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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의 마지막 희망의 순례' 행사에서 우토로 동포들이 한국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황순례 할머니가 낭독하고 있다.
'우토로의 마지막 희망의 순례' 행사에서 우토로 동포들이 한국국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황순례 할머니가 낭독하고 있다. ⓒ 우토로 대책위원회

올해로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지 62년째가 되었으나 강제징집에 끌려간 후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본 교토인근의 '우토로'에 터전을 잡았던 재일 한국인들은 여전히 식민지배의 아픔 속에서 광복을 맞지 못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정부의 철저한 외면 속에 약 70세대, 230여명이 자신들의 터전을 잃고 오는 9월, 아무런 대책 없이 쫓겨나갈 형편에 처해있다.

우토로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정부에 의해 교토비행장 건설공사에 강제적으로 동원된 조선인노동자들이 기거하던 합숙소(한바)가 있었던 곳으로 약 1800여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곳이다. 광복이 되자 상당수는 귀국했으나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했던 일부 동포들과 후쿠호카, 큐슈, 남양군도 등으로 강제 징집되었던 조선인들까지 모여 살게 되면서 형성된 마을이 오늘날의 우토로이다.

그러나 ㈜닛산자동차와 합병한 ㈜일국공업의 전신인 ㈜일본항공공업이 강제징집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없이 교포들을 방치했고 1987년에 ㈜닛산자동차는 우토로에 대한 토지소유권을 히라야마라는 개인에게 넘겨줬다. 히라야마는 이 토지를 다시 유한회사인 서일본 식산에 넘겼고 서일본 식산은 자신들의 토지를 무단점거하고 있다며 1988년 12월 동포들에게 퇴거를 통고하고 건물해체에 나섰으나 동포들의 강력한 반발에 실패로 돌아갔다.

깨진 유리창너머로 처연하게 서있는 나무의 모습에서 우토로의 현실을 느낀다.
깨진 유리창너머로 처연하게 서있는 나무의 모습에서 우토로의 현실을 느낀다. ⓒ <우토로 어머니의 노래> 임재현

삭아내린 양철지붕만큼이나 세월이 지났건만 우토로 조선어머니들의 광복은 언제쯤일런지.
삭아내린 양철지붕만큼이나 세월이 지났건만 우토로 조선어머니들의 광복은 언제쯤일런지. ⓒ <우토로 어머니의 노래> 임재현

서일본 식산은 1989년 2월 교토지방법원에 강제퇴거를 명하는 소송을 제기해 그로부터 14년간의 지루한 법정다툼이 벌어졌다. 이 기간 동안 동포들은 미국, 독일 등 22개국과 함께 일본 내 일부양심세력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의 도움을 받아 유엔에 제소해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의 강제퇴거 금지권고안을 얻어냈다.

그러나 1999년 오사카 고등재판소가 "재판에 의한 강제퇴거는 유엔이 금지하고 있지 않다"며 강제퇴거를 정당화 시켰으며 2000년 6월 27일 이를 최종 확정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정부는 우토로의 동포들이 60년 동안 무단으로 토지를 점유하고 있었을 뿐 소유권이 없으므로 강제퇴거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일본의 무지 또는 도덕성결핍에 기인한 주장이다. 동포들은 "자신들이 원초적으로 제공한 '강제징용'과 '보상외면'은 망각한 채 강제퇴거를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일본정부가 우토로의 동포들을 자연스럽게 소개하기 위해 기반시설 정비를 해주지 않아 40년 동안이나 상수시설도 없이 빗물을 받아 사용했었다는 점이다. 유엔이 나서고 일본 내 인권단체가 우토로 문제를 사회이슈화 하자 1988년 3월에 와서야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강제철거 반대' '최후까지 이곳을 지키겠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귀기울이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강제철거 반대' '최후까지 이곳을 지키겠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귀기울이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 <우토로 어머니의 노래> 임재현

'우토로문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현지방문
'우토로문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현지방문 ⓒ <우토로 어머니의 노래> 임재현

한국과 일본정부가 합작한 비극

한국정부의 무관심도 일본정부의 그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나을 것이 없었다. 주일한국대사관의 관계자와 외교통상부의 관리가 우토로를 방문한 것이 2004년 11월 17일과 22일이었으며 '우토로 문제를 생각하는 국회의원모임'의 우토로 방문도 2005년 4월에서야 이뤄졌다.

한국의 국회가 현해탄너머로 눈길을 보내는데 자그만치 6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더구나 일본 교토부 구지시가 최종시한으로 정한 토지매매협상기한이 다가오는 8월 31로 잡혀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한국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일본정부는 "우토로 주민들이 철거를 약속한다면 징용1세대에 한해 대체주거시설(양로원, 수용소 등)을 제공하는 것을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미 2세대와 3세대가 함께 거주하고 있지만 일본정부는 알바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965년에 체결된 한·일 협정에 의해 국가 간 배상문제는 종결되었다는 일본정부의 입장과 자국민보호에 소홀한 한국정부가 합작해낸 비극이 오늘날의 '우토로사태'인 것이다.

강제퇴거가 확정된 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우토로의 동포들은 지금이라도 한국정부가 적극 나서 자신들의 참담한 입장을 개선해주길 바라고 있으나 한국정부의 움직임은 별반 감지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본정부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며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는 외교통상부의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지구촌동포연대(KIN) 이은영 간사는 "우토로 문제가 유엔으로 비화될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으면서도 지금에 와서 금전적지원은 힘들다며 사실상 우토로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은영 간사는 "총 토지매입비 14억엔 가운데 우토로 주민들과 모금액을 합쳐 3억엔 정도를 확보했으나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지원 없이는 우토로 문제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우토로의 동포들은 최종 토지매매협상기한인 8월 31일을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을 애타게 바라고 있다.

2007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광복을 기념하는 날이 다가왔어도 우토로의 재일동포들에게는 일본이 패망한지 6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식민 치하'가 계속되고 있다.

해맑은 제일교포 3세들의 미래는 그들이 담고있는 미소와 달리 암울하게만 보인다.
해맑은 제일교포 3세들의 미래는 그들이 담고있는 미소와 달리 암울하게만 보인다. ⓒ <우토로 어머니의 노래> 임재현

#우토로#한민족동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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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인 달신문에서 약 4년, 전국아파트신문에서 약 2년의 기자생활을 마쳤으며 2007면 10월부터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에 소재하는 외국인근로자쉼터에서 재직중에 있슴. 인도네시아 근로자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보호와 사고수습 등의 업무를 하고 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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