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위치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강익범 박사는 국제세미나를 자주 개최하는 관계로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세미나가 끝나면 외국손님들을 모시고 좋은 곳을 구경시켜 주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그런데 대전에서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고민이다. 외국손님들은 한국전통문화를 보거나 체험하고 싶어 하는데 어디로 데려가야 할 지 막막하다. 강 박사는 뭔가 좋은 곳이 없나 싶어 이리 저리 인터넷을 검색하다 연정국악원에서 화요일마다 상설국악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방의 공연수준이 뭐 그렇겠지 하는 마음으로 5월의 어느 화요일을 택해 연정국악원의 상설공연을 보러 갔다. 좀 촌스럽다고 생각해 국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어떤 내용의 공연인지 미리 알아야 외국손님들을 잘 안내할 수 있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간 것이다. 대전에서 외국손님들이 한국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낸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것이기에.
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회자의 알기 쉽고 자세한 해설과 창작까지 가미된 다양한 내용의 작품들은 서울에서 보았던 여느 공연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관람석과 가까이 위치한 공연무대는 연주자들의 열정과 감흥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국악가요인 '가시버시 사랑'을 들을 때에는 일반가요와는 완전히 다른 맛을 느꼈다.
'아! 이게 국악이구나! 국악에는 뭔가 묘한 매력이 있구나.'
강 박사는 이제 국악마니아가 되었다. 책도 보고 음반도 들으면서 국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요즘은 거문고 음악을 들으면 귀가 시원하고 머리마저 맑아지며, 반복해 자주 들어도 지겹거나 질리지 않고 오히려 된장찌개처럼 구수한 맛마저 느끼게 되었다. 옛날 선비들이 거문고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풍류남아가 되기 위해 거문고를 배워볼 생각도 가지고 있다. 강 박사가 이렇게 변화된 것은 국악대중화를 위해 마련된 연정국악원의 상설공연 덕분이다.
연정국악원에서는 작년부터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친근한 국악만들기의 일환으로 상설공연을 소극장에서 개최했다. 처음에는 격주로 토요일에 실시했으나 횟수가 더하면서 관객들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주 5일제 근무로 사람들이 주말에는 공연보다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 단원들은 고민을 하다가 화요일로 공연시간을 변경하였고 격주가 아니라 매주 공연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큰 모험이었다.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컸다.
그런데 관객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을 요청하기도 하고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손을 잡고 함께 공연을 보러 왔다. 정보통신대학에 다니는 외국학생들은 우리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하기 위해 삼삼오오 몰려왔고, 인도에서 온 어떤 외국학생은 공연의 감동을 인도에 돌아가더라도 잊지 않기 위해 사회자의 명함을 꼭 받아 보관하고 싶다며 떼를 쓰다가 명함을 받고는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연구단지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은 외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한국문화 소개 코스로 상설공연장을 찾았다. 외국인들은 국악을 대한민국의 고귀하고 값진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차츰 공연이 알차고 재미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시민들의 사랑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화요상설국악공연은 4, 5, 6월 세 달에 걸쳐 총13회 실시됐고, 후반기에도 9, 10, 11월에 13회 마련될 예정이다.
새로운 장르 행사 '국악과 종교의 만남'
또 '국악과 종교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행사를 시도하였다. 고루하고 지겨운 국악이 아니라 신나고 재미나는 국악, TV속에 갇힌 국악이 아니라 현장에서 날것으로 들어보고 느껴보는 국악을 전파하기 위해 각 종교단체를 찾아가 열린음악회 형식의 공연을 개최했다. 종교계가 국악에 대해 배타적일 것으로 염려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교인들은 흥에 겨워 함께 박수 치고 노래도 불렀다. 어떤 성직자는 색소폰을 들고 단원들과 협연을 갖기도 했다. 교인들은 고생한 단원들을 위해 다과회를 마련해 주었고 국악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매년 정기적으로 행사를 개최했으면 하는 바람도 피력했다.
이것 외에도 연구단지, 대학교, 병원, 군대, 시청, 도서관, 학교, 문화소외계층인 노인요양원, 경로대학, 교도소 등을 찾아다니며 총 24회의 순회공연을 하였다. 이 중에서 자운대 공연은 반응이 좋아 매년 상. 하반기에 정기공연을 갖기로 하였고, 이에 힘입어 군인가족들을 위해 '아빠는 나라지킴이 엄마는 민족혼지킴이'라는 주제로 우리문화 체험교실도 열 계획을 세웠다. 연구단지내에 있는 원자력연구소와 KT연구소의 국악동호회는 '찾아가는 국악공연'을 통해 회원도 많이 늘어났고 국악원 단원을 지도선생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리고 매월 첫째 토요일에는 지하철 대전역에서 6개월째 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고정팬들도 많이 생겨났다.
또 '청소년과 함께하는 교과서 국악여행'이라는 주제로 초.중.고 음악교과서에 나오는 국악곡만을 발췌해서 6월 14일과 15일 이틀 연속으로 상세한 해설을 곁들인 공연을 진행하였다. 음악교과서에서 국악의 비중이 커진 것에 비해 국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선생들을 위해 마련한 공연이었다. 방학 중에는 국악에 관심이 많은 학생과 음악선생들을 위해 월~금 5일간 국악강습도 진행하고 있다. 연정국악원이 개원된 81년부터 방학강습을 통해 배출된 인원만 해도 약 5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대전의 'STB 상생방송'과 협조하여 13회에 걸친 화요상설공연 전부를 녹화하였고, 최근에는 아름다운 명승지에서 '우리가락 우리소리'도 제작 중에 있다. 녹화된 분량은 '상생방송'을 통해 대전을 비롯한 전국에 송출되어 국악 대중화를 한몫 거들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이면에는 어려움도 많다. 많은 공연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단원들의 힘겨운 노력이 요구된다. 창작음악의 경우는 곡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 때로는 이에 대해 거부반응이 일어나 단원들 간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한 사람이 공연준비, 상설국악강습, 교사로서 방학강습 등 할 일이 이것저것 많아 몸살로 고생도 한다.
연정국악원의 단원수가 95년도에 65명, 현재도 65명으로 13년째 전혀 변함이 없지만 공연횟수는 95년도에는 20~40회, 올해는 8월 중순까지만 해도 90여회에 달했다. 국악 대중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공연이 늘게 된 것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단원들 숫자는 변함이 없고 공연 횟수만 몇 배로 늘어났다면 연주자들은 매우 고단할 것이다. 국악원이나 시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마저 무릎 쓰면서 국악 대중화를 위해 애 쓰고 있는 단원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지금보다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시민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 부르고 춤추는 친근한 국악문화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연정국악원의 의지와 노력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취재를 위해 각종 자료를 준비해 주시고 여러가지 말씀으로 도움을 흠뻑 주신 연정국악원의 김병곤 기획실장님과 이수임 지도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