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화의 가속 속에 24절기가 현대인의 뇌리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지만 그래도 칠월칠석은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 담긴 배경 신화를 가진 탓에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되는 절기이다. 그러나 견우와 직녀의 만남 외에도 칠석날은 아주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천제(天祭) 중에서는 유일하게 여성이 제관이 되는 아주 특이한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이때쯤 나는 오이, 가지, 애호박 등을 직녀에게 바치기도 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해준다. 음력 칠월 칠일은 양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날이다. 그것은 곧 세상이 음기의 지배로 전환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에 칠성 중 직녀성 즉 직녀에게 양기를 상징하는 가지 등을 진설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저녁 해질 무렵에는 달도 함께 뜨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삼복과 입추 후에 오는 칠석은 그밖에도 지금은 잃은 많은 이야기들을 남기고 있다. 과거 농경사회의 노동절이라 할 수 있는데, 음력으로 2월 1일과 칠석날에는 머슴날이라 하여 본격적인 농사일을 앞두고 하루 걸진 휴식을 제공했다.
오랜 장마 끝에 찾아오는 칠석 때 선비들은 눅눅한 서책을 내다 말리기도 했으며, 아낙들은 새벽에 과일을 상에 올리고 바느질 솜씨를 좋아지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기도 했다. 이를 걸교(乞巧)라고 한다. 또한 '칠석날은 소질금물(외양간 거름물)도 약이 된다'란 말이 있듯이 이 날 내리는 물이 몸에 좋은 물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목욕하기는 물론 술빚기, 장담그기 등과 함께 차를 달여 칠석제를 올렸다.
이같은 칠월 칠석의 절기를 지키는 민간의 모습은 농경사회 붕괴와 함께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차를 아끼는 차인들이 십여 년 전부터 조용히 이날을 기리고 있다. 칠월칠석날인 19일 일요일 저녁 6시 문화관광부 옆 서울시민 열린마당에서 칠석문화제보존회가 주관하는 제3회 칠석문화제가 열렸다.
칠석문화보존회는 불교전통문화원(원장 석하스님)과 석정원차회(회장 구자완)가 중심이 되어 구성한 단체로 잊혀가는 칠월칠석의 민간풍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구성원이 차인이기에 이 날 칠석문화제는 헌다(獻茶)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석하스님과 구자완 회장 등 칠석문화보존회 회원들의 솟대 세우기로 시작된 이 날 행사는 엄격한 예절로 알려진 차문화인들의 행사답게 엄숙하고 유장하게 진행되었다. 전례와 본례로 나누어 칠석제를 치렀는데, 제단에 올릴 제물들을 서울국악관현악단(집박 김정수)의 영산회상 연주에 맞춰 하나씩 나르는 단아한 모습들에 지나는 시민들은 잠시 발길을 멈추기도 했다.
전례에는 촛불을 켜고, 오곡과 과일을 진설하는 과정을 구현했고, 본례에는 차를 올리는 헌다로 구성한 칠석제는 도심 속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본례를 마친 후에는 문화공연과 더불어 솟대에 소원을 적은 쪽지를 매다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국예절원 정옥희 원장의 시낭송, 한국무용가 이미주씨의 창작춤, 송형익 명지대 교수의 기타 연주, 사물놀이 등으로 다소 지루할 수 있었던 칠석제의 분위기를 돋우려 했다.
십수 년 전부터 칠석제를 지내온 이들이지만 외부로 나와 공개적인 문화제의 형식으로는 올해로 3회를 맞은 칠석문화제. 공공기관에서도 좀처럼 관심 두지 않는 절기문화를 되찾으려는 의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국립국악원이나 민속박물관 등 국립기관들 외에는 좀처럼 관심 두지 않는 민속절기문화를 민간단체가 되찾으려 오랫동안 노력해온 점은 가상한 일이다. 게다가 축제라는 이름 붙여진 행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소란스럽기만 한 것에 반해 국악 정악의 느림에 맞춘 정적인 행사가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것도 차별성이 있었다.
일반에게는 아직 낯선 헌다례의 형식과 의미에 대한 소개, 행사 진행과 구성의 대중성 등 몇 가지 점들을 향후 보완해나간다면 서울의 덥고 지루한 여름날 하루를 의미있게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