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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11월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윤이상 10주기 추모 음악제'에서 안숙선씨가 고인을 추모하며 소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올해는 인간문화재 안숙선 명창이 소리 인생 50년을 맞이한 해다. 이를 기념한 공연이 열리고, 각종 매체가 안 명창을 인터뷰했다.

그런데 나는 이 잔치의 시기에 난데없이 안숙선 명창과 학력 문제로 만났다. 갑자기 안숙선 명창의 '남원여고 졸업 여부'를 뒤지게 된 것.

발단은 내 블로그에 올린 글 한 편이었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학벌 위조를 보면서 안숙선 명창과 김덕수 명인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됐고, 글을 쓰기 위해 포털사이트 인적란을 찾았다.

포털에는 하나같이 안숙선 명창은 '남원여고 졸업'이라고 나와 있었다. 올해 소리 인생 50년을 맞아 안 명창을 인터뷰한 각종 언론에도 '남원여고 졸업'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내 블로그에 9일 새벽 그 부분을 언급한 내용을 올렸더니 이날 익명인에게서 "안숙선 명창은 남원여고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면 무학일 수도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서, 당장 안숙선 명창이 교수로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무학은 사실이었다. 안 명창은 초등학교 5학년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둔 것이었다.

한번의 오보가 낳은 '남원여고 졸업'

교무과 담당자는 "무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임용했고 서류에도 그렇게 써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덧붙였다. 담당자는 "석·박사 졸업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을 속이겠냐"면서 "요즘 워낙 학력 위조가 사회 관심사가 되니까 이런 것도 이야기가 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남원여고 측에서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교무과 담당자는 "졸업생 중에 안숙선 명창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그 담당자는 "남원여고는 인문계 고교라서 예능계 인력을 길러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결국 본인 확인이 필요해 안 명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명창은 "지금껏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걸 알게 됐다, 어쩌면 좋겠느냐"고 오히려 조언을 구했다. 신정아 전 광주비엔날레 감독 내정자,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 건축 디자이너 이창하씨의 가짜 학력이 들통난 것을 의식한 듯 "내가 부덕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함께 활동했던 조상현 명창이 1998년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심사 관련 금전을 수뢰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혹시 자신조차 전통음악계에 누가 되지 않을지 조심스러워했다.

안숙선 명창은 "내가 남원여고 나왔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은데, 조금이라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 학력을 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 음악하는 사람들 중엔 평생 실기만 한 사람들이 많아 굳이 학력을 밝히지 않으려는 문화가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관계자도 "오랫동안 전통음악을 해온 분들은 거의 학력을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 최근까지 각 포털사이트 학력란에 안 명창의 학력은 '남원여고 졸업'으로 돼 있었다.
ⓒ 포털사이트화면캡처
그렇다면 왜 갑자기 안숙선 명창 학력란에 '남원여고'라는 이름이 나왔을까? 지난 기사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은 1996년 한 매체에 '남원여중'이란 대목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안숙선 명창의 학교 졸업 대목이 전혀 없다가 2005년 들어 처음 '남원여고 졸업'이란 내용이 나왔다. 물론 오보였다.

안 명창은 자신은 남원여고도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남원여중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번 오보가 나오자 연이어 잘못된 정보가 확대·재생산 됐다. 거짓도 반복되다보면 사실처럼 보이는 법이다.

안 명창은 초등학교 5학년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둔 뒤 이후엔 남원국악원엘 다녔다. 몇몇 매체는 '남원국악원' 대신 '여학교 졸업'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남원여중'과 '여학교'가 묘하게 섞인 게 아닐까?

"떠벌일 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 다 알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홈페이지. 안숙선 교수의 학력란은 공란으로 돼 있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글쎄요. 내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는데, 그게 뭐 떠벌일 일인가요. 주변 사람은 다 알았어요. 내가 무학이라는 걸. 기자님들도 다 아셨기 때문에, 그 동안 학력 이야기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어요. 그런데 최근 '남원여고 나왔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거예요.

그 양반들은 좋은 뜻에서 인터뷰까지 한 건데 그 한 줄 나왔다고 따져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저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데 한 번 그렇게 나가니까 다른 데서 다 그렇게 받아쓰데요."


아무튼 학력 문제가 연일 터지던 요즘 안 명창은 이 일 때문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비록 자신이 만든 '오보'는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 인터넷을 하지 않는 그는 최근 제자들의 도움으로 포털 사이트 학력란을 모두 고쳤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인터뷰한 매체들에 학력 부분 정정을 부탁하고 있다.

태그:#안숙선, #학력, #고졸, #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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