어떤 내용을 배우는 지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만큼 부모와 학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나누게 되는 셈이다.
좀 의례적이 되었구나 싶은 느낌은 들었지만 아이에게 학교에서 사소한 일이라도 생기면 반드시 부모에게 전화를 해준다는 점도 부모가 아이와 학교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게 한다. 아이가 체육시간에 공에 맞아서 조금 다친 적이 있는 데, 학교 간호사가 약을 주면서 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그 약을 주어도 좋은 것인지 묻는다든지 하는 것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재능을 중시하는 위한 학교와 학부모
두 번의 설문조사도 경험했다. 하나는 교복착용 여부를 묻는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의 음주와 관련한 것이었다. 논란이 되거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렇게 설문조사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교의 방침을 결정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또 하나의 느낌은 아이들의 과외활동을 위해 학교와 자치단체가 성의를 다한다는 것이다. 지난 해 고등학교 풋볼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좋은 잔디구장, 전문심판진, 경찰의 장내정리, 주민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어우러져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흥겨운 놀이마당이 생긴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자기 학교를 응원하며 주말 저녁을 보낸다. 학교는 학교대로 학교의 밴드와 치어리더를 응원단으로 보낸다. 프로스포츠 시즌 따라 각종 경기가 리그제로 홈경기와 원정경기가 열린다. 어떤 경기든 학교와 자치단체는 아이들이 운동과 응원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띈다.
스포츠 경기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각종 콘서트, 탤런트 쇼, 전시회 등이 수시로 열린다. 대부분이 경연대회이기에 아이들은 친구들의 재주에 즐거워하며 응원을 보낸다. 스포츠에 재주가 있는 아이들 뿐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연기 등에 재주가 있는 아이들이 자기 재능을 펼칠 기회를 늘 마련해 주는 것이다.
각 학교들, 성적 올리는 데에도 치열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그 아이대로, 운동을 잘하는 아이는 또 그 아이대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를 위해 학교와 부모, 자치단체가 힘을 쏟아 준다는 것 때문에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지는 않는 셈이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러 차례 파티도 열렸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때 열린 학교 마칭밴드 멤버들의 댄스파티 때는 비가 많이 왔다. 그런데 아이가 새벽녘에야 들어오는 바람에 마침 집을 찾은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는 아이를 기다리는 나하고 밤새 소줏잔을 기울여야 했다. 이런 파티는 큰 체육관을 빌려서 하기도 하고 가까운 호텔을 빌려서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학교는 아이들의 성적에 대해 무관심할까? 그렇지 않다. 미국의 경우에도 좋은 학군의 학교에 다니게 하려는 부모들의 노력은 마찬가지다. 각종 언론이나 기관이 매년 고등학교의 랭킹을 다양한 변수를 주어서 발표하고 있어서 각 학교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아무래도 교육투자가 많은 지역의 학교들이 좋은 학군이고, 그러려면 세금이 많이 들어가니까 역시 부자동네의 학교가 좋아지게 된다. 따라서 학군이 좋은 곳은 집값도 비싸다. 매년 전국적으로 아이들의 성적 향상을 확인하는 시험도 있다.
우리 아이의 시험결과도 받아 보았는데, 과목별로 아이가 어느 과목에 강점이 있으며, 아이의 순위가 어디쯤인지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자치단체마다 성적이 향상되는 학교에는 예산도 더 배정해주기도 하고, 성적의 하락 폭이 큰 학교는 예산을 깍기도 한다. 학교 내에서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저학년이 고학년과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코스가 만들어져 있고, 대학 학점을 미리 딸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는 등 경쟁시스템이 존재한다.
연락이 없는 우리나라 학교, '무소식이 희소식'?
그럼 미국의 교육환경이 그러면 다 좋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의 교육문제는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교육시간, 낮은 졸업율과 문자해독율, 마약과 섹스, 학교에서의 총기사고 등의 문제는 미국이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이다. 다만 아이가 1년간 미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의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기에 나름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느끼는 것을 적어 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가 한국에서 중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연락 온 것은 전화든, 우편물이든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던 것 같다. 오히려 다니던 학원에서 연락을 받은 것이 더 많았던 듯싶다. 물론 학원이야 이윤이 걸린 문제니까 어떤 점에서는 더 악착같은 것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가 전부인 시간을 보내는 인생으로 밀어 넣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몇몇의 대안학교를 빼고는 특목고든 일반학교든, 어느 학교를 가든 비슷한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하고 대학에 가기 전까지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한국 공교육의 현실을 바꾸지 않고는 문제가 적은 것이 아닌 미국의 교육환경을 부러워하는 현상도 바꿀 수 없을 것이고 아이가 ‘공부’가 아닌 다른 것으로도 자신의 삶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확신을 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 공교육의 질과 아이들을 위한 교육환경의 개혁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