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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가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대안학교의 주요한 특징들을 소개 했는데요 사실은 학교가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꿔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학교를 이해하고 수용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구요.
가장 큰 어려움은 시간내기였습니다.
학교 행사라고 할까. 학교에서 하는 여러 일정들에 시간을 내서 참여하는 것이 제일 큰일이었습니다. 학생 생활관에 생활관 도우미로 참여하는 것이나 각종 회의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각종 시설공사에 참여해서 함께 울력(일)을 하는 것 등입니다.
교실이나 학교 건물, 아이들이 지낼 생활관(실상사에서는 ‘작은가정’이라고 불렀음)이 제대로 된 게 없으니 뜯어 고치고 바르고 붙이고 해야 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실상사작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이 살 집에 가 봤는데 빈 시골농가다 보니 문짝은 삐뚤어져 있고 지붕은 하늘이 보이고 수도는 물이 안 나오고 하수도 구멍은 꽁꽁 얼어 있고 뭐 이런 수준이었습니다.
더구나 면 생리대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고 새벽 6시에 일어나 밥을 해야 하고 그랬습니다. 학교 수업만큼이나 ‘작은가정’에서의 생활교과를 중시했습니다.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웠지만 일단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만나면 워낙 즐겁고 재미있게 지내곤 하다 보니 점점 시간을 내는 것이 수월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리학교에서도 그랬고, 실상사작은학교에서도 학년 학부모대표를 맡았었는데 이런 저런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마리학교에서는 학생 생활관 학부모교사로 1주일씩 가서 지내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런 시간 외에도 저는 며칠씩 시간을 내서 학교에 가서는 부서진 기구들도 고치고 청소도 하고 애들 수업에도 들어가곤 했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머무르는 동안 학생들의 수업이나 생활을 6mm 캠코더로 찍어서 영상물을 만들어 누리집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길직리 생활관의 하루’와 ‘마리학교 생명축제’입니다. ‘쑥뿌쟁이 공연’ 등 짧은 것이니까 한번 틀어 보겠습니다.
실상사 작은학교도 한 달에 한 번꼴로 금요일에 가서 일요일 까지 ‘작은가정’을 맡아 생활교사가 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 되거나 방학식 등에는 실상사 작은학교는 아내가, 마리학교는 내가 가는 식이었습니다.
실상사에서는 또 건축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건축기금 마련 활동도 했습니다. 그러니 시간 뿐 아니라 돈 들어가는 일들입니다. 그래도 보람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유익한 시간을 가졌고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했으니 그만이지요.
학교와의 의견대립도 학부모 노릇하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학교가 대상화 될 수 없고 학부모가 곧 선생이고 선생이 부모 같고 했지만 그래도 운영의 중심은 학교의 교사집단일 수밖에 없는데요. 의견대립은 어떤 주제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주로 태도와 관점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힘든 일은 보람을 동반한다. 우리가 알아 챌 수만 있다면
왜 그런 식으로 결정 하느냐 라든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면 어떡하느냐는 그런 대립이 많았습니다. 소위 다들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간단한 한 가지 현상을 놓고 인류역사와 인간의 본성, 교육의 목표와 교육방법론 등등 온갖 문제를 다 연결 해 냅니다.
마리학교에서는 개교기념일 행사를 일부가 제 멋대로 먼저 했다는 게 문제가 되어 학부모들이 똘똘 뭉쳐서 일곱 명인가 여덟 명의 학생들을 자퇴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내막이 꼭 이런 건지 자세히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이런 식의 대립과 갈등이 힘들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상근 교사가 없다’거나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거나 또는 ‘아이들을 너무 통제한다’는 등의 서로 상충되는 말들이 항상 떠도는 것이 학교 분위기였습니다.
“수업시간에 도대체 애들을 통제를 안 한다”는 말은 학부모 회의에서 여러 번 다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수업권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아이들이 통제의 대상이냐?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무슨 짓을 하던 자유를 보장하자 등등. 의견도 많았고 주장의 근거들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이성교제도 늘 토론거리였습니다.
풀무학교는 아예 입학 할 때부터 각서를 씁니다. 연애하지 않겠다는 각서입니다. 풀무학교는 연애에 대해 매우 확고한 입장이 있었습니다. 연애를 허용하면 자꾸 둘만 숨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다 아는데 둘만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신,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개적인 공간과 기회를 완전히 열어 둔다고 했습니다. 스물일곱 개나 되는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얼마든지 함께 하는 시간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성간의 교제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든 스스로 자기 삶을 설계하고 책임져 나가는 훈련의 기회가 된다면 나무랄 것이 없다고 봅니다. 이름은 안 밝힙니다만 어느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콘돔을 나눠주자는 말도 나온다고 합니다.
흡연실마련이 공론화되기도 하구요. 학생흡연문제를 다루면서 당연히 교사나 학부모 등 어른들도 똑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렇지 않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금연을 요구합니까. 청소년 보호법? 담배사업법? 그런 준거를 들이댈 수 가 없죠. 흡연실 마련이 공론화 되었지만 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다짐’이라는 공동 다짐문을 통해 마약이나 술, 담배 등 우리의 몸과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어떤 물질들도 멀리 하겠다는 것을 항상 교육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어쨌든 삶 자체가 아이들과 종일 같이 지내고 끊임없이 회의도 하고 연수도 받고 하면서 대안적 교육을 연찬하면서 그런 대안을 제시하는데 비해 학부모들은 아무래도 좀 늦지요.
중학생에게 흡연실이라니. 이제 솜털도 안 벗은 나 어린 학생들한테 콘돔을 나눠주자니. 쉽게 납득될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근본을 천천히 따져 들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과제들입니다. 그래서 학부모 공부모임이 만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방학 때는 2박3일이나 일 주일정도씩 숙박 수련회를 합니다. 마리학교는 토론이나 회의보다도 명상수련을 더 중시하는 학교였습니다. 명상적 사고가 논리와 이성에 선행한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방송통신대 대안교육연수 온라인 티브이 강의 교안이며 <민들레>9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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