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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다섯 시>
ⓒ 책장
현재, 모든 대선예비후보들을 통틀어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월급쟁이 신화'를 이룬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청계천 신화'를 쌓아올린 서울시장 등 잘 알려진 것 이외에 그의 인생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새벽 다섯 시>라는 책 속에서 접한 이명박의 삶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야기구조가 잘 짜인 전형적인 영웅의 일대기를 떠오르게 한다.

"잘 쓴 '영웅소설'이네."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다. 이명박의 삶에는 소설 구성의 3요소인 '인물·사건·배경'이 너무도 극적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픔에 눈물겹던 어린 시절, 공부를 하고픔에도 형의 공부를 위해 밤낮으로 일해야 했던 학창시절, 공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끝내 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 때문에 좌절할 뻔했던 스무 살 언저리의 막막함, 학생운동 경력으로 번번이 취직에 실패하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현대건설에서 37살 나이로 사장에 올랐던 청년시절, 의원과 시장을 거쳐 대통령예비후보로 나선 인생 후반기에 이르기까지 이명박의 삶은 소설의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이명박에게 '노력'과 '정직'을 일깨워 배고픔과 갖은 역경을 이겨내도록 인생의 참 스승이 되어주었다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영웅의 일대기에서 중요한 요소들로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다. 실제 이 책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의 지혜', '희망편지' 등 3부로 구성돼,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가난'은 이명박이 이겨내야 했던 최초의 '역경'

책은 이명박이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1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다. 하지만 이는 이화복 전 동아일보 기자가 이명박과 오랜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책의 엮은이는 이명박의 성장과정과 그가 지닌 삶의 철학을 책을 통해 보여준다. 그 중 '가난'은 이명박이 이겨내야 했던 최초의 '역경'이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부'를 얻어 성공하는 것은 꼭 이루어야 할 이명박의 꿈이었다. 책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보이는 이명박의 가난에 대한 한탄과 부자에 대한 동경을 보면, 이명박이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잘못한 것은 과일 수레를 들이받은 차 주인이다. 그런데 왜 내게 호통을 치나, 왜 오히려 욕을 먹어야 하나. 엉겁결에 상대방을 보내고 나니 말할 수 없는 모멸감과 반감이 밀려들었다. 가진 자의 횡포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나였다. 멱살이라도 잡고 배상을 받아내야 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눈물이 비를 타고 한없이 흘러내렸다. 당장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힘을 다해 일하건만 왜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가."

"어머니는 부자를 뛰어넘는 기적 같은 변화를 내 안에 일으켜주신 것이다. 못산다고 따돌림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던 내게 그날의 경험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었다. 세상은 힘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고 하지만 나는 그날 부자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 집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나올 때는 귀한 손님이 되어 있었다."

이명박의 한반도, "20세기는 개발, 21세기는 생명과 환경"

책에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한반도를 바라보는 이명박의 가치관으로, 경부운하를 최대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아래 내용은 곱씹어 볼 필요가 충분하다. 이명박은 과연 삶의 철학인 가치관과 대선공약 중 어떤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할지 궁금하다.

"20세기가 개발로써 성장의 동력을 얻었다면, 21세기는 생명과 환경의 차원에서 성장 에너지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잘산다는 것! 이제는 생명의 방향을 벗어나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한반도를 생명이 넘치는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것 지속 가능한 발전의 시작입니다."

책은 제3자 입장에서 1인칭을 가정해 재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잘 포장된 '영웅이야기'로 봐서는 차라리 '엮음'보다는 자서전을 대신 썼다고 하는 것이 맞지 싶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전직 기자로서 비판적 시각은 없이, '이명박이 성공한 데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는 식의 내용으로 일관해 읽기에 부담스러웠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성공과 실패, 절망과 희망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이명박에게 '최고의 자리'와 '희망'은 반드시 오르고 이루어야 한다. 그것만이 성공이다. 이것은 목적을 이루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도 '성공'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겨울의 찬바람을 이겨낸 나무라야 꽃을 피운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만이 저 너머의 자유를 얻는다. 만약 비난받아야 한다면 도전의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피해 용기를 접은 사람일 것이다. 좌절을 겪지 않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절망을 겪지 않고 희망을 보았다는 말 또한 믿지 않는다."

위장전입, 차명재산의혹…'완벽한 영웅이야기' 같은 감동은 없다

배고픔을 이겨내고 공부하며 승승장구했던,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이명박의 삶을 보면,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이 도가 지나친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지금껏 꿈 꾼 것들은 모두 이뤄왔기에, 방법이야 어떠했던 간에 또 다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말이다.

자식들을 위해 그랬다는 위장전입이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차명재산의혹 등 언뜻언뜻 불거지는 이명박의 부정과 불법 행위, 생명이 넘치는 한반도를 말하면서도 국토를 파헤쳐 경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보면 이명박이 꿈꾸는 성공은 자신만의 틀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가난과 숱한 역경을 이겨낸 이명박은 분명 성공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월급쟁이 신화’에 한정할 때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이 진정한 ‘영웅신화’를 완성하려면 대통령직을 차지했다는 '성공'보다, 국민을 감동시켜 마음을 움직이는 '성공'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책으로 돌아본 이명박의 삶은 '잘 쓴 영웅소설'이라는 감탄사는 나올지언정 '완벽한 영웅소설'이라 인정하기에는 마무리의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을 꿈꾸는 이명박의 인생 후반기, 숱한 의혹들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새벽 다섯 시 -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안혜경 글.사진, 우리책(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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