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청부채와 호랑나비가 밀애를 하며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대청부채와 호랑나비가 밀애를 하며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 윤희경
마지막 찜통더위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짜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더구나 오늘처럼 폭염 특보가 내리고 더운 김이 확확 밀려오는 날은 앉아있기조차 힘이 듭니다. 그러나 뜨거운 여름이 끝난다는 처서(23일)가 며칠 앞이고 보면 이 더위가 끝이 아닐까 마음을 달래봅니다.

올여름이 유별나게 덥게만 느껴지는 것은 돌 지난 아가를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것은 다 참을 수 있지만 무더위로 아기가 잠 못 이루고 보채며 칭얼댈 땐 속이 아려옵니다. 별을 따다 주랴, 달을 따다 주랴 달래보지만, 막무가내로 까르륵 속을 훌러덩 뒤집어 놓습니다.

아가와 삼색 태극선 부채, 부채질을 해 낮잠을 재워야하련만 뺏어들고 놓지를 않는다.
아가와 삼색 태극선 부채, 부채질을 해 낮잠을 재워야하련만 뺏어들고 놓지를 않는다. ⓒ 윤희경
생각다 못해 청홍황(靑紅黃) 삼색 태극부채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색상이 알록달록해 아가 눈을 홀리고 살랑살랑 부채질을 해주면 신통하게도 울음을 뚝 그칩니다. 그러면 음치를 가라앉히며 서툰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이홍렬 곡 <섬집아기> 전문


개화하기 전 대청부채, 오후 4시는 돼야 꽃망울이 터진다.
개화하기 전 대청부채, 오후 4시는 돼야 꽃망울이 터진다. ⓒ 윤희경
시원스레 살랑거리는 부채 바람에 아가는 사락사락 잠이 듭니다. 잠든 아가를 보며 바람을 일으키다가 신통하여 부채를 보고 또 들여다 봅니다. 삼색 태극선이 한 데 어울려 조화롭습니다. 태극선 밑에는 아주 작은 글씨체로 '평화통일기원 부채'라고 쓰여 있습니다.

개화의 순간, 금세 피었다 지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볼 수 있다.
개화의 순간, 금세 피었다 지기 때문에 부지런해야 볼 수 있다. ⓒ 윤희경
이 부채를 만든 이의 정성이 지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원래 청홍황색은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를 말합니다. 즉 하늘, 땅,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우주만물, 조화와 통일을 의미합니다. 태극선 부채에다 하늘과 땅과 나의 정성까지 불어넣어 서늘한 바람을 불러옵니다. 이 바람기운으로 아기가 편히 잠들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서해안 대청도가 고향이랍니다.
서해안 대청도가 고향이랍니다. ⓒ 윤희경
아가가 잠든 틈을 타 한창 바닷바람을 일으키며 피어나는 '대청부채' 구경을 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봐야 오후 4시는 되어야 꽃물이 터집니다. 5시경에 절정을 이루다가 해가 저물면 이내 입을 다물어버리기 때문에 우물대다간 꽃구경하기가 힘이 듭니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꽈배기처럼 돌돌 말려 있다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면 꽃잎이 춤을 추듯 요염합니다. 연보라색 꽃잎에 선명한 무늬로 다가와 더위에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줍니다.

대청부채를 감상하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오늘 저녁 열대야를 식혀 보시지요
대청부채를 감상하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오늘 저녁 열대야를 식혀 보시지요 ⓒ 윤희경
부챗살을 닮은 넉넉한 잎에서 풍겨나는 멋과 기품, 향기롭게 일어나는 부채바람 냄새, 자연이 만들어낸 꽃바람을 마시며 찜통더위를 식혀냅니다. 납작한 부챗살 잎은 칼 모양을 닮아 더욱 서늘하고, 여린 듯 가녀린 꽃줄기에 매달려 너울너울 춤을 추는 연보라색 대청부채 꽃을 보고 있으면 '서해안 대청'의 바닷바람이 몰려옵니다.

부챗살을 닮았다.
부챗살을 닮았다. ⓒ 윤희경
대청부채가 소중하기만 한 것은 멸종위기 식물 56종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살갑게 길러내야 할 들꽃이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여름을 건너가는 계절, 이 더위 지나면 머잖아 풍성한 가을이 올 것입니다.

푸른 부챗살을 부치며 더위를 잊으시면...잎만 놓고 보면 범부채와 비슷하고 붓꽃을 많이 닮았다.
푸른 부챗살을 부치며 더위를 잊으시면...잎만 놓고 보면 범부채와 비슷하고 붓꽃을 많이 닮았다. ⓒ 윤희경
대청부챗살에서 일어나는 꽃바람 향기로 뜨거운 기운을 잠재우며, 오늘 저녁 푹푹 찌는 열대야를 식혀내야 할까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우측상단 주소를 클릭하면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서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대청부채#태극선#바닷바람#아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