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텔레비전에는 맛있는 음식 찾기가 무지개처럼 펼쳐진다. 특이한 음식, 전통을 살린 음식, 다른 나라의 음식, 퓨전음식... 신문의 주말 판은 또 어떤가. 맛집 순례, 와인이야기,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이야기, 요리사탐방, 심지어 바다건너 맛집까지 소개하고 있다.50년 전만해도 먹거리가 부족하던 우리가 어느 새 '뭔가 좀 특이한 음식 없나'하며 입맛을 즐기고 있다는 건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저편. 세계인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단다. 왜?세계인구 1/7은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쟝지글러지음/ 갈라파고스)는 지은이 쟝지글러가 국제식량기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쓴 글이다. 해마다 늘어가는 굶어 죽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 대한 연민을 담은 이 책을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은 '지글러가 어린이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이라고 말한다.당신이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 A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1/3명꼴이다. 그리고 세계인구의 1/7에 이르는 8억5천만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2000년 이후 1200만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전 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우리는 스위스 네슬레가 칠레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곡물이 부족해서 누군가는 굶어죽는다면 아무도 수긍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은 넘쳐나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쟝지글러가 지적하고 싶어 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바로 식량가격을 결정하는 선진국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끝 모를 뿌리를 이 책을 통해서 밝히고자 한 것이다.그 예로 쟝지글러는 아옌데의 비극을 예로 들고 있다. 아옌데 사건이란 미국에서 교육받은 토호들의 2세인 '시카고 보이'들이 군인들과 결탁하여 민중정부를 붕괴시킨 사건이다. 당시 칠레는 우리나라보다 잘 살았고 국제적인 위상도 훨씬 높았던 선진국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단순한 쿠데타로 보이지만 그 안을 보면 식량자본의 음모가 있다.1970년 아옌데는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하려고 했다. 당시 칠레는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아동영양문제는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런데 이 문제에 가장 곤란함을 느꼈던 것이 스위스의 다국적기업인 네슬레였다. 커피와 우유를 주품목으로 하는 네슬레에게 칠레정부가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칠레에서의 성공사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번져갈 경우에는 더욱 큰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네슬레는 칠레의 농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당연히 네슬레는 협력을 거부했다. 아옌데정부는 네슬레에게 우유 구매를 요구하였으나, 이 요구는 거부당했다. 이때부터 아옌데 정부는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정부와 네슬레를 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고립되고, 결국 CIA와 결탁한 군인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다. 오늘 날 많은 이들이 차베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당신은 아옌데처럼 당하면 안 된다."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굶는 이유는서구의 침탈이 있기 전만해도 아프리카의 농민이나 목축민들은 현지의 권력자에게 상납하고 자신들이 소비하게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다. 하지만 식민지 권력자들은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유럽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작물을 경작하도록 했다. 식민지 차드에서는 종주국 프랑스의 직물공장에서 쓸 면화를 가나의 삼림지대인 아샨티에서는 영국의 초콜릿 공장을 위해 카카오 농사를 지어야 했고, 르완다에서는 차농사를 지어야했다. 이들 나라들은 1960년대에 들어 독립을 이루었지만, '신식민지주의'아래에서 성장한 식민지 엘리트들은 구 종주국의 눈치를 살피며 자국민을 위한 식량생산은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세네갈의 경우를 보자. 세네갈은 프랑스 식민지였는데, 오로지 땅콩 농사를 짓도록 강요받았고 지금까지도 이런 수출만을 위한 단일경작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은 땅콩을 유럽으로 수출하지만 수출가격에 비해서 너무나 헐값으로 농산물을 넘기고 있다. 가격결정권이 그들에게 없는 탓이다. 하지만 세네갈 사람들의 주식은 쌀이다. 정부는 땅콩 수출로 번 돈을 태국이나 캄보디아 등에서 주식인 쌀을 구입하고 있는데 1년에 약 40만톤에 이르며 1997년 당시 세네갈 국가 예산의 17.4%가 곡물 수입에 지출되었다고 한다. 세네갈은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농민은 가난하며, 식량난에 허덕이는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원조국제식량기구가 그렇게 열심히 돕고 있는데, 나는 매달 월급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돕고 있는데, 앞으로도 기아사태는 해결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를 모두가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쟝지글러는 현재의 일그러진 원조정책이 세계의 굶주림에 아무런 해결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예로 아프가니스탄의 예를 들자. 아프가니스탄의 미군폭격 폭격 중간 중간 식량포대가 떨어진다고 한다. '공중식량살포'. 국제적십자나 그 밖의 구호단체들이 아프리카, 아시아의 접근하기 어려운 구호 지역에서 사용하는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식량 살포 조건은 땅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라야 하고, 구호단체가 권한을 위임한 분배 위원회에 의해 살포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앙골라와 더불어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있는 땅이다. 식량 팩들이 들판 여기저기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면 굶주린 여자와 아이들이 그쪽으로 달려가다 지뢰를 밟아 몸이 찢기곤 한다. 국제원조 단체는 아프가니스탄의 식량살포가 이 모든 기준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쟝지글러는 국가를 내세우기 위한 전략보다는 진정에서 우러나온 원조, 체계적인 원조, 현지 원주민의 입장을 고려한 원조를 해야 한다고 애태운다.굶주림, 남의 일이 아니다"10년 후가 되면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고픈 배를 부여잡고 잠자리에 들지 않을 것이다."< World Food Survey >의 1974년 판에서는 이 말을 선언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리고 1996년에 FAO 주최로 로마에서 열린 제 1회 세계식량 서미트에서는 "2015년까지는 지구상의 기아인구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모든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했다. 1974년의 예언은 그 반대로 나타났고, 굶는 사람의 수는 도리어 증가했다. 2000년 이후에도 세계의 굶주림은 더 심각해졌다. 본격화한 세계화가 가난한 나라를 다시 한번 늪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부의 쏠림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었고, 국가는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비극 속에서 쟝지글러는 말한다. 배고픔의 숙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연대감이라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다 읽고 난 즈음 북한에서 또 심각한 소리가 들려온다. 1990년대 200만(좋은 벗들 조사에서는 350만)이 넘는 사람이 굶어죽었다. JTS의 법륜스님은 북한의 기아사태는 먼 훗날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돌아볼 때 당시를 살았던 남한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역사의 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90년대 굶주림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북한이 이번에 또 큰 수해를 맞았다. 당장의 사태도 큰일이지만 국제사회는 앞으로 발생할 굶주림의 문제에 더 큰 우려를 하고 있다. 굶주림, 먼 곳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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