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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한정식의 장점은 선택에 골머리 앓을 필요 없이 한자리에서 각종 요리를 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약점이 될 수 있다.
해물한정식의 장점은 선택에 골머리 앓을 필요 없이 한자리에서 각종 요리를 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약점이 될 수 있다. ⓒ 이덕은
한차례 손님이 빠져나가고 한쪽에만 손님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허기가 졌는지 후배는 특정식으로 저질러 버린다. 그런데 예약손님 준비 때문에 전채, 찬 음식, 더운 음식, 식사의 순서가 지켜지지 않고 한 접시씩 두서없이 음식이 나온다.

색다른 것으로는 상어회,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말은 것처럼 낙지 발을 꿰어 구운 꼬치, 물회, 전복과 돌멍게, 대통밥이 전에 먹었던 식단과 좀 달랐을 뿐 그저 그만한 음식들이 가짓수로 쏟아져 나온다. 잠시 화장실로 가다 주방에 미리 만들어져 쌓여 있는 음식접시를 보니 갑자기 업소용 음식 재료상에서 본 듯한 게딱지 그라탕과 냉동새우, 통조림 버섯이 생각나서 입맛이 따악 떨어진다.

뷔페음식이란 것이 다 그런 것이고 불친절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딘가 남는 앙금. 해물 한정식은 무언가 많이 보여줘야 하는 본질을 벗어나지 못하는 음식의 버라이어티 쇼다. 이제 나도 거기서 벗어나 시장통에서 먹더라도 개성이 살아 있는 음식을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다.

[여수 생선구이집] 지난밤 혹사한 위장을 달래며

술을 먹으면 아침에 허기진다. 더구나 신트림이라도 올라올라치면 감당해낼 장사는 뜨끈한 국물밖에 없다. 여름이라 하더라도 새벽부터 추적거리는 비는 객지의 허기까지 더해준다. 펄펄 끓는 알루미늄 국통으로부터 솟아올라 빗줄기 사이로 사라지는 허연 김은 내용물이 뭐라 할지라도 회가 동하지 않을 수 없다. 유명한 집은 피하자고 해서 들어간 집도 무슨 무슨 방송에 출연했음을 알리는 사진을 걸어 놓고 있다.

장어국. 알루미늄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것을 양푼에 담아 낸다. 뜨거운 국물이 지난 밤 혹사한 식도로 흘러 내려가니 '식도야 내 네가 거기 있는 줄 알겠노라.'
장어국. 알루미늄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것을 양푼에 담아 낸다. 뜨거운 국물이 지난 밤 혹사한 식도로 흘러 내려가니 '식도야 내 네가 거기 있는 줄 알겠노라.' ⓒ 이덕은
남녀가 섞인 옆자리 손님들은 서대회와 장어국을 펼쳐놓고 벌써 해장술을 돌리며 지난밤 전과와 오늘 할 일에 대해 왁자지껄한다. 우리도 장어국과 금풍쉥이 구이를 시키고 멍하니 시끄러움에 취한다.

구수한 된장국물과 다소 퍽퍽하지만 오래 끓여 부들거리는 장어 육질은 어젯밤에 혹사한 식도벽을 부드럽게 훑어 내리며 내 식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극명하게 가리켜준다.

금풍쉥이. 너무 맛이 있어 샛서방에게만 몰래 구어준다 한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아가리를 짜악 벌리고 있는 생선을 보면 당근과 채찍의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듯 하다.
금풍쉥이. 너무 맛이 있어 샛서방에게만 몰래 구어준다 한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아가리를 짜악 벌리고 있는 생선을 보면 당근과 채찍의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듯 하다. ⓒ 이덕은
도톰하게 살이 오른 금풍쉥이는 맛이 있어서 샛서방에게만 구워준다 하여 샛서방고기라 했던가? 그런데 육감적인 몸과 다르게 얼굴은 상당히 험악하게 생겼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입을 짝 벌리고 있는 금풍쉥이를 보면 어디 겁나서 샛서방이 바람이라도 피우겠나? 하얀 육질은 가자미처럼 젓가락으로 뭉개져서 이 고기는 두 손으로 잡고 입으로 뜯어야 제 맛이 날 것 같다.

[벌교 갯벌식당] 빗소리와 함께 온 방안에 퍼지는 남도의 향

그간 벌교를 몇 번 들락거렸지만 매번 일찍 와서 꼬막을 제대로 하는 집에서 먹어 본 기억이 없다. 가격대비 음식 맛이 괜찮았던 시장백반, 우렁집의 우렁탕, 이건 적극적으로 권할 만한 음식이다. 이번에는 꼬막전문은 아니지만 대양식당이라는 곳으로 가볼까 하는 갈등을 많이 했으나 언제 정식을 한번 먹어 볼까 싶어 갯벌식당으로 향한다.

손톱이 짧은 나는 잘 깔 수가 없어서, 아리따운 여인네가 곁에서 까서 손바닥으로 받쳐주면 그제서야 '아'하고 술 한잔과 함께 먹으면 어떨까 맞아 죽을(?)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
손톱이 짧은 나는 잘 깔 수가 없어서, 아리따운 여인네가 곁에서 까서 손바닥으로 받쳐주면 그제서야 '아'하고 술 한잔과 함께 먹으면 어떨까 맞아 죽을(?)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 ⓒ 이덕은
평소 일요일에는 줄을 서서 먹는 집이지만 비가 쏟아지니 손님이 있을 턱이 없다. 방 안에는 이발소 사진이 두어 군데 걸려 있고 그 옆에 이 집 손주의 사진관 연출 사진 하나 붙어 있다. 뒷유리창은 골목에 면해 있는지 빗줄기 쏟아지는 소리가 술을 당기게 만든다.

막 삶아낸 꼬막을 깐다는 것은 매니큐어를 바른 사람이나 타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어서 남도음식 중 육전을 먹을 때 불을 곁에 갖다 놓고 그 자리에서 아줌마가 부쳐주는 것을 금방 먹는 것처럼, 이 음식은 아리따운 여인네가 섬섬옥수로 까서 손바닥으로 받쳐줄 때 술 한잔 손에 들고 입을 '아'해 가며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닌가 하는 맞아 죽을(?)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

하여간 껍질을 깐 꼬막은 반짝이는 찰진 속살을 드러내며 입맛을 돋운다. 부드럽고 쫄깃한 육질은 씹을수록 육즙을 입안에 흩뿌리고 다닌다. 역시 전은 뜨거워야 맛있다. 더군다나 밖으로부터 빗소리가 방 안으로 흘러들어오니 더 무슨 말을 하랴.

중앙에 장수처럼 떠억 자리잡고 있는 고막무침, 고막찌개, 양념고막. 주위에는 한가지로도 밥 한그릇 뚝딱 해치울 맹장들이 도열해 있다.
중앙에 장수처럼 떠억 자리잡고 있는 고막무침, 고막찌개, 양념고막. 주위에는 한가지로도 밥 한그릇 뚝딱 해치울 맹장들이 도열해 있다. ⓒ 이덕은
이윽고 커다란 쟁반 한가득 음식들이 들어온다. 성급하게 사진을 찍으려는 나를 손사래치며 만류하더니 상에 잘 진열해 놓으며 이제 찍으라 한다. 가운데에 꼬막찌개, 꼬막무침. 양념꼬막이 장수처럼 중앙을 지키고 개별적으로 보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만한 갈치속젓, 창란젓을 위시한 맹장들이 주위에 버티고 있으니 참으로 마음이 '든드은'해지는 상차림이다.

이런 좋은 음식을 범벅을 만들어 비벼먹자니 아깝다. 조금씩 밥을 베어 물고 하나하나 음미를 해나가니 진정 남도의 향은 온 방안에 진동하는 것만 같다.

후배는 '이 먼데까지 왔는데'라며 짱뚱어탕을 하나 시켜 맛을 보자 한다. 평소 같으면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이성은 흐려지고 본성만 남아 입은 그냥 헤 벌어진다.

[완도의 해변식당] 누가 뭐래도 전복은 전복이다

고금도에서 페리로 완도에 도착하려 했으나 강풍으로 배는 뜨지 못하고 강진반도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 완도에 도착하였다. 원래 메뉴는 생선구이였으나 웬 전복 간판이 그리 많은지 본바닥 전복을 먹어 보기로 한다.

양식이라는데도 값이 엄청 비싸다. 바가지 쓰는 기분이지만 조금 시켜 반은 회로 반은 찜으로 해달라 한다. 아무리 접시를 정렬해 놓아도 그저 그런 밑반찬이 삶아 놓았던 쭈꾸미가 낙지가 될 리가 없는 것이고, 통조림에서 날로 나온 옥수수가 손수 만든 감자조림이 될 리 없다.

이어 나오는 전복회와 내장은 선도가 좋다. 오독오독 씹히면서 녹는 맛에 바가지 쓴다는 기분을 약간 스러들게 만들고 입 안에서 툭 터지는 내장은 깊숙이 자리했던 야성까지 충족시켜준다. 반쯤 먹으니 전복찜이 나온다. 평소 전복은 비싼 것이라는 생각에 찜이나 구이는 생각도 못했는데 주인 아줌마의 권유로 찜을 시킨 것이다. 한 점 먹으니 주인 아줌마 말처럼 부드럽다.

아무리 밑반찬을 나열해 놓아도 쭈꾸미가 낙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복은 선도며 육질이 훌륭하다.
아무리 밑반찬을 나열해 놓아도 쭈꾸미가 낙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전복은 선도며 육질이 훌륭하다. ⓒ 이덕은
부드러운 전복찜에 술을 들이켜니 수울술 잘 넘어간다. 한참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들어오더니 전복을 시키려다 깜짝 놀라 매운탕을 시킨다. '내 젊은 연인의 그 심정 알지…' 나만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갑기는 한데 옆에서 혼자서 그것을 먹고 있자니 좀 난감하다. 매운탕을 들고 있는 남자에게 손 안 댄 전복회 한 마리 권했더니 고맙다며 매운탕을 한 그릇 떠온다.

맨밥을 어떻게 먹느냐고 아줌마가 숨겨 놓고 먹는 젓갈 좀 갖다 달랐더니 갈치젓과 묵은지를 갖다준다. 김이 나는 하얀 밥에 올려진 젓갈은 밥 알갱이 사이로 새빨간 젓국이 먹음직스럽게 스며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박3일 일정의 전라도 맛기행의 일부입니다.  

이 기사는 닥다리즈 포토갤러리 [전라도 맛기행 02 여럿이 먹어 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수한정식#벌교고막#완도 전복#갯장어#해물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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