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이란 책이름이 좋아 그냥 샀다. 처음에는 몇 권의 책을 서평한 줄 알고 구입했다. 철학 아카데미를 통하여 조금은 낯익은 사람이기도 했다. '이름 있는' 이들이 '이름 있는' 책들을 소개하는 서평집을 우리는 종종 본다. 그들이 모아 놓은 서평집은 결국 '이름 없는' 서평집이 되고 말지만. <탐독>은 달랐다. 이유는 서평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정우는 어릴 때에는 책과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사랑하고 책과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라고 했다. 아버지의 서재였다. 요즘 거실을 서재로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책과 동무하는 일이 중요함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탐독>의 좋은 점은 그가 과거를 반추하면서 읽었던 책 내용이 지금도 자신의 지적작업에 오롯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매우 놀라웠다. 일반적인 책읽기는 덮는 순간 뇌리에서 사라져 버린다. 특히 이 시대의 책읽기가 논술과 성적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그가 그저 읽은 책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한 책을 읽고, 사고의 빅뱅을 경험한 것만 그의 뇌리에 남아있지 않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넓혀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고 있듯이 ''텍스트''에 충실했다. 텍스트를 읽으려면 엄청난 지적 고뇌를 해야 한다. 남들이 다 해 놓은 해설서를 가지고 무슨 지적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개론서만 붙들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되뇌는 오늘의 지식인들을 향한 일갈이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배따라기>,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목로주점> 따위를 통하여 그는 '생의 애환'을 만난다.
"언어란 참 묘한 것이다. 애환과 고통을 언어적으로 반추함으로써 이제 이것들은 일종의 대상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음미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쾌락까지 누리게 되니 말이다."(본문 37쪽 인용)
책 읽기는 성적이 아니다. 공부가 아니다. 이정우가 어쩌면 이 시대가 아니라 그 때 태어났기 때문에 문학에서 삶의 애환과 고통을 발견했지 오늘 이 때 태어났다면 논술을 향한 읽기에 바빠, 그 때 그 감흥과 느낌, 놀라운 경험을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삶의 애환에만 머문다면 사람은 우울하다. 이 우울한 사람에게 내일을 말해줄 수 없다. 그는 대하소설을 만난다. <삼국지>, <수호지>, <임꺽정>. 이들은 웅장하다. 아직도 젊음의 때에 읽어야 할 대하소설이다. 젊음의 때는 내일이 있다. 내일은 그냥 오지 않는다. 치열한 삶을 통하여 주어진다. 이 시대 어른이 다 해놓은 밥상만을 받기 원하는 젊은이들이 한 번은 읽어야 할 책들이다.
문학, 과학, 철학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그의 지적 사유의 길들을 읽어가면서 한 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을 하였고, 텍스트가 아닌 해설과 개론서의 목을 매고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자랑하던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이 시대 과연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원전, 원어를 통하여 고민한 열매를 가지고 가르치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원전, 원어를 통하여 구로하여 열매를 낳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적 사유는 텍스트, 오로지 텍스트와 더불어 논의할 때에만 정식으로 철학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 무수한 개론적 저술들, 철학과 관계도 없으면서 '철학'이라는 말을 남발한 담론들 등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철학은 오로지 원전 텍스트, 그것도 원어 텍스트를 가지고서 이야기할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이다. 헬라어로 <티마이오스>를 읽고, 한문으로 <주자어류>를 읽고, 독일어로 <정신분석학>을, 프랑스어로 <차이와 반복>을 읽을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본문인용 286쪽)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학자, 전문가라 말한다. 얄팍한 지식껍데기로 먹고사는 우리 인생이 한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 책'을 만났을 때, '한 저자'를 만났을 때 우리는 지적 작업을 해야 한다. 껍데기는 걷어내고, 깊은 사유를 통하여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이 벗겨내야 한다. 이 능력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랜 시간 우리가 원전과 고전, 위대한 저술들을 통하여 사유의 깊이가 깊어진 후에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사유의 길을 우리는 가려는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나는 이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한 책을 읽었다고 쉽게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탐독>을 읽고나서 깨달은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탐독 : 유목적 사유의 탄생> 이정우 저 | 아고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