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참 안쓰럽게 됐다. <조선일보>는 오늘(16일)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에 의혹을 '단독'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엊그제 "조·중·동이 이명박 후보에 관한 의혹 검증을 외면해 결과적으로 이명박 후보 편에 서게 됐다"는 '미디어워치'를 썼던 필자로서는 더욱 주목되는 기사였다. 마침내 <조선일보>도 일단 한 건 했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오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오늘 낮 12시 25분 인터넷사이트인 <조선닷컴> 머리에 '사과문'을 올렸다. 오늘 <조선일보> 1면 기사 '도곡동 땅 판 돈 담보로 수십억 대출/이명박 후보 관련 회사에 투자됐다'에서 "'이 후보의 형 이상은씨가 보험회사에 예금해 둔 100여억원을 담보로 수억~수십억 원씩을 대출받아 이 후보 관련회사에 투자했다'고 보도했으나 이 내용은 잘못된 보도이기에 바로 잡는다"며 이 후보와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잘못된 보도를 바로 잡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이번 '정정'과 '사과'는 매우 이례적이다. 신문의 경우 보통은 다음 날자 신문에서 잘못을 바로 잡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신속하게 '정정'에 나섰다.
<조선>이 오보 내게 된 두 가지 이유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기사가 잘못됐다는 것이 너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보라도 하더라도 기자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기사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당사자가 기사 내용이 아무리 잘못됐다고 주장하더라도 기자와 언론사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조선닷컴>에 오보를 시인하고 사과까지 한 것은 기사 내용을 전혀 방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는 이명박 후보 측의 항의와 반발의 강도가 아주 컸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선일보> 오늘 기사는 검찰 중간 수사 발표로 도곡동 땅 차명 의혹 논란에 휩싸여 있는 이명박 후보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상은씨를 대신해 도곡동 땅 매각대금을 관리해온 이영배씨가 도곡동 땅 매각대금을 "금리가 낮은 보험상품에 장기로 묶어두면서 이 원금을 담보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씩을 대출받아 이 후보와 관련이 있는 회사에 대한 투자금 등으로 사용한 단서를 확인하고 수사해왔다"고 보도했다. 도곡동 땅 차명 의혹을 뒷받침하는 '결정타'가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마침 오늘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의 마지막 TV토론이 잡혀 있다. 며칠 남지 않은 경선 막판 국면에서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도 있는 보도였다. 무엇보다 <조선일보>의 보도여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파장이 더 클 수 있었다.
<조선>의 씻기 힘든 치명적 '굴욕'
그래서 의문이다. <조선일보>가 왜 이런 대형 오보를 냈는지. 기사 내용을 보면 사실 <조선일보> 기자들이 특별하게 공을 들인 흔적은 없다. 물론 전혀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검찰 관계자의 전언 가운데 다른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이 하나 더 있었다. "이영배씨가 낮은 금리의 보험상품에 투자한 도곡동 땅 매각자금을 담보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씩 대출 받아 '이 후보와 관련이 있는 회사에 대한 투자금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검찰 관계자로부터 '확인' 받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기사다. 적어도 사실 관계 확인에선 꼼꼼하게 챙긴다는 평을 듣고 있는 <조선일보>다. 또 기사의 파장 등을 고려했을 때 기사가 나올 때까지 몇 차례 걸쳐 내부확인 과정을 밟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 자 신문을 찍기도 전에 결국 '오보'임을 자인해야 했다.
처음 이 기사를 봤을 때 <조선일보>가 그래도 체면치레는 하는구나 싶었다. 검찰 '전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 소유 의혹에 대해 결정적으로 '한 건' 하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나라당 경선 후보들에 대한 '검증 노력'을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던 조·중·동이었다. 달리 '독자적인 취재'를 통해 의혹 검증에 나서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검찰 관계자의 말을 빌려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 정도가 <조선일보>로서는 '최선'이자 그 '한계'였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체면치레는커녕 '결정적인 패착'을 두고 말았다.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는 '의혹 검증'을 외면해 결과적으로는 이명박 편을 든 꼴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막판 '대형 오보'로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체면은 체면대로 구기고, 주도권은 주도권대로 잃게 생겼다. 씻기 힘든 치명적 '굴욕'이다.
시험대에 서게 된 조·중·동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동아일보>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 8월 14일자 여론조사 보도가 문제가 됐다. 기사에서 <조선일보>의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당원 지지도 조사 결과를 인용 보도하면서 '6.4% 포인트'인 격차를 '16.4% 포인트'라고 잘못 보도한 것을 문제 삼았다.
<동아일보>는 15일 이를 바로잡고, 사과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 쪽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순한 계산 착오'일 수 있었지만, 박근혜 후보 쪽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의 이정현 대변인은 "지금까지 동아일보가 해 온 보도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져왔는데 이번 보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시기에 일어난 것이어서 손배소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동안 쌓인 게 많았다는 이야기다.
<중앙일보>는 한나라당 두 후보 진영과 직접 '충돌'은 없지만, 기자의 처신이 문제가 됐다. 이명박 후보 부인의 위장 전입 논란의 근거가 된 이 후보 일가의 주민등록초본 사본이 바로 중앙일보 기자를 통해서 유통됐기 때문이다. 아래 저래 조·중·동은 위기의 국면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텃밭인 '보수진영' 내부의 이전투구에 휩쓸려 있어 더욱 그렇다.
한나라당 경선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두 후보 뿐만이 아니라 조·중·동도 그 시험대에 서게 됐다. 조·중·동은 한나라당 '경선 이후'에 대해 걱정하는 사설이나 칼럼을 많이 게재했다. 하지만 조·중·동으로서는 한나라당만 걱정할 때는 아닌 듯싶다. 자신들의 '처지'와 '형편'부터 살펴야 할 국면이다.
'원 사이드 러브'는 위험하다. 언론에게는 특히 그렇다. <조선일보>의 오늘 '굴욕' 또한 크게 보자면 '원사이드 함정'에 빠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