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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륙 횡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으로 남아 있다. 6월 25일.
미국 대륙 횡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으로 남아 있다. 6월 25일. ⓒ 문종성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끝없는 열정과 멋진 환상 때문이다. 그것은 목표로 하는 일에 자신이 쏟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집중시켜 걸어보게끔 만든다. 또한 나이와 성별, 배경을 넘어서서 시도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축복이며 결과가 어떠하든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지혜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사람들의 본능적인 모험심을 자극한다.

20대 혈기 넘치는 젊음 그리고 열정. 그 젊음과 열정만으로 성공할 순 없지만 젊음과 열정이 있기에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때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의 거친 부분을 감싸주는 스펀지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지금의 이 도전에서 쉼 없이 계속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처음 이시다 유스케의 자전거 세계일주에 관한 책을 읽고 의식의 격렬한 저항을 받은 적이 있다. 그전에 읽었던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에서 모험에 대한 불씨를 지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대폭발 하는 화산처럼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본능으로 나를 충족시켜 버린 것이다.

이후 자전거 여행에 대한 사이트에 탐닉한 나는 세계 곳곳의 열광적인 라이더들이 훨씬 더 충격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이나 유럽 및 아시아는 애교 수준이고 아프리카나 심지어는 아마존 근처를 여행한 사람들의 사이트를 둘러보며 타성에 젖어있던 세포 하나하나마다 전율이 일어났던 것이다. 자전거로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아직 나는 과정 중에 있으며 여전히 나의 모나고 서툰 부분을 다듬어 가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지나간 선배 라이더들의 발자취가 내게는 무엇보다 위로와 격려가 된다.

"지구상에 재미없는 소재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재미를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 뿐이다."- G.K. 체스터튼(There is no such thing on earth as an uninteresting subject; the only thing that can exist is an uninterested person. - G.K. Chesterton)

예순일곱과 예순아홉, 나이는 숫자일 뿐!

로큰롤의 도시 클리블랜드로 향하는 길. 낮에는 처음으로 대륙 횡단자들을 만났다. 반대편에서 혼자 짐을 잔뜩 실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여성 라이더와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이름은 린다 보스웰(Linda bothwell). 여자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녀의 나이를 듣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로 무려 67.

평균 연령 68세의 팬코와 린다. 고단한 여정을 함께하기에 그들은 결코 힘들지 않다고 한다.
평균 연령 68세의 팬코와 린다. 고단한 여정을 함께하기에 그들은 결코 힘들지 않다고 한다. ⓒ 문종성
그녀는 시애틀을 출발해 뉴욕 주를 거쳐 현재 일하고 있는 캐나다 킹스턴(Kingston)까지 간다고 한다. 직업은 'Jail teacher'. 말 그대로 죄수들의 갱생 교육을 도모하는 직업이다. 나도 얼마 전에 킹스턴을 거쳤었다. 작은 도시 킹스턴의 인상은 평범한 호수도시였지만 감옥으로 유명한 건 지나오면서 알았었다. 한국에서라면 이러한 스케일 큰 여행자는 고사하고 직업조차 변변치 않을 노인이 대부분일 텐데.

아무리 여건이 좋은 선진국이라지만 중부 지방에 풍년이 든 다른 이들과는 확실히 다른 멋진 매력을 뽐내는 황혼의 인생임이 분명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라이더 한 명이 한참 뒤에서 또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바로 그녀의 남자친구인 팬코(panko). 웃통을 훌렁 벗은 채 한참 뒤처져서 오는 그의 나이는 69. 린다보다는 뒤처져왔지만 어쨌든 그 역시 대단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은퇴한 지는 이미 오래고 이래저래 그저 자전거 여행이 낙이란다.

"당신은 예순일곱 그리고 당신은 예순아홉? 정말요? 와우~ 당신들 참 대단하네요. 세상에! 힘들지 않나요?"
"뭐 별로요. 함께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거죠."

함께라서 힘이 된다는 것. 나는 혼자라서 힘들었던가. 사실 육체는 내가 더 젊고 활력있는지 몰라도 확실히 정신적으로 난 그들보다 피로해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길 위에 오랜 시간 함께 호흡하며 레이스를 맞춰가는 동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위로가 될까. 이야기를 나누며 자전거 대륙 횡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천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것은 젊음의 특권이자 도전이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인생의 모험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기회고,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남겨지는 멋진 추억이 되는 것이다. 같은 길을 가면서도 우린 너무 다른 생각과 환경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지 위의 모든 이야기들은 서로에게 가장 가치있는 의미를 부여하며 오늘도 기꺼이 도전을 허락하고 있다.

로큰롤의 도시 클리블랜드를 그냥 지나친 건 명백한 실수였다. 이 키타에 담겨져 있는 동물은 과연 몇 마일까?
로큰롤의 도시 클리블랜드를 그냥 지나친 건 명백한 실수였다. 이 키타에 담겨져 있는 동물은 과연 몇 마일까? ⓒ 문종성
다음 주에 생일을 맞는다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의 여행이 끝나는 날이다. 아마 일정을 그렇게 맞춘 듯이 보였다. 그들은 현재 자전거 여행 62일차로 총 70일을 예정하고 있다. 토론토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킹스턴까지는 8일이면 충분한 거리다. 따로 텐트를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총 4개의 패니어와 핸들바 가방에는 이런저런 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레스토랑을 이용하고 모텔에서 자면서 이용하는 경비는 하루 $60 정도. 정말 멋진 노인들이다. 아니 인생의 선배들이다. 45세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20년을 더 살아온 인생이라니 무한한 존경심이 솟구쳐 오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가 지금 내 눈앞에 증인으로 세워져 있는 것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에요? 자전거로요? 대륙 횡단이요? 아니 남태평양 패키지 여행이나 다녀올 것이지. 뙤약볕에서 무슨 사서 고생이람. 난 못 가요 못 가. 당신이나 애들 데리고 다녀오든지 말든지. 그러지 말고 쇼핑여행이나 다녀오자고요 우리. 네?"

30~40년 후 내 모습을 상상하니 아내의 핀잔과 타협을 목적에 둔 애교가 눈에 선하다.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들은 어쩌면 내가 평생 해 볼 수 없을 연인(그들은 부부가 아니다)의 자전거 대륙 횡단을 멋지게 성공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멋진 여행자를 만났기로서니 한창 주행에 탄력이 붙고 있는 시기에 그들을 오래 붙잡을 수는 없는 일. 그들과 작별한 후 계속해서 오하이오 주의 대표적인 대도시 클리블랜드로 향했다.

클리블랜드 다운타운 공원에 세워진 자유를 수호한다는 신화 속 인물 동상. 공원 주변으로 빌딩 숲과 클리블랜드 야구장 등이 들어서 있다.
클리블랜드 다운타운 공원에 세워진 자유를 수호한다는 신화 속 인물 동상. 공원 주변으로 빌딩 숲과 클리블랜드 야구장 등이 들어서 있다. ⓒ 문종성
사실 클리블랜드에 머무는 반나절의 시간 동안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대충 지나간 것이다. 여유 있게 방을 잡고 클리블랜드를 깊게 조망해 봤어야 했다. 아니면 뒷골목에 들어가서 허름한 로큰롤 바(rock'n'roll bar)라도 가든지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가서 로큰롤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라도 표했어야 했다.

그것이 그것을 자부심으로 삼고 있는 클리블랜드를 방문한 손님으로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던가. 로큰롤의 고장이라는 곳에서 로큰롤 한 번 들어보지 못한다는 것이 단무지 빠진 김밥 먹는 의미와 뭐가 다를 것인가. 아니면 최악의 경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야구경기라도 보던지. 뭐하나 클리블랜드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 푼 한 푼 아껴 여행하는 게 남겨질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큰롤의 고장인 클리블랜드에서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조차 한 번 듣지 못하고 간다라…. 북미 자전거 일주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돈 아껴가면서 완주하는 것에만 목표가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 빠듯한 재정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즐길 때 즐기지 못하고 그 지역에 대해 알 기회를 스스로 져버린다면 이 여행은 큰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된다.

그들의 문화와 삶을 조금 더 느껴보기 위해 그들 곁으로 가야하는데 너무 수박 겉핥기식으로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지금껏 어느 도시를 가도 다들 분위기가 비슷하지.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클리블랜드 외곽을 한참 빠져나간 뒤였다. 이 일로 나는 다른 도시에서는 좀 더 과감하게 그들을 대표하는 문화를 찾아보기로 결심하는 것에서 오늘을 반성한다.

이번엔 59세 아줌마, 구제불능 낙천주의자들!

다음날 클리블랜드 지역을 완전히 빠져나가다가 오전에 반대편에서 또 한 명 여성 라이더를 만났다. 이번엔 진정 혼자 여행하는 용감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리컴번트 자전거(recumbent bike)를 타고 대륙횡단 중. 리컴번트 자전거에 밥 야크 트레일러. 그야말로 꿈의 조합이다. 4000달러를 들였단다. 난 재정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서의 여정을 고려해 둘 다 포기했었는데….

미국에도 허수아비가. 클리블랜드 외곽지역을 지나면서.
미국에도 허수아비가. 클리블랜드 외곽지역을 지나면서. ⓒ 문종성
그녀의 이름은 팻 에스코바(pat escobar). 10월이 60이 되는 59세란다. 바로 전에 만난 노인들의 자전거 여행도 대단하지만 할머니라고 하기엔 그렇고 이 아주머니도 그에 못지않은 대단한 정력가다. 펜실베이니아 출신인 그녀는 시애틀을 출발해 딸이 공부하고 있는 뉴욕까지 갈 예정이란다. 의약품 백신 만드는 회사에 다니다가 지금은 은퇴한 상태로 예전부터 미국 자전거 횡단이 꿈이어서 도전하게 되었다고. 가장 난코스를 물어보았더니 노스다코타 주(North Dakota)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나무도 없을뿐더러 옆에서 바람이 불어 진격이 쉽지 않아서 그랬다고.

"앞으로 가게 될 길은 언덕도 없고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아서 아주 편안할 거에요."

그녀가 가게 될 길을 지나온 내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더니 만면에 웃음을 띠며 아주 좋아라 한다. 경험자의 조언은 그 길을 가게 될 사람에게 언제나 힘이 되는 법. 애석하게도 난 그녀가 왔던 길이 아닌 좀 더 남쪽으로 루트를 잡았기에 그녀가 가르쳐 준 정보들은 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는 짧은 대화 후 역시 그녀의 리듬을 깨뜨려서는 안 되겠기에 서로 건투를 빌어주고 헤어졌다.

이틀에 걸쳐 내가 만난 그들은 모두 구제불능 낙천주의자였다. 모든 사물과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한 그들의 생각은 일반인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신나는 일탈을 감행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리컴번트 자전거와 밥야크 트레일러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미 대륙을 홀로 횡단하고 있는 팻.
리컴번트 자전거와 밥야크 트레일러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미 대륙을 홀로 횡단하고 있는 팻. ⓒ 문종성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의 몸종이자 사생아라고 일컬어진 크리스토퍼 캐넌델은 최초로 자전거를 타고 미대륙을 횡단했다. 그 후 현재는 해마다 적지 않은 숫자가 도전하는 미국 자전거 대륙 횡단은 그것이 하나의 도전이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발현시키는 감동의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암 투병 중에, 80세의 나이에, 장애 부자가 함께, 걸어서, 살을 빼기 위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거나 가슴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그건 지금 상황에서 무모한 짓이야", "내 생각에는 아니라고 봐", "할 수 있기나 한 거야?", "별 의미 없어", "그러지 말고 다른 걸 좀 찾아보는 게 어때?", "별로야", "적당히 직장이나 잡고 결혼이나 하지 그래?", "힘들걸?"….

숱한 비판과 냉엄한 현실을 박차고 나왔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역사나 사회적 의식, 남다른 철벽소신 하나 챙기지 못한 채 하릴없이 떠도는 대륙횡단만큼이나 허무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언젠간 다시 촌음을 다투는 격렬한 경쟁체제로 편입이 되어야 하기에 오늘 굴리는 한 바퀴도 의미 없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미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했던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모르긴 해도 전보다 훨씬 더 유쾌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또 어떤 길을 선택해 가고 있을지도… 사실은 너무 많은 짐을 이 여행에 지우지 않고 그저 그들처럼 인생의 멋진 한 부분으로 완성해 갈 수는 없는지 살짝 욕심도 생긴다.

이 여행이 끝나면 훨씬 더 유쾌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꺼란 기대를 가져본다. 클리블랜드 떠나온 길에 이리(Erie) 호.
이 여행이 끝나면 훨씬 더 유쾌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꺼란 기대를 가져본다. 클리블랜드 떠나온 길에 이리(Erie) 호. ⓒ 문종성
경비 마련에서부터 루트 선정, 숙식 해결, 다양한 문화와 인간관계에 대한 유연한 태도, 도로와 날씨와 자전거에 대한 만만찮은 문제들, 그리고 이 오랜 여정이 끝난 후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적응에 대한 부분들… 뭐하나 완벽하게 대비한 것이 없으면서도 떠나온 나는 지금부터라도 여행자 본연의 겸손한 태도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겸손의 미덕은 부족함을 실패로 보지 않고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완성해 나아가야 할 진취적인 과정으로 보게 하는 데 있다. 그러기에 지금껏 도로 위에서 만난 나의 스승들의 조언과 삶들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는 계기가 필요하다.

"60세 이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서 무덤으로 가고 있다. 만약 그들이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꾸준히 운동을 했다면 십 년이나 이십 년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 미국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한 80세의 한 할아버지의 인터뷰 중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파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자전거여행#미국횡단#클리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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